동네방네 ‘마을’ 형성…레지던스 ‘인기’

서래마을 ㆍ한남동ㆍ테헤란로 대표적 ㆍㆍㆍ주거 패턴 다양해져

9월 12일 수요일 낮 12시. 서울 서초구 반포4동 프랑스인학교 앞에 금발의 주부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문이 열리자 쏟아져 나오는 푸른 눈의 초등학생들. 거리가 순식간에 왁자지껄한 프랑스어로 뒤덮인다.대로변에 즐비한 카페, 레스토랑엔 서양인과 한국인 손님이 섞여 있다. 카페 아프레 미디(Apres-Midi·프랑스어로 ‘오후’라는 뜻)에 진열된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모두 프랑스에서 수입된 것. 근처 ‘파리 크라상’에선 프랑스인 제빵사가 빵을 굽고, 중년의 서양 신사가 바게트를 한 아름 사 간다.언뜻 한국인지, 프랑스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이곳은 700여 명의 프랑스인이 모여 사는 서래마을이다. 보도에 깔린 프랑스 국기의 삼색선, 부동산 중개업소의 프랑스어 안내문 등에서 이국적 정취가 한껏 풍겨 나온다. 마을 중심을 이루는 도로의 이름도 ‘몽마르트 길’이다. 13번 마을버스가 서는 정류장 표지에 프랑스어가 새겨져 있고 동네 놀이터에 금발 어린이가 뛰어논다.이곳이 ‘한국 속 작은 프랑스’가 된 것은 1985년 한남동에 있던 프랑스인학교가 방배중학교 앞으로 옮겨온 게 계기가 됐다. 아이들의 통학을 고려한 프랑스인들이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마을이 형성된 것이다. 대사관 직원, 상사 주재원 등 이곳에 사는 프랑스인이 한국에 사는 전체 프랑스인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정도다. 몽마르트 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혜원 씨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벨기에 등 다른 유럽 국가 출신들도 많이 산다”면서 “덕분에 몽마르트 길 상권의 권리금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모양”이라고 전했다.서래마을처럼 특정 국가에서 온 외국인이 한데 모여 사는 주거 밀집지는 서울 수도권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중앙·동남아시아에서 취업을 위해 이주하는 이가 늘면서 새로운 마을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서울에 28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살고 있는 가운데 영등포구·용산·구로·금천구 등이 1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는 곳으로 꼽힌다. 수도권에선 인천 남동구, 경기 수원시, 안산시 등에 1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둥지를 틀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을 겨냥한 주택 임대 사업, 상업 시설 등도 덩달아 관심을 끌고 있다.외국인 마을은 거의 자생적으로 만들어진다. 자국민끼리 정서를 나누기 위해 하나둘씩 모여 사는 게 첫 단계다. 주로 학교, 직장, 대사관 등을 따라 위치가 정해진다. 뒤이어 이들을 위한 음식점 등 상업 시설이 생겨나고 각국 문화를 반영하는 생활 편의 시설이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마을이 형성된다. 서래마을처럼 선진국 이주자들이 모이는 경우는 부동산 가치가 수직 상승하기도 한다.외국인 마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은 동부 이촌동과 이태원이다. 일본인이 많이 살아 ‘리틀 도쿄’라 불리는 동부이촌동은 아파트 촌 자체가 일본인 마을.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인 방문이 늘고 1970년대 외인아파트가 지어지면서 자연스레 밀집지가 됐다는 게 정설이다. 일본인 전용 창구를 갖춘 은행, 일본인 어린이반을 개설한 유치원, 일본인이 직접 운영하는 우동집과 초밥집, 100% 일본 제품만 판매하는 마트 등이 성업 중이다.대사관이 많고 용산 미군 기지가 가까운 한남동과 이태원에는 각국 대사관 직원, 미군 군속 가족들이 많은 편이다. 한남동 독일인학교 주변엔 독일 커뮤니티가, 이탈리아문화원 주변엔 이탈리안 커뮤니티가 있다. 한남동에선 UN빌리지 등 고급 빌라와 정원을 갖춘 단독주택의 선호도가 높다.최근 들어서는 다국적기업이 많은 강남에 둥지를 트는 외국인도 많아졌다. 역삼동을 비롯한 강남 테헤란로 주변은 다국적기업 임원 등 비즈니스맨 거주자가 부쩍 늘었다. 외환위기 이후 크게 늘어난 서비스드 레지던스(호텔식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거 시설) 영향이 크다. 현재 강남 테헤란로 일대에는 줄잡아 1000실 이상의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장단기 외국인 체류자를 유치하고 있다. 1999년 5월 첫선을 보인 역삼동 휴먼터치빌의 경우 52.8~72.6㎡(옛 16~22평) 160가구의 가동률이 90%를 웃돌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산업연수 등 취업을 위해 한국을 찾는 아시아인이 만드는 신생 마을도 여러 군데다. 가리봉동과 대림동에 중국인이 많이 살고, 동대문에는 몽골타운이, 종로구 창신동 일대에는 네팔촌이 만들어지고 있다. 또 김포에는 스리랑카와 태국 출신 노동자들이 많이 살고 있고 안산시 원곡동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출신 노동자 비중이 높다. 의정부엔 필리핀인이 유난히 많다. 이 밖에 경남 남해에는 지자체가 조성한 독일인 마을이 유명하다.자생 외국인 마을 증가에 따라 거주자를 위한 행정 서비스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때마침 서울시는 최근 외국인 마을을 ‘글로벌 빌리지’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하고 연남동·연희동 차이나타운, 동부이촌동 일본인 밀집지, 이태원1동, 한남1동, 역삼1동, 서래마을 등 6곳을 지정했다. 이곳에 ‘글로벌 빌리지 센터’를 설치, 외국인의 주거생활 지원과 문화 교류를 추진하겠다는 게 서울시의 생각이다. 우선 한남1동을 시범사업지로 정하고 99㎡(옛 30평) 내외의 공간을 확보해 서울 생활 종합 정보 제공과 상담, 구청-파출소-소방서 등과 네트워크 구축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한편 외국인 주거지를 상품으로 내놓고 임대 수입을 올리는 외국인 렌트 사업은 환경 변화를 겪는 중이다. 외국인 렌트는 1~2년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선불로 받는 ‘깔세’ 방식이어서 현금 수익을 원하는 이에게 적합하다. 하지만 보유세가 오른 반면 임대료는 제자리걸음이어서 ‘예전만 못하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한남동 R&I부동산 관계자는 “외국인 임원 등에게 주거지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 담당자들이 가격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면서 “인테리어, 시설 관리 등 투자비도 무시못할 규모”라고 밝혔다.주상복합, 서비스드 레지던스 증가도 중요한 변화 요인이다. 특히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편리성 때문에 수요가 계속 늘고 있다. 인사동 프레이저스위츠의 김민선 씨는 “투숙객의 80%가량이 외국인이고, 이 가운데 1년 이상 장기 체류자가 40% 수준”이라고 밝히고 “생활 편의성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말했다.서비스드 레지던스는 아침식사, 청소 등 호텔 서비스를 받으면서도 취사와 세탁 등을 직접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영어 사용이 자유롭고 컨시어지(비서)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외국인 투숙객의 숙박비용은 거의 기업이 부담한다. 한남동 등지의 고급 빌라와 단독주택의 경우 최고 임대료 수준이 월 1500만~2000만 원선이다. 반면 보통 50~99㎡형(옛 15~30평형)대인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이보다 절반 이하 가격이다. 가족 거주가 가능한 방 2개를 갖춘 객실의 경우 월 700만~900만 원선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서비스 내용, 브랜드 등에 따라 가격대가 다르다. 박수진 기자 sjpark@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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