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신부의 웃음이 나의 행복’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의 위치가 높아지고 일할 수 있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어요. 하지만 나이가 있는 여성에겐 아무래도 제약이 있는 게 사실이죠. 웨딩플래너에게 ‘여성’과 ‘나이’는 오히려 경쟁력이랍니다.”김정화 메리K 웨딩컨설팅 대표는 웨딩플래너의 매력을 이렇게 말했다. 웨딩플래너라는 직업은 여성과 연륜이라는 요소가 플러스가 된다. 결혼이라는 커다란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맡아서 추진해야 한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여성적인 세심함이 필요하다. 여기에 신랑신부 혹은 그 가족들과 원활한 상담을 위해 풍부한 인생 경험을 가지고 있다면 금상첨화다.“저도 마찬가지예요. 직장을 다니다 아이를 위해 회사를 그만뒀죠. 다시 취업을 하려니 너무 힘들더군요. 나이 많은 여성을 받아주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았어요.”김 대표는 그래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전문성’을 가져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리 쉽지 않았다. 이름난 컴퓨터 학원의 강사로 일할 만큼 실력은 인정받기 시작했어도 문제는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았다.“어느 순간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어요. 또 항상 새로운 지식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정보기술(IT) 업종에 한계가 보였어요.”고민하던 김 대표가 선택한 길은 지금 그가 ‘천직’으로 믿고 있는 웨딩플래너의 길이었다.“코오롱에서 웨딩 사업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죠. 애초에는 전 직장(현대해상)과 IT 강사 경력을 살려 기획파트로 입사했어요. 하지만 회사에 들어가서 보니 웨딩플래너 일이 매력 있어 보이더군요.”그는 웨딩플래너의 전망이 밝다고 강조했다. 각 연구기관들이 차세대 유망 직업으로 웨딩플래너를 꼽을 만큼 웨딩 사업이 번창하고 있지만, 아직 보편화되지는 않은 편이고 또 그만큼 인적자원의 수요가 높다는 것이다. 열정만 받쳐준다면 나이에 상관없이 ‘평생 직업’으로 일하는 것도 가능하다.또 김 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3~4년의 트레이닝과 약간의 자본만 있으면 창업이 가능하다. “어차피 웨딩플래너의 성패는 조직보다 자신의 능력과 실력으로 판가름 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당사자에게 새로운 인생을 열어준다는 보람이 웨딩플래너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김 대표는 물론 웨딩플래너들에게도 고충은 있다고 털어 놓았다. 웨딩플래너에 대해 사회의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았다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 웨딩플래너는 ‘컨설턴트’의 대접을 받는다. 필요한 정보를 소비자에게 주고 거기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 하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소비자들은 이 ‘정당한 대가’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업체가 예식장이나 스튜디오로부터 받는 리베이트로 운영되고 있다.웨딩플래너와 함께 준비하면 비용이 많이 들 것이라는 보통사람들의 예상도 사실과 다르다. 웨딩 상품에 대한 전문적인 안목을 가진 웨딩플래너의 도움을 받는다면 오히려 30% 정도의 비용 절감 효과도 볼 수 있다. 여기에 결혼 당사자의 ‘발품’까지 생각하면 효과는 늘어난다.“제가 맡았던 가장 기억에 남는 결혼식은 변리사 신랑과 일본인 신부의 결혼식이었어요. 남편 분은 요즘 찾아보기 힘든 입주 과외로 공부를 해 자격증을 땄을 만큼 집안이 어려운 분이었어요. 그에 반해 신부는 일본 명문가의 딸이었죠. 첫눈에 반해 현해탄을 오갔던 둘의 애틋한 사랑만큼 기억에 남는 결혼식을 하고 싶어 하셨어요.”스스로도 ‘한국에서 가장 가난한 변리사’라고 농담처럼 말했던 신랑이 예산으로 잡은 결혼식 비용은 중산층의 평균 예산에도 턱없이 모자랐다.“한 가지 팁을 말씀드리자면 포스코센터 같은 서울의 큰 빌딩에는 스카이라운지가 있어요. 평일과 달리 주말이나 휴일에는 이들 스카이라운지를 싼 값에 빌릴 수 있죠. 강남 한복판 하늘과 맞닿은 곳에서 기억에 남는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거죠.”시인을 꿈꾸던 신랑은 신부에게 시를 써주고, 그의 친구들은 신랑과 신부를 위해 추억을 담은 책을 만들고…. 믿을 구석 하나 없이 사랑하는 사람만 보며 바다를 건너온 명문가 신부의 결혼식은 신랑과 가족, 친구들, 그리고 김 대표의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재벌가의 결혼식’ 부럽지 않게 치러졌다.김 대표는 웨딩플래너는 ‘신뢰’를 먹고 산다고 말했다. 새로운 인생의 첫발을 내딛는 일을 책임지는 것은 당장의 손익 계산서에 따라 움직이면 안 될 말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일이 ‘소개’로 시작되는 웨딩플래너는 특히 결혼 당사자의 가족이나 친지의 평가가 가장 큰 재산이기 때문이다.김 대표의 메리K웨딩컨설팅도 이런 ‘신뢰’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10여 명의 웨딩플래너들이 모두 웨딩아카데미를 수료했거나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자들이다. 또 한 시즌에 플래너당 고객 수를 20쌍 이내로 제한한다. 각종 스케줄을 책임지는 비서 업무에서부터 허니문 여행, 청첩장, 웨딩카 서비스까지 플래너가 맡고 있다. 이 때문에 주고객도 결혼 준비를 함께한 신랑신부의 지인이 90%를 넘어선다.김 대표가 웨딩 컨설팅 사업과 함께 주력하고 있는 일은 웨딩플래너 양성 사업이다. 종로여성센터와 도봉여성센터에서 웨딩아카데미 과정을 개설해 강의하고 있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느꼈던 게 ‘나눔’이라고 말했다.“아직 웨딩플래너의 개념이나 할 일들이 명확히 정립되지 않았습니다. 전문성이나 서비스 마인드도 부족한 편이고요. 저보다 더 나은 훌륭한 후배들이 보다 많이 나왔으면 해요. 그래야 웨딩플래너에 대한 믿음도 늘어나고 업계의 규모도 더 커지지 않을까요.”마지막으로 그는 기업인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신입사원이나 미혼 사원들의 교육 과정에 ‘결혼 준비 과정 교육’을 넣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3개월 동안 3년 번 돈으로 30가지 상품을 구매한다는 게 우리나라의 혼인 문화죠. 하지만 웨딩 상품과 선택 방법에 대해 조금만 공부하고, 조금만 미리 준비한다면 훨씬 즐겁고 행복하게 웨딩마치를 울릴 수 있어요. 아무 정보 없이 결혼 준비를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사원들을 위해 최고경영자(CEO)들이 조금만 신경을 써주시는 건 어떨까요?”약력: 1968년생. 1991년 이화여대 경영학과 졸업. 1991년 현대해상화재보험 입사. 2001년 중앙정보처리학원 선임강사. 2002년 코오롱 메리즈 웨딩컨설팅 실장. 2006년 메리케이웨딩컨설팅 대표 및 여성중앙회이사(현).이홍표 기자 hawlling@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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