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ㆍ기술 '막강 경쟁력'으로 작용 ㆍㆍㆍ선진국 육성책 벤치마킹해야
현대 기업의 생존 기간은 30년이라고 한다. 기업의 생존을 단축시킨 이유는 기업의 인수·합병(M&A), 혹은 경영난, 그리고 후계자의 부재를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후계자의 부재란 점이다. 창업자의 정신을 계승해 기업을 운영, 발전시킬 후계자야말로 기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다.소규모 자영업에서 후계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까운 일본에는 상가와 기업을 대대로 계승하는 오래된 점포, 소위 시니세(老鋪)가 존재한다. 즉 부모의 사업을 이어받아 가업으로 삼는 기업이 아주 많다. 이렇게 500년 이상 가업을 이어 내려온 시니세가 700개가 넘으며 1000년 이상 된 시니세도 일곱 개나 된다.또한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 모두가 같은 계보에 의해서 운영,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영업의 경쟁력은 전통과 전문 기능에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시니세는 현재의 경쟁력 있는 일본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베르사체, 아르마니, 구찌 등이 모두 전통적으로 가업을 이어온 이탈리아인임을 이해한다면 왜 이탈리아가 세계 패션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가업을 계승하는 것은 전통과 전문 기능에서 가장 큰 경쟁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이다.북창동 뒷골목을 돌아 들어가면 1920년대에 지어진 허름한 건물 한 채가 눈에 띈다. 건물 창고에 가면 쌀가마를 트럭에 싣는 장면을 수시로 볼 수 있다. 고령의 노인과 젊은 아들이 손발을 맞추는 모습이다. 노인은 연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작업을 재촉하랴 여념이 없다. 기중기를 조정해 쌀가마를 들어 올리는 젊은 사내의 온몸에는 진지함이 가득 배어 있다. 작업을 지시하는 김영길 씨(65)와 기중기를 조정하는 김좌석 씨(40)는 부자지간이다.북창동 미곡상 대성상회. 김영길 씨가 이곳에 다시 자리 잡은 지 30년이 흘렀다. 당시 어린아이였던 둘째아들과 미곡상을 함께 운영한 지는 벌써 십 수 년이다.“아버님이 고생을 참 많이 하셨죠. 이곳은 우리 가족사가 묻어 있는 곳입니다.”김좌석 씨는 이렇게 말하며 지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부친인 김영길 씨는 1950년 대 중반, 10대의 어린 나이에 상경해 왕십리 중앙시장 미곡상에 취업했다. 그는 상인들의 행동을 일거수일투족 놓치지 않고 관찰했다. 장차 자신도 미곡상 사장이 되리란 꿈을 갖고 있었기에 유통 구조며 경영방식을 파악하고자 노력했다. 당시의 왕십리 중앙시장은 서울 최대의 미곡 시장이었기에 전국에서 올라오는 생산지 파악은 물론 소매시장과의 연계성, 즉 판로를 파악할 수 있었다.1960년대 후반, 저축으로 종자돈을 마련한 김영길 씨는 독립하기로 마음을 먹고 신림동에서 미곡상을 개업한다. 하지만 1차 독립은 허무하게도 실패로 끝났다. 지역 수요가 많다는 점만 믿고 개업한 것이 화근이었다. 도매 유통을 하기 위해선 중심 지역이 있게 마련인데 이를 간과했던 것이다. 지금의 관악구 지역은 물론 금천, 구로, 양천, 강서 지역 모두가 당시 영등포구에 속해 있었으며 서울한강 이남 서쪽의 모든 유통은 영등포를 중심으로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김 사장은 자신이 더욱 배워야 한다는 것과 자신이 잘 아는 곳에서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는 점을 가슴속 깊이 새기며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1970년 대 초반, 김 사장은 지금의 북창동 미곡상에 직원으로 취업한다. 직원 생활을 통해 시장 구조에 대한 이해 등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 나갔다. 1970년대 후반, 점원으로 일하던 현재의 사업장을 인수해 창업하기에 이르렀다. 아는 만큼 성공한다고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곳이었기에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러던 어느 날, 행운이 찾아왔다. 처음 상경해 근무하던 왕십리 미곡상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이 찾아와 백화점 납품을 제의해 온 것이다. 1980년, 당시 국내 최대의 롯데백화점이 명동에 개점한 것이다. 이곳에 근무하던 지인의 제의로 납품을 시작했고 이는 미곡상으로서는 국내 백화점 납품 1호라는 명예도 가져다 줬다. 이후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다.2006년 이후 수입 쌀이 유통되고 있는 현실상 새로운 판로가 필요하게 됐다. 호텔을 비롯한 외식업소에서는 고급 쌀에 대해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에 이에 대한 유통 전략이 시급한 과제다. 아들 김좌석 씨는 이를 예상, 이미 특급 호텔을 비롯한 대형 접객 시설의 고급 쌀 수요처를 다수 확보했다. 1990년 대 중반 이후 대형 할인점의 등장으로 백화점의 쌀 수요는 급감했지만 호텔을 비롯한 대형 접객 시설 및 외식업소를 대상으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해 사업을 운영, 유지하고 있다.김좌석 씨는 “이런 상황을 아버님이 먼저 예상하시고 제게 방안을 찾으라고 일러주셨기에 가능했다”고 이야기한다. 훌륭한 경험이 어떤 지식보다도 우선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가업을 이어나가는 김좌석 씨는 자신의 아버지야말로 가장 훌륭한 스승이기에 자신도 자신의 아들에게 가장 훌륭한 스승이 되는 것이 소망이란다.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사업적인 면 외에도 가문의 명예와 긍지가 되는 것이다.평생직장이란 개념이 사라진 지금,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화되는 환경의 변화로 인해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자기만의 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층으로 하여금 창업에 도전하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창업 층의 연령이 낮아지고 창업 희망자가 늘고 있는 반면 단기간에 승부를 내고자 하는 조급함이 창업 실패의 원인이 되곤 한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기업가 정신을 고수하며 나아갈 수 있는 창업이 필요하다.하지만 시행착오라는 변수로 인해 젊은 층의 창업은 쉽게 좌절하고 만다.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창업 방식 중 하나가 가업을 잇는 것이다. 위험 요인을 최소화해 줄 훌륭한 멘토가 항상 가까이 있기에 가장 이상적인 창업 형태라고 할 수 있다.1990년 대 이후 일본에서도 시니세의 도산이 증가하고 있다. 즉 후계자 부족이 문제인데 이에 대한 대안으로 도제식이 선호되고 있다. 이제는 데릴사위, 혹은 주변인에게 계승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혈통과 기질 등 근본적인 면을 고려한다면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전수되는 가업 승계 방식이야말로 가장 큰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일본에서는 시니세의 도산이 국가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해 이를 방지하고자 세금 인하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서구 유럽과 일본은 패션과 외식 등 사업 전 분야에 걸쳐 가업(家業)을 잇는 것이 일상적이다. 전자부품의 특화된 경쟁력을 갖춘 대만도 가내수공업 형태가 많다. 가업을 잇는다는 것은 전문성의 우위는 물론 위험 요소를 최소화할 수 있는 창업의 일환이라 하겠다.대성상회는 1986년 아시안게임 선수촌 납품 업체로 선정돼 아시안게임 기간 내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김좌석 씨는 “납품할 쌀을 검열받기 위해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면서 “새벽 퇴근에 과로로 코피를 흘리기도 했었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아버지처럼 아들에게 훌륭한 스승이 되고 싶다는 김좌석 씨에게서 사업의 성공보다 가족의 행복이 더 큰 가치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고경진·고경진창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