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명문가에서 배우는 경영(35) - 신사임당의 ‘부덕(婦德) 리더십’

화(和)·순(順) 근본 삼아 가문 리모델링

가문 경영은 기업 경영과 결코 다르지 않다. 특히 창업기나 정체기에 있는 가문이나 기업의 경우 그 조직을 이끄는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에 따라 도약하느냐 마느냐를 좌우하게 된다. 더욱이 가정의 CEO 격인 아버지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할 경우 대부분 위기에 처하는데, 이때 어머니가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가정의 성쇠가 달라진다. 무능한 남편을 탓하기만 하면 가정은 풍비박산을 면키 어렵다.대학자 율곡 이이를 키운 신사임당(1504~51)은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더욱이 당시는 연산군의 폭정으로 사회가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 시대에는 대부분 여성은 글공부보다 조신하게 집안일을 배우면서 결혼해 현모양처가 되는 게 삶의 목표 전부였다. 책을 가까이 하면 “계집애가 글공부를 해서 무엇해? 과거를 볼 건가, 벼슬을 할 건가?”라는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사임당의 부친인 신명화는 결혼 후 죽기까지 16년 동안 처가살이를 했다. 신명화는 한양에 머무르며 공부했지만 별다른 벼슬 없이 진사에 머물렀다. 다만 아들을 두지 못한 부친은 외출할 때 사임당을 데리고 다니는 등 마치 아들처럼 키웠다. 사임당이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집안의 분위기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신명화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사임당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사임당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외할머니는 손녀가 그림에 재능을 보이자 종이를 사다 주는 등 도움을 줬다. 가난한 처지의 사임당은 100년 전 인물인 안견의 그림을 스승으로 삼아 그림에 정진했다. 또 벼슬을 할 수 없는 시대에 여성이 학문에 힘쓴 목적은 대부분 결혼 후 자녀 교육에 있었다. 사임당도 그랬을 것이다.외가에서 어렵게 자란 사임당은 결혼 후에도 어려운 가정을 꾸려나가야 했다. 사임당은 남편이 50세가 될 때까지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해 친정과 시댁을 오가며 살았고 평창 봉평에서도 사는 등 갖은 고생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로는 한 가정에서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이 닮은꼴 인생을 보이는데, 사임당의 경우가 그랬다. 즉 무남독녀였던 사임당의 어머니가 친정살이를 한 것처럼 그 역시 신혼 초기와 율곡을 낳은 이후 6년 동안 친정살이를 했던 것이다.남편 이원수(이순신과 19촌 숙질간)는 사임당보다 학문이 뒤떨어졌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6세 때 아버지를 잃은 이원수는 홀어머니 밑에서 독자로 자랐고 22세 때 19세인 사임당과 결혼했다. 어쩌면 이 혼사는 ‘평범한 아버지’에 ‘비범한 어머니’의 결합이었지만, 당시는 중앙의 벼슬아치 집안과 강릉의 평범한 유학자 집안이 맺어진 것이다. 파주 임진강변에 있는 ‘화석정’은 율곡 이이(1536~84)의 5대조인 이명신이 지은 것인데, 집안에서 화석정을 소유할 정도로 대대로 벼슬길에 올랐다.율곡이 어렸을 때는 이 가문의 ‘정체기’였다고 볼 수 있다. 증조부가 경주판관을 지냈지만 율곡의 조부는 벼슬이 없었다. 부친은 50세에 이르러 비로소 수운판관이라는 종5품 벼슬에 올랐다. 사임당이 신혼 3년 동안 남편을 한양에 보내 공부하게 하는 등 ‘남편 길들이기’에 나선 것도 이러한 집안 사정을 반영한 것일 게다. 한마디로 사임당에게 희망은 자녀 교육에 ‘올인’하는 길밖에 없었을 것이다.남편의 무능과 가난 속에서도 사임당은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면서 자녀 교육(4남 3녀)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때 사임당은 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화(和)’와 ‘순(順)’을 근본으로 삼고 남편의 공부를 이끌면서 자녀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화’와 ‘순’은 다름 아닌 형제자매간에 화합하고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 경영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가난 속에서도 인재를 키워 가정의 리모델링에 성공한 사임당의 ‘부덕(婦德)의 리더십’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사임당이 평소 “뜻을 세우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강조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뜻을 세우고 가문 경영에 임했다. 이는 아버지가 가정의 CEO 역할을 다한 다른 가문과 차이 나는 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곤궁한 가정일수록 여성이 집안을 일으켜 세운다는 옛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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