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투자지도 - 미술품 시장

갈 곳 잃은 자금 ‘속속’ 그림 속으로

그림 한 점에 45억 원. 지난 5월 22일 서울옥션에서 열린 근현대 및 고미술품 경매에서 박수근 화백(1914~65)의 유화 ‘빨래터(37×72cm)’는 한국 미술품의 최고가를 기록했다. 지난 3월 기록한 최고가였던 25억 원보다 80% 높은 가격이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은 2001년 4억6000만 원을 기록한 후 5억 원(2002), 9억 원(2005), 10억4000만 원(2006), 25억 원(2007)으로 꾸준히 올랐다. 45억 원이나 되는 거금을 들여 그림 한 점을 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다가도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낙찰가를 보면 앞으로 가격이 더 오를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경매뿐만 아니라 ‘아트페어’에서도 거래가 급증했다. 지난 5월 9일부터 닷새 동안 열렸던 서울국제아트페어(KIAF)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02년 1회 때 7억3000만 원이었던 판매 총액은 20억 원(2004), 45억 원(2005), 100억 원(2006년)을 기록했고 올해는 175억 원으로 급증했다. 매년 100% 안팎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국내 미술 경매 시장도 뜨거워지고 있다. 1998년부터 미술품 경매를 시작한 서울옥션의 경우 1999년의 낙찰 총액은 18억4000만 원이었지만, 꾸준히 성장해 2005년 98억 원, 2006년 296억 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메이저 경매 5회 금액이 296억 원이지만 올해는 한 번만 했는데도 벌써 낙찰액이120억 원에 달했다. 박수근 화백의 ‘빨래터’까지 합치면 이미 지난해의 절반을 넘어섰다. 2005년부터 미술 경매를 시작한 후발 주자 K옥션도 2006년 낙찰 총액이 273억 원이지만, 올해 두 번의 메이저 경매를 통해 220억 원을 기록했다.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 펀드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9월 국내 최초로 미술품에 투자하는 아트 펀드 1호인 ‘서울명품아트펀드(설정액 75억 원)’가 결성됐고, 뒤이어 12월 2호 펀드인 ‘스타아트펀드(설정액 100억 원)’가 판매됐다. 서울명품아트펀드는 예상 수익률 12%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고, 스타아트펀드도 예상 수익률 17%를 넘어서는 18%대를 기록하고 있다.양도세·재산세 부과 안돼이처럼 ‘과열’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미술품 시장에 돈이 몰리고 있는 것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갈 곳을 찾지 못한 부동자금이 증권가와 미술계로 유입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만약 이 같은 인과관계가 설득력이 있다면, 장기적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수록 미술품 투자가 대안 투자로 각광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아직 미술품 투자는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안목이 필요한 분야라 일반인들이 선뜻 나서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큰손’들에게 미술품 투자는 ‘세(稅)테크’라는 측면에서 매력적인 대안 투자로 관심을 끌고 있다. 미술품은 부동산과 달리 양도소득세가 부과되지 않기 때문에 부동산 양도세의 중과세를 우려한 부자들의 투자 수단으로 인기가 높다. 1990년 세법에 서화(書畵)·골동품에 대한 양도세 과세 제도가 도입됐지만 미술 시장 위축을 우려한 미술계의 반대로 입법 이후 13년 동안 유예를 거듭해 오다 2003년 세법 개정 때 아예 이에 대한 과세 근거를 삭제해 버렸다. 미술품은 토지나 건물이 아니므로 재산세도 부과되지 않는다.일반인들이 미술품 투자를 하기 위해서는 투자 가치를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표화랑의 표미선 대표는 “초보자들은 갤러리를 통해 구매하는 것이 가장 좋다. 최근에는 갤러리에서 초보자를 위한 강좌를 많이 개설하고 있고 미술계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 곳이 갤러리”라고 조언하고 있다. 그리고 미술 전문 잡지를 보는 것도 필요하다. 갤러리마다 전시된 작품을 한 번 걸러 보여주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미술계의 흐름을 알 수 있다. 갤러리에서 안목을 쌓은 다음에는 경매에 참여하는 것도 방법이다. 각 경매 업체들은 3주 전부터 경매에 오를 작품을 수록한 책자를 배부하는데, 이를 들고 갤러리에서 상담을 받으면 좋다.지금까지 판매된 1~2호 아트 펀드는 사모 펀드였다. 운영 대행사를 맡은 갤러리들이 자체 고객들을 대상으로 상품 설명회를 열고 펀드를 결성하는 식이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부터는 공모 펀드 형식의 아트 펀드가 판매되면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더욱 넓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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