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투자 지도 - 주식

장기 상승세 진입… 인구구조 ‘최적기’

주식시장을 움직이는 요인은 다양하다. 근본적으로 주가는 기업이 미래에 창출할 이익의 현재가치를 합한 것이므로, 기업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는 직·간접적인 요인들이 주된 동인이라고 할 수 있으며, 여기에 현재가치를 산출할 때 필요한 이자율의 변화도 중요한 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이익과 이자율의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요소를 꼽으라면 필자는 인구 구조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을 꼽는다. 이들 두 요소는 상호 결합하면서 경제 성장과 이자율의 장기 추세를 이끌어 낸다.‘TMT 버블’ 동력은 인구 구조 변화예를 들어 보자. 1990년대 후반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소위 ‘신경제’의 시대였다. 신경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인터넷이라는 신기술을 매개로 한 정보기술(IT) 섹터 중심의 경제 성장과 거품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기저에는 선진국의 인구 감소가 촉발한 디플레이션(Deflation)이 있었다. 인구와 기술 두 요소의 결합은 다음과 같다. 1990년대에 심화된 디플레이션은 가격 결정력을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또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한층 더 이동시켰다. 총수요 감소에 따른 가격 하락이 주요 1차, 2차 산품 생산자인 개도국의 교역 조건을 악화시켰고, 선진국 소비자의 협상력(bargaining power)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선진국들, 특히 미국은 개도국을 통해 값싼 물건을 생산하는 외주(Outsourcing) 모델로 생산성 향상을 도모하는 한편 전 세계에 IT 투자를 통한 원가 절감 문화를 전파했다. 아울러 적시에 출현한 인터넷 기술이 컴퓨터와 네트워크의 융합을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전 세계를 열광시켰던 것이다. 디플레이션 시대에 온라인을 통한 유통 혁명과 프로세스 개선은 기업들에 마치 복음과도 같았다. 2000년에 대단원의 막을 내린 소위 ‘TMT(텔레콤, 미디어, 테크놀로지) 버블’에는 이와 같이 인구 구조의 변화가 기저에 깔려 있었다.현재 일어나고 있는 예상외의 세계 주식시장 활황은 인구 구조의 변화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필자는 아주 큰 연관이 있다고 믿고 있다. 2002년 3월 이후 세계 주가는 100% 이상 올랐다. 그런데 이번에 상승세를 주도한 것은 선진국 시장이 아니라 중국 인도 등 개발도상국 시장이었으며, 두 나라 주식시장은 같은 기간 300% 이상 상승했다. 또한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도 괄목할만했는데, 두바이유는 배럴당 가격이 동 기간 200%가량 올랐으며 CRB 금속지수도 300% 이상 상승했다. 같은 기간 많은 분석가들이 미국 경제의 침몰이라든가 세계 부동산 시장의 붕괴, 개도국 시장(Emerging Market)의 붕괴 등 다양한 부정적 요소들을 부각시키며 비관론을 쏟아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 주식시장은 큰 폭의 상승세를 보여 왔다.이러한 세계 경제 및 주식시장의 활황을 이해하려면 1990년대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1990년대적 시각이란 디플레이션에 길들여진 선진국 편향적 시각이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국과 인도의 부상으로 세계 경제의 성장 동력이 크게 다변화됐다. 중국과 인도가 세계 시장에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우선 이들 국가는 과거 자급자족적 경제를 유지하다가 1990년대 들어서야 본격적으로 세계 시장에 진입했으며 2000년대 들어 세계 경제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중국은 제조업에서, 인도는 서비스업에서 저가의 재화와 용역을 세계 시장에 쏟아 부으면서 시장 진입 초기에는 디플레이션에 일조하는 듯 보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 다(多)인구 국가들이 많은 원자재를 흡수함에 따라 세계 경제에 마치 인구가 증가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주고 있다. 소위 ‘브릭스’(BRICs)로 통칭되는 중국 인도 러시아 브라질 등 저소득 다인구 국가들의 부상이야말로 이번 세계 경제 호황의 핵심이다.필자는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최근의 새로운 성장 사이클이 대략 2003년께부터 시작됐다고 믿고 있다. 최근 5년여의 기간 동안 ‘골디락스(Goldilocks)’라 불리는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은 실은 인플레이션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원자재 시장에서의 인플레이션은 이미 언급했듯이 상당한 수준이었다. 다만 중국 등에서 생산되는 저가품들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Market Share)을 확대하면서 소비재 가격의 상승을 억제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 다인구 개도국들의 경제 성장이 지속되고 이들 나라의 소비자들이 전면에 부상할 즈음이면, 세계 경제는 본격적인 인플레이션이 시작될 것이다. 처음에는 생산과 투자를 통해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브릭스 경제가 소비 확대를 통해 점차 2차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주도주의 이동 ‘생산과 투자에서 소비로’위의 인구 역학 관계를 주식시장에 연결해 보면 최근 국내 장세를 주도해 왔던 조선주 기계주 운송주 원자재 관련주 등의 상승세가 상당 부분 설명될 것이다. 생산과 투자 위주의 브릭스 경제 성장은 세계 교역량의 확대를 통해 조선 및 운송 관련 산업의 업황을 끌어 올렸고, 원자재 가격을 높였던 것이다. 또 이들 나라의 설비 및 인프라 투자 증대는 기계 수주 및 건설 수주의 확대를 불러왔던 것이다. 이러한 투자 및 생산 확대 사이클은 향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필자가 관심을 갖는 향후의 추세는 이들 개도국들의 소비자세력 부상과 그에 따른 수혜주의 부각이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는 내년에는 중국의 소비 확대가 화두가 되지 않을까 생각되며, 중국 소비자의 입맛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기업들의 성장세가 돋보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현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한국의 디스플레이와 메모리 반도체, 그리고 자동차, 핸드폰 및 가전 등이 이 때쯤이면 중국을 등에 업고 다시 부상하지 않을까 전망한다.이제 한국 내의 인구 역학으로 관심을 돌려보자. 필자는 과거 몇 년간 수차례에 걸쳐 한국 주식시장에서 인구 구조의 중요성을 제기해 왔다. 요약하자면 한국은 베이비 부머(Baby Boomer)들이 30~40대에 포진돼 있는 양호한 인구 구조를 바탕으로 2000년대에 장기 주가 상승세를 시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즉, 일본의 1980년대나 미국의 1990년대와 유사한 구조라 할 수 있다.베이비 부머들이 30~40대에 주로 포진돼 있을 때 나타나는 긍정적인 효과로는 첫째 노동 생산성의 향상, 둘째 소비의 양적·질적 확대, 셋째 자산 배분에서 주식 비중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인구 구조로 보면 한국은 일본에 비해 20년 이상 젊다. 다시 말하면 인구 구조적으로 1980년대에 일본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한국에서는 2000년대에 나타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1980년대에 일본에서는 위에 언급한 세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났으며 이를 바탕으로 주식시장이 장기 호황을 구현했다. 한국에서도 2000년대 들어 이와 유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2000년 말 이후 KOSPI는 연평균 19%의 상승과 2~3%의 추가적인 배당수익을 투자자들에게 안겨주었으며, 2002년 이외에는 연초 대비 연말에 손실을 안겨 준 해가 없었다.한국의 경제활동 인구는 2012~16년께 정점을 이루고, 그 이후에는 가파르게 하강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까지는 인구 구조가 주식시장에 우호적이나, 이후 노동인구 감소와 소비 하강에 대한 별도의 대비책이 없다면 인구 구조는 주식시장에 점차 부정적으로 바뀔 것이다. 우리투자증권은 경제활동 인구의 정점인 2012년께에 KOSPI가 대략 3000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향후 5년여 동안 한국 주식시장이 배당수익률을 포함해 연 15% 내외의 수익률을 안겨줄 것이라는 계산이다. 한국의 양호한 인구 구조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사이클의 혜택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수치라고 필자는 생각한다.연기금과 적립식 펀드의 힘베이비 부머들이 30~40대에 주로 포진돼 있을 때, 간접 투자를 통한 주식 투자 증가라는 자산 배분의 변화가 나타나기 쉽다. 이는 30~40대가 이자 소득에 자산 배분을 의존하기에는 아직 젊으나, 그렇다고 위험을 크게 감수하기에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이 큰 연령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일고 있는 적립식 펀드 투자 붐은 주식의 간접 투자를 통한 안정적 자산 증식이라는 베이비 부머 세대의 새로운 테마를 상징하고 있다. 여기에 매년 15% 이상씩 늘어나고 있는 국민연금의 주식 투자 확대와 향후 늘어날 기업연금 시장은 한국 시장의 기관투자가 비중 확대를 담보하고 있다. 2015년께 국민연금은 약 600조 원의 자금 중 20% 이상을 주식에 투자할 것으로 예상되며, 기업연금의 규모도 대략 15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사실 한국 증시의 ‘기관화’는 인구 구조에 비추어 볼 때 많이 늦은 감이 있다. 이는 미국의 사례에 비추어 기관화가 본격화됐어야 할 1990년대에 경제 불안과 금융 위기로 인해 한국 사회의 위험 회피 성향이 극대화됨에 따라 주식 투자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금융 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의 경제 시스템 정비와 기업 투명성 및 경쟁력의 확대를 외국인 투자자들이 먼저 감지해 적극 투자함에 따라 한국 시장에서의 외국인 투자자 비중은 세계적으로 이례적 수준인 43%까지 상승했다. 한편 국내 투자자들은 금융 위기 극복 후 5년이 지난 2004년께에야 기업 이익의 양적·질적 증가와 안정성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에 나서게 됐는데, 이러한 한국 증시의 기관화는 향후 상당히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릴 것으로 필자는 예상하고 있다.국내 소비에 대한 부정적 견해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한국의 소비가 추세적인 상승기에 있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 역시 베이비 부머 사이클에 근거하고 있다. 도시 가계 가구주의 연령별 소득과 소비를 분석해 보면 소비 성향과 소득 수준이 모두 40대에 정점을 이룬 후 점차 하락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한국의 40대 인구는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고봉을 이룬 후 점차 하락세를 그릴 것이다. 여기에다 차츰 늘어나고 있는 여성 인구의 경제활동 참여는 가계 소비 여력을 더욱 높여줄 것이다. 최근 부동산 관련 세금의 증가와 해외 여행수지 적자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가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러한 구조적인 소비 여력 증가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국내 인구 구조 변화의 혜택을 누리는 소비 관련 주식들은 앞에서 언급했던 세계 인플레이션 사이클의 수혜주들과 함께 때로는 동시에 때로는 순차적으로 한국 주식시장을 주도해 갈 것이다. 소매 업종은 물론 구조적인 여가 문화 증대의 혜택을 보는 여행 항공 게임 등의 업종, 인구 고령화의 수혜 업종인 제약 업종 및 보험 업종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증시 기관화와 금융 서비스 확대의 주 수혜자인 증권 업종과 은행 업종도 인구 구조를 등에 업은 주식시장 상승세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박천웅·우리투자증권 전무 woong.park@wooriw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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