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양새·쓰임새 함께 살려야 제 맛’
앤티크를 고가의 장식품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면 그 서툰 선입견부터 벗어던질 필요가 있다. 짧게는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의 세월 동안 가구로, 생활용품으로 제 기능을 갖고 있던 물건이 자리만 차지하는 골동품으로 전락해 버리기엔 품은 세월이 너무 아깝다. 앤티크 복원 기술(업홀스터리)은 오래되고 낡은 물건을 실제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다. 중요한 것은 복원을 빙자해 본래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작업을 마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기계가 발달하고 제조 기술이 좋아져도 화학 재료와 기계로 만들어진 제품과는 다른 ‘손맛’이 살아있을 때 앤티크는 제 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이다.김종수 씨(58)는 국내에 드문 앤티크 복원 기술 보유자다. 그중에서도 의자만을 전문으로 한다. 의자를 복원하는 작업은 다른 앤티크 가구 복원에 비해 좀 더 섬세하고 까다로운 편이다. 기본 틀이 되는 나무를 손질하는 외에도 사람이 앉는 폭신폭신한 부분에 쿠션감을 균형 있게 속 재료를 배열하고 의자의 곡선을 따라 섬세하게 마무리한 후 커버를 덧씌워야 한다. 커버를 분리할 때 이미 고정해 놓은 작은 못을 하나하나 빼내야 하는데 이때 나무가 깨지기 쉬워 하나하나 진땀을 흘리며 섬세한 감각으로 빼내는 게 중요하다. 낡은 커버와 속 재료를 벗겨내고 나면 프레임만 남은 상태가 되는데 여기에 두꺼운 천 소재의 웨빙을 엮어서 시트 바닥을 만든다. 스프링 시트의 경우 스프링을 얹고 노끈으로 고정해 흔들리지 않게 한 다음 삼베의 한 종류인 헤시안을 씌우고 다시 실로 고정한다. 그 위에 쿠션감을 유지해 주는 천연재료인 홀스헤어를 적당하게 얹는다. 다시 헤시안을 덧씌우고 모양을 잡아서 바느질로 스티치를 3~4회 반복해 시트 모양이 되게 고정한 후 홀스헤어와 목화솜을 다시 얹는다. 옥양목 소재의 칼리코를 씌워 마지막으로 고정하고 교체용 패브릭을 씌운다.안정적 CEO 자리 버리고 배운 목공기술“가끔 비싼 값을 주고 산 앤티크 의자라며 복원을 의뢰하는 물건을 보면, 복원 기술이 없는 사람들이 함부로 쿠션 갈이만 한 경우가 있어요. 스펀지를 대충 넣고 천만 갈아서 스테이플러로 쾅쾅 박아버린 거죠. 앤티크는 일일이 재료를 고르고 쓰다듬는 옛날 방식을 고수하고 손으로 만든 제품일 때 제 빛을 발합니다. 그런데 좀 쓸모없어졌다고 함부로 겉보기에만 그럴 듯하게 바꿔버린 이런 가구들은 앤티크로서의 가치도 가지지 못할 뿐더러 다시 복원하는 데도 몇 배의 고충이 따릅니다.”그는 복원에 쓰이는 재료 모두 전통 방식의 가구 제조 공정에 쓰이는 것들로 고수한다. 나무 프레임을 붙일 때도 천연 접착제인 애니멀 글루를 사용한다. 시트 역시 말총(Horse hair)이나 가죽끈(Webbing), 질기고 굵은 삼베(Hessian), 옥양목(Calico) 등 자연 소재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커버로 쓰이는 가죽이나 패브릭을 고정할 때도 10~16mm의 앤티크 가구용 작은 못(Tack)을 사용하고 압정 모양의 네일(nail)로 일일이 마감한다. 못을 뺄 때도 가구를 훼손하지 않기 위해 나무망치를 쓴다. 모든 재료는 영국에서 수입한다.보기에만 그럴듯하게 복원하는 것은 앤티크로서 별 의미가 없다. 처음부터 장식품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만큼 오랜 세월 동안 닳고 바래면서 그 나름의 품위를 지닌, 그러면서도 나름의 기능성을 잃지 않는 것이 앤티크의 기본이다. 모양새뿐만 아니라 그 쓰임새와 장인정신까지 살리는 것이 복원의 목적이자 역할인 것이다.“영국에서 견습공으로 일할 때 같이 일하는 선배 복원사들이 입에다 못을 잔뜩 넣고 하나씩 빼물면서 작업을 하는 걸 보았죠. 앤티크용 망치는 일반 망치와는 달리 자석 성질이 있어서 못을 입 가까이 대면 빼어 문 못이 하나씩 못에 달라붙거든요. 못을 바닥에 흩뜨려 놓고 쓰면 여러 개의 못이 달라붙어 작업 속도가 느려지니까 나름대로 꾀를 쓰는 거죠. 그거 따라하다가 못 몇 번 삼켰습니다.”이런저런 얽힌 사연을 이야기하는 모습이 순진무구한 아이같이 즐겁다. 욕심 내지 않는 것은 어느 부분에서나 적용되는 그의 철학이자 삶의 모토다. 이 때문에 그의 복원 기술을 대학 강의에 적용해 그의 단기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학점을 적용해 주자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단호히 거부했다.젊은 나이에 거창한 꿈을 안고 유학을 떠났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가 앤티크 복원 기술을 배운 것은 쉰이 넘어서였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인정받는 사원으로 있다가 욕심이 커져서 덜컥 회사를 차렸고, 사업도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이 너무 잘 되는 것도 문제였다. 실질적인 경영 업무에 참여하던 아랫사람이 일을 너무 잘해 스스로 할 일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 놀면서 돈만 챙겨가는 욕심 많은 경영주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생 펜대 잡고 머리 굴리는 사무직만 해 온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쯤에서 같이 일하던 직원에게 사업을 넘겨주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처음에는 모든 것이 막연했다.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것 외에 뚜렷한 목적도 방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무작정 덤벼든 것이 앤티크 복원 기술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 일이 얼마나 고생스럽고 피땀 흘리는 일인지 알지 못했고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간 웨스트 딘 칼리지가 전통적인 방법으로 의자를 복원하는, 영국에서도 손꼽히는 복원 기술 전문가의 수업이 열리는 곳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막연히 남들이 앤티크를 좋다고 하니까, 자신도 평소에 관심이 있었으니 한번 해보고 싶다는 욕심뿐이었다.처음 그가 신청한 수업은 영국의 유명한 앤티크 복원 전문가 리처드 리카르도가 취미로 복원 기술을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진행하는 일주일이 채 안되는 단기 코스였다. 수업을 들어보니 재미는 있지만 감을 잡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성에 찰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스승이었던 리카르도에게 끈질기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본인이 못하면 다른 스승이라도 찾아달라고 떼를 쓴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그의 집념에 리카르도가 항복했다. 그의 워크숍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며 일을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에게 새로운 인생이 열리는 순간이었다.부인과 함께 따스한 전시회를 여는 게 꿈그의 부인 오영실 씨(49)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퀼트 전문가다. 요즘 부부는 50년 이상 된 앤티크 천을 앤티크 의자의 커버로 덧씌우는 재미에 빠져있다.“평범한 전업주부였던 제게 남편이 그랬죠. 뭐든 10년만, 딱 10년만 매달려 보라고요. 그러면 제 이름으로 된 책을 낼 수 있을 것이고 만약 그게 안 되면 자비로라도 출판을 해주겠다고 하더군요.”남편의 말대로 딱 10년 후, 국내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큰 출판사에서 출판 제의를 해왔고, 그녀의 이름으로 책이 출간됐다. 책을 준비할 당시 남편은 영국에서 앤티크 복원 기술을 배우느라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남편을 만나기 위해 잠시 영국에 갔을 때 몰라볼 정도로 야윈 그를 보며 가슴이 미어졌다. 당장 그만두고 한국으로 가자고 화를 냈지만 남편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집념, 그리고 손으로 만드는 것에 대한 애착까지도 서로 쏙 빼닮은 탓이다.그렇게 또 세월이 흘렀고 남편 또한 앤티크 복원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알아주는 전문가가 됐고 부부는 함께 ‘보빈느’라는 앤티크가구&퀼트샵도 열었다. 그들은 2년 후쯤 작은 전시회를 계획하고 있다. 각자 전시회를 연 적은 있지만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작업을 사람들에게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우린 별 볼일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부부의 모습에서 서로에 대한 진득한 자긍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김지은 객원기자 likepoolggot@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