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대형화 유감

작가 장용학의 첫 머리에 토끼에 관한 우화가 있다. 한 옛날 깊은 산, 굴속에는 토끼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그곳은 일곱 가지 색으로 꾸며진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굶주림과 추위를 모르고 살던 토끼는 바깥세상이 더욱 아름다울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바깥에서 들어 온 빛이 벽에 부딪치며 굴절되고 반사돼 무지갯빛 아름다운 환경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다.바깥세상에 대한 열망으로 며칠을 앓던 토끼는 자신의 생일날 바깥세상을 향해 기어나가기 시작했다. 뱃가죽으로 기면서 비비고 나가다 보니 몸에 피까지 흘러 내렸다. 안락한 굴속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지만 다시 돌아가기에는 자신이 올라온 위치가 너무 높았다. 그러나 바깥 세계에 도착한 바로 그 순간, 토끼는 소경이 되어버린다. 일곱 가지의 색으로 살아 온 그의 눈은 자연의 태양 광선을 견디어 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하게 된 토끼는 죽을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요즘 우리나라 금융시장은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인해 금융 환경의 구조가 바뀌게 되는 커다란 도전을 받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이를 도약의 기회로 삼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증권사들의 움직임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자기자본 확충과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대형화 노력이다. 2006년 말 기준으로 골드만삭스 등 월가 5대 투자은행(IB)의 평균 자기자본은 26조 원에 이른다. 반면 우리나라 5대 대형 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은 1조8000억 원에 불과하다. 이는 동북아 금융 허브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는 노무라 등 일본의 5대 대형 증권사의 평균 자기자본 4조4000억 원에 비해서도 매우 낮은 수준이다. 따라서 자유 개방 경쟁 환경 하에서 글로벌 IB와의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국내 증권사들의 대형화 노력은 당연해 보인다.하지만 특화된 강점이 없이 단순한 대형화를 통해 올라운드 플레이어(All-round player)로 가는 것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최근 예금보험공사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5개 글로벌 IB들의 자기자본이익률은 24% 정도로 국내 대형 증권사의 평균 12%보다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증권사들은 자본 규모가 작을 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 수익성 또한 낮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원인을 수익 구조 측면에서 살펴보면 글로벌 IB들은 자기 매매가 전체 수익에서 45%를 차지하며, 자산 관리 및 기타(18%), IB(15%), 위탁 매매(12%), 금융 수지(10%) 순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국내 대형 증권사는 위탁 매매 55%, 자산 관리 및 기타(19%), 자기 매매(17%), 금융 수지(5%), IB(4%) 순이다. 즉, 우리나라 증권사들의 수익 기반은 위탁 매매 수수료 수입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어 낙후된 수익 기반을 보이고 있다. 결국 국내 증권사들은 수익원을 다변화해야 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인데, M&A와 기업공개, 기업구조조정 등 고부가가치의 국내 IB 시장은 이미 상당 부분 외국계가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이다.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대형화는 자산운용과 IB 업무 등의 강화를 통한 수익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선진 금융에 대한 획일적인 모방이 아니라 국내 실정에 맞는 전략적인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대형화 하에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점은 인적자원의 중요성이다. 국내 대형 증권사들의 평균 직원 수는 2200명으로 골드만삭스 4만2000명, 노무라 2만 명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준이다. 2006년 스위스 IMD의 발표에 따르면 국내 금융 전문 인력 수준은 세계 45위로 나타나 홍콩(11위), 싱가포르(15위)에 비해서도 뒤처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나라 증권사들의 금융 인력 구성 비율을 보면 전문가(8.9%)와 관리자(4.4%)에 비해 보조 인력이 86.7%를 차지하고 있어서 선진 금융 회사들의 전문가 비중이 절반을 넘는 것에 비하면 인력 구조 면에서도 문제가 있다.자통법의 시행은 치열한 경쟁을 예고한다. 규제의 틀이 바뀌고 그 틀 속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경쟁력을 얻어야 한다. 동굴 밖을 빠져 나가는 순간 자연의 태양광선에 눈이 멀지 않으려면 밖으로 나가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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