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힘 빼는 재경부 금융정책국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에 대해 ‘힘이 완전히 빠졌다’는 평가가 과천 청사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제정안 중 작은 부분인 증권사 지급 결제 허용 문제에 대해 한국은행과 은행권의 반발로 자통법 자체가 제대로 논의되고 있지 않은 상황과 이자율 상한선 하향 조정 문제 등에서 재경부가 밀리고 있는 형국 등을 두고 하는 말이다.재경부 금융정책국은 1970년대와 1980년대만 하더라도 전 정부 부처 내에서 파워가 5위 안에 든다고 할 정도로 막강한 부서였다. 금융정책국장을 만나기 위해서 은행장이 복도에 서 있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기도 했다. 외환위기 직후에도 금융정책국은 무시무시한 곳으로 인식됐다. 금융감독위원회와 더불어 은행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여부를 결정한 곳이 바로 금융정책국이었으며 기업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도 금융정책국이 깊숙이 관여했기 때문이다.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증권사 지급 결제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다. 재경부, 특히 금융정책국이 중심이 돼서 금융 구조 개혁이란 야심작을 내놓으려고 하는데 한은과 은행권이 반대하는 일은 과거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는 얘기다. 금융정책국의 견해를 무시하고 이자율 상한선을 하향 조정한 것과 대출 업체의 이자율을 낮추자는 주장이 드세진 것도 과거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고 얘기하는 관료들이 적지 않다.이렇게 금융정책국이 바뀐 이유는 뭘까. 일부 호사가들은 카리스마의 부재(不在)에서 그 원인을 찾기도 한다. 과거 금융정책국장들은 이헌재 전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 윤증현 금감위원장, 김석동 재경부 차관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들이 많았다고 재경부 관계자들은 전한다. 이 전 부총리의 경우 “시장은 철없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다”는 발언, 김 차관은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말에서 그들의 강력한 추진력과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했다.상황 변화와 시장친화주의 성향 때문그렇지만 재경부 내에선 금융정책국의 위상이나 역할 변화에 대해 시대 상황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아무래도 주류다. 금융정책국 간부들의 면면은 과거와 대비해서 경력이나 능력이 전혀 떨어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임승태 금융정책국장은 경기고에 서울대 대학원을 나오고 대통령 비서실과 재경부 내 요직인 총무과장을 지냈다. 정은보 금융정책과장, 최상목 증권제도과장, 박영춘 보험제도과장 등도 모두 서울대 상대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인재들이다.대신 금융시장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의 구조조정이 이뤄져 지금은 금융정책국이 어떤 역할을 하기 힘든 시절이다. 증권 업계나 보험 업계도 경영이 정상화돼 아무 문제가 없다.금융정책국 간부들이 한결같이 시장친화주의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도 달라진 점이다. 임 국장은 한은과의 갈등에 대해 묻는 기자에게 “소비자 편익을 증진한다는 논리로 보나 재경부의 힘으로 보나 밀어붙인다면 재경부 뜻대로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한은을 무시하는 모양새를 보이면 아무래도 시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협의하고 타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금융정책국 간부들이 시장친화주의를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은 이들이 과거 인사들과는 달리 외국과 민간에서 두루 활동한 경험이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임 국장은 세계은행(IBRD), 최 과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박 과장은 IBRD와 싱가포르의 AMOR은행에서 근무했으며 정 과장은 성균관대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이들은 ‘어깨에 힘을 뺌으로써 금융당국의 진정한 위엄을 세우는’ 실험을 하고 있기도 하다. 금융정책국 간부들은 과거라면 상대조차 해 주지 않았을 민간 금융회사 실무자들과도 만나 허심탄회하게 토론하고 의견을 수용하기도 한다.한편 일각에선 론스타 사태 이후 금융정책국이 전체적으로 몸을 사리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2003년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한 뒤 외환은행의 가치가 높아져 론스타가 떼돈을 벌 것으로 분석되자 론스타로의 외환은행 매각이 문제가 있었다는 논란이다. 이 때문에 당시 금융정책국장을 지낸 변양호 씨가 구속되는 일까지 생기자 당국자들이 이제 책임질 일을 벌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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