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트렌드

맞춤형 펀드 ‘상한가’…강남서 ‘인기몰이’

올 초 서울 코엑스 1층 특별전시장에서 ‘와! 사이언스 과학마을 체험전’이라는 대형 전시 행사가 열렸다. 자기부상 열차, 알코올 로켓, 액체 질소로 만든 구슬 아이스크림 등을 동원해 과학의 기초 원리를 체험을 통해 흥미롭게 배울 수 있게 꾸민 이 행사는 방학을 맞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행사가 끝난 2월 중순까지 2개월 동안 수십만 명이 전시장을 찾았다. 행사를 준비한 전시 기획사 지에스이엔티는 이처럼 많은 관람객이 몰리면서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대박’을 터뜨렸다.하지만 북새통을 이룬 전시장을 보며 흐뭇해 한 것은 지에스이엔티만이 아니었다. 이 행사의 성공은 30명의 강남지역 개인 투자자에게도 큰 수익을 안겨줬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마이애셋자산운용의 ‘사모 사이언스특별자산펀드’에 28억 원을 투자했다. 체험전 개최 비용을 지원하고 입장료 수익을 나눠 갖는 형태였다. 이들이 거둔 최종 수익률은 12.56%. 최초 투자에서 상환까지 4개월가량 걸렸기 때문에 연율로 따지면 37.68%가 된다.4개월 투자로 연 37.68% 고수익최근 강남지역 거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이런 형태의 ‘맞춤형’ 사모 펀드 투자가 인기를 끌고 있다. 사모 펀드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일반 공모 펀드와 달리 투자자가 최대 30명을 넘지 않는다. 투자자 모집을 위한 공개적인 투자설명회도 열리지 않는다. 소수만을 대상으로 은밀하게 투자 정보가 유통되는 셈이다. 새로운 투자 트렌드의 중심에는 강남지역 프라이잇뱅킹(PB)센터가 자리해 있다. 이들이 사모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와 투자자를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과학마을 체험전에 투자한 30명의 투자자도 홍은미 한화증권 갤러리아지점장의 단골 고객들이다. 홍 지점장은 “우리나라의 주류 자산가들이 첫 번째로 꼽는 것은 바로 안정성”이라며 “최근 등장한 사모 펀드는 10% 이상의 확정적인 수익률을 올릴 수 있도록 구조가 짜여 있어 고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홍 지점장의 고객들은 지난해 마이애셋자산운용의 ‘사모 뮤지컬십계특별자산펀드’를 통해 오리지널 캐스트로 화제를 모은 뮤질컬 ‘레 딕스·십계’에도 투자자로 참여했다. 30명의 고객이 모두 45억 원을 모아 투자했다. 홍 지점장은 “뮤지컬이나 드라마, 엔터테인먼트 펀드는 워낙 고객들의 관심이 뜨겁다”며 “투자 개념보다는 문화 사업에 참여한다는 데 자부심을 갖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투자 고객들은 뮤지컬을 관람하며 마치 자신들이 만든 작품을 보는 것처럼 뿌듯해 한다. 물론 그렇다고 수익률이 낮은 것도 아니다. 이들은 불과 4개월간의 투자로 10.2%, 연율로 30.6%의 짭짤한 수익을 남겼다.홍 지점장의 역할은 단순한 상품 소개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투자 아이디어를 발굴해 자산운용사에 펀드화를 제안하기도 한다. 올 2월 만들어진 흥국투신운용의 ‘삼겹살 펀드’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삼겹살 가격이 쌀 때 사두었다 비쌀 때 파는 형태다. 이 펀드에도 홍 지점장의 고객 30명이 45억 원을 투자했다. 그는 “법적으로 사모 펀드는 30인 이하로 제한돼 있다”며 “가능하면 많은 고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이 기준을 최대한 채운다”고 말했다. 사모 펀드는 늘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다. 투자자가 차면 가입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스폿’ 상품이다. 인기 있는 펀드는 단 하루 만에 투자자 모집이 끝나는 경우도 있다.이들 사모 펀드는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하는 기존 펀드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다. 특정 사업의 사업권이나 금전 채권에 투자하는 이런 새로운 유형의 펀드들은 ‘특별 자산 펀드’로 분류된다. 지난해부터 ‘이색 펀드’로 주목받은 한우 펀드, 항공기 펀드, 드라마 펀드, 영화 펀드, 선박 펀드, 고철 펀드, 기숙사 펀드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특별 자산 펀드는 투자 규모가 큰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사모 형태로 만들어진다. 거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사모 펀드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은 이들 특별 자산 사모 펀드가 등장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1999년과 2000년 채권형 사모 펀드와 주식형 사모 펀드가 허용됐지만 개인 투자자들이 실제 투자하는 경우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덩치가 큰 연기금이나 금융회사가 포트폴리오 차원에서 설정한 ‘1인 펀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이재문 메리츠증권 강남리츠클럽 전무도 일찍 특별 자산 사모 펀드에 주목한 프라이빗뱅커 중 한 명이다. 이 전무는 지난 4월 1주일 동안 카자흐스탄에 다녀왔다. 직접 눈으로 살펴보고 현지 아파트에 투자할 예정인 사모 펀드의 사업성을 판단하기 위해서다. 1주일 동안 카자흐스탄 지역을 샅샅이 살펴본 그는 사업성에 확신을 갖고 돌아왔다. 현재 이 전무의 고객 4명이 전체 600억 원 규모인 이 펀드에 50억 원을 투자했다. 나머지 투자자들은 모두 연기금, 금융회사 등 기관투자가들이다. 1년 6개월 만기로 목표 수익률은 연 22%다.이 전무는 PB 업계의 ‘큰손’으로 통한다. 관리하는 자산만 2500억 원대에 달한다. 대부분의 고객이 ‘대한민국 1% 초상류층’에 속한다. 이 전무는 “고객들이 원하는 안전하면서도 수익성이 높은 상품을 찾다 보면 특별 자산 사모 펀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를 찾는 고객들 가운데 주식 투자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부 투자할 경우에도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에 그친다. 그의 고객들의 주식 자산 비율은 5% 미만이다. 이런 보수적인 고객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상품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1주일간 카자흐스탄 출장을 다녀온 것도 이 때문이다.신뢰로 다져진 이 전무의 막강한 고객 기반은 자산운용사들이 사모 펀드 제안서를 들고 그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이유를 잘 설명해 준다.기관투자가 못지않은 막강 파워그는 자산운용사가 내놓은 사모 펀드를 단순히 고객들에게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때로는 자산운용사에 ‘맞춤형’ 펀드를 요구하기도 한다. 지난해 10월 투자한 드라마 펀드가 바로 그런 경우다. 이 전무는 기존에 나온 영화 펀드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영화 펀드는 제작사와 펀드가 흥행 수익을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펀드가 제작사와 함께 흥행 리스크를 부담해야만 한다. 흥행에 실패할 경우 펀드 수익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반면 드라마는 영화에 비해 리스크가 훨씬 적다. 영화는 제작 기간이 무한정 길어질 수 있지만 드라마는 방영 시점에 무조건 맞춰야만 한다. 또한 방송사에 납품하면 일정 비용을 받는 데다 간접 광고, 해외 수출 수익도 어느 정도 사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전무는 여전히 리스크가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자산운용사는 매출 수익이 펀드 투자 원금에 연 12% 수익을 더한 액수를 넘어서는 순간 투자자들이 이를 상환받아 빠져나오는 형태로 상품 구조를 짰다. 투자자들이 연 12%의 수익을 거의 확정적으로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45억 원 규모인 이 펀드에 이 전무의 고객이 35억 원을 투자했다. 사실상의 맞춤형 단독 펀드 형태가 된 셈이다.이 전무가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자금 규모는 200억 원. 연기금 등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투자하는 사모 펀드 상품은 그에는 똑같이 관심의 대상이다. 이 전무는 “대형 기관투자가도 위험 분산을 위해 한 펀드에 100억 원 이상 투자하지 않는다”며 “그 정도 규모는 거액 자산가 고객들도 즉시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산운용사 입장에서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기관투자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PEF(사모 투자 펀드)에도 충분히 투자할 수 있다고 보고 실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물론 맞춤형 사모 펀드가 모든 PB센터의 메인 상품 목록에 올라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숨겨진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국민은행 PB사업팀 관계자는 “고객들의 요구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품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사모 펀드보다는 PB 전용 펀드 판매에 무게를 싣고 있다. 현재 국민은행이 내놓은 PB 전용 펀드는 ‘대투 브릭스 펀드’와 ‘KB 멀티매니저 펀드’ 등 두 가지다. 이들 상품은 국민은행 PB센터 고객만 가입할 수 있다.하지만 개인용 사모 펀드 시장이 점차 확대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다는 시각은 많지 않다. 김태성 우리은행 투체어스 강남센터 과장은 “아직 주류 상품으로 자리 잡지는 못했지만 거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주식, 채권 상품에 대한 대안으로 특별 자산 사모 펀드 시장이 커지는 것이 시장의 트렌드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외국의 사례를 볼 때, 경제 발전과 투자 문화의 성숙에 따라 거액 자산가들을 중심으로 시장 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하게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투자 상품에 대한 수요가 커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김 과장은 “금융자산 100만 달러 이상인 고액순자산보유자(HNWI)들의 특별 자산 사모 펀드를 포함한 대안 투자의 비중이 선진국은 11%인 반면 우리나라는 2%에 불과하다”며 “이는 향후 폭발적인 시장 확대 가능성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하지만 대상을 PEF나 사모M&A 펀드, 주식형 사모 펀드로 확대하면 ‘사모 펀드의 전성시대’는 한층 뚜렷한 흐름으로 부각된다. ‘제2의 장하성 펀드’를 꿈꾸는 공격적인 개인 사모 펀드들이 등장하고 있고 주식형 사모 펀드에 새롭게 관심을 갖는 개인 투자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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