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17억 달러…수학적 재능 월가 ‘호령’

지난해 미국 월가에서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사람은 골드만삭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이었다. 언론들은 그의 연봉 5430만 달러(약 505억 원)를 언급하면서 ‘천문학적’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것은 껌값(?)이었다. 곧 이어 발표된 미국 내 최고 헤지 펀드 CEO의 연봉은 10억 달러, 원화로는 1조 원을 훌쩍 넘어섰다. ‘천문학적’이라는 말보다 더 센 수식어가 필요했다.기관투자가를 위한 전문지 〈알파(Alpha)〉에 따르면 상위 25개 헤지 펀드의 경영자들이 지난 한 해 동안 집으로 가져간 수익은 총 140억 달러(약 13조 원)로 뉴욕시 공립학교 교사 3만 명의 3년치 봉급과 맞먹었다. 이 가운데 1위를 차지한 제임스 시몬스(르네상스테크놀로지 CEO)의 연봉은 17억 달러(약 1조6000억 원)에 달했다.1년에 1조 원 이상을 버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까.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제임스 시몬스를 ‘10억 달러짜리 연구원’이라고 불렀다. ‘연구원’이라는 명칭은 그의 독특한 이력에서 유래한다. 시몬스는 신발 공장 사장의 아들로 태어나 미 서부지역 명문대학 버클리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고 베트남 전쟁 당시 암호 해독 전문가로 활약했다.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발언으로 직장을 그만둔 뒤엔 하버드대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수학적 재능은 헤지 펀드 업계에 발을 담그면서 오히려 꽃을 피웠다.시몬스가 자신의 헤지 펀드 회사인 르네상스테크놀로지를 설립한 것은 1978년. 이후 매년 놀라운 성과를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대표 펀드는 ‘메달리온(Medallion)’으로 현재 자산 규모가 53억 달러에 달한다. 이 펀드의 수수료는 거의 ‘날강도’ 수준이다. 일반적인 헤지 펀드가 연간 수수료로 운용 자금의 2%, 운용 이익의 20%를 부과하는 데 비해 메달리온은 운용 자금의 5%, 운용 이익의 44%를 떼어 간다. 하지만 어떤 투자자도 불평하지 않는다. 수수료를 내고도 투자자의 주머니가 두둑하기 때문이다. 메달리온은 1989년 만들어진 이후 수수료를 제하고도 매년 평균 36%의 수익률을 기록했고 작년엔 44%의 이익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전설적인 헤지 펀드 CEO인 조지 소로스도 시몬스 앞에서는 함부로 명함을 꺼내기 힘들다.투자전략 수학·과학에 크게 의존어떻게 돈을 굴리기에 이렇게 높은 수익률을 달성할 수 있을까. 물론 헤지 펀드의 특성상 운용 전략이나 방침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는다.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는지 또는 어떤 전략 모델을 채택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이는 워런 버핏이 자신이 주식을 사기 전에는 그 주식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시몬스가 금융잡지인 〈펜션 앤드 인베스트먼트(Pension & Investment)〉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밝힌 내용이다.다만 시몬스의 투자 전략이 경제학이 아닌 수학과 과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공개된 사실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르네상스테크놀로지의 본사는 수학 과학 공학 등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많은 학자들로 채워져 있다. 이곳이 ‘캠퍼스’라는 별칭을 얻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엔 위성사진의 판독과 수정에 정통한 천문학자들까지 합류했다. 시몬스의 이런 성향은 9년 전에 열린 그의 환갑잔치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톱스타들이 여흥을 돋우는 사치한 파티 대신 기하학과 관련한 심포지엄으로 환갑잔치를 대신했다.누구보다 많은 돈을 가진 시몬스도 가정적으로는 많은 불행을 겪었다. 두 아들은 각각 23세와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고 애지중지하는 딸은 자폐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내년이면 70줄에 들어서게 되는 시몬스. 그는 요즘 공익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우수한 수학자와 과학자를 길러내기 위한 대규모 자선기금을 마련했고 자신의 딸이 앓고 있는 자폐증을 연구하는 단체에도 매년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다. “난 시몬스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내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 잠을 하나도 자지 않는 모양이다.” 시몬스와 함께 자선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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