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송병삼 팀장의 인터넷 대화법

격려·제안 ‘마음껏’… 마음 주고 받아

2006년 가을 어느 날 아침 출근길. 송병삼 롯데마트 경영정보팀장(44) 머릿속에 문득 가족들 얼굴이 하나 둘씩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인 딸, 그리고 아내. 그날도 그는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 7시에 집을 나선 참이었다. 야근과 술자리를 거듭하느라 며칠째 귀가 시간은 밤 12시를 넘겼었다.며칠 동안 가족들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떠올려 보았다. 생각나는 게 거의 없었다. 특히 주말 이후엔 아이들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일에 매달리느라 가족과 멀어지는 한국의 중년 아버지가 바로 자신이란 사실을 그 순간 깨달았다.“사회생활 열심히 해 자녀들 잘 키우는 게 가장의 첫 번째 임무라는 생각만 했죠. 동료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나와 비슷한 생활이라 모두 그렇게 사는 거라고 위안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건 내가 만들어낸 논리일 뿐 우리 가족의 논리는 될 수 없다는 것을 그날 아침 문득 깨달았습니다.”짧은 순간 자각한 현실과 그에 따른 위기감은 그에게 제법 크게 다가갔다. 그렇지 않아도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이 아빠 품에서 자꾸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아 고민하던 때였다. 혹시 자신이 아들을 변하게끔 만든 것은 아닌지 걱정이 밀려오면서 마음이 더 아팠다. 당장 해법을 찾아야만 했다. 특히 가족간 대화 단절이라는 문제만큼은 즉시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그가 찾은 답은 인터넷 커뮤니티다. 직장에서 정보기술(IT) 분야를 맡고 있는 만큼 인터넷을 적극 활용하자는 뜻과 함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인터넷 카페 ‘행복한 가정 경영하기(cafe.naver.com/lsbs10003)’는 이렇게 탄생했다.사춘기 아들과의 소통에 도움“이 카페는 미래에 보다 더 행복한 가정을 실현하기 위해 가족간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나누고 행복을 꿈꾸는 아름다운 커뮤니티입니다….”‘행복한 가정 경영하기’ 인터넷 카페 첫머리에 올라 있는 말이다. 카페는 모두 5개 카테고리에 20개 방으로 구성돼 있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홈페이지와 관할 교육청, 서울시 교육청도 링크해 놓았다. 가족신문 방을 따로 만들어 종이신문이 아닌 인터넷신문 제작도 시도했다. 가족메모 방에선 서로에 대한 전달 사항이 교환된다.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얼굴을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진 못해도 이전보다 훨씬 서로의 소식과 생각을 알게 됐다. 대화를 살리자는 첫 번째 목표는 수월하게 달성한 것이다. 송 팀장은 “무엇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인터넷 카페를 마련했는지 가족들이 모두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따라주고 있어서 좋다”면서 “직접 말하기 쑥스러운 이야기도 카페를 이용하면 문제없다”고 말했다.특히 그는 카페가 아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창구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는 데 만족하고 있다. 카페를 만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에게 손을 내민 적이 있었다. 가족신문 방에 장문의 글을 하나 남긴 것이다. 제목은 ‘아들의 바람직하지 않은 변화를 보면서’. 글은 아내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처음 아들을 얻었을 때의 행복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해 아들이 실천하길 바라는 몇 가지 주문으로 마무리된다.“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이 달라졌다. 예전과 다른 행동들을 보면서 마음 한쪽에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하고 쓸쓸한 마음을 품게 되고, 그 때문에 아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한 것 같다…. 아들, 이제 다시 변하거라.”며칠 후 댓글이 달렸다. 글 제목은 ‘아들의 각오’. 아들 송정식 군이 긴 고민 끝에 직접 글을 써서 올린 것이다.“난 이제부터 새로운 각오로 살 것이다. 우선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 엄마, 아빠에게 신뢰감을 줄 것이다. 공부할 때는 억지로 하지 않겠다. 할 때 제대로 집중해 하고 놀 때는 당당하게 나가서 놀 것이다…. 학생, 아들, 오빠 신분에서 본분을 다할 것이다. 기대해 주세요.”이 일은 가족 전체에게 서로를 생각하는 좋은 계기로 작용했다. 이제는 온라인 대화에 그치지 않고 주말 산행을 같이 하면서 많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올 여름에는 아들과 단 둘이서만 동해안을 일주하자는 계획도 세웠다. 그는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면서 “사춘기에는 소외감을 없애 주는 게 중요한데, 인터넷 카페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이뿐만 아니라 인터넷 카페는 아이들에게 부모의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도 효과가 크다. 언젠가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쓴 편지를 가족신문 방에 올렸다. 이 글에 대해 딸 송지선 양은 “저는 부모님을 공경하며 존중하는 착한 딸이 되겠습니다”라고 썼고 아내 안해숙 씨는 남편을 위로하는 사랑 가득한 댓글을 달았다. “자기야, 어머니 생각만 하면 며느리인 나도 가슴이 저리고 애달프고 사무치도록 그립곤 해. 살아계신다면 우리에게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 돼 주실까? 어머니는 아실까? 우리가 이토록 당신을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행복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으로 어머니 기쁘게 해 드리자. 자기야 사랑해. 그리고 기운내~”“부모는 지혜를 심어주는 후견인”그는 ‘가정 경영’에 대해 특별히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다. 관련 서적을 찾아보거나 연구를 해 본 경험도 없다. 더구나 가족들은 ‘경영’이라는 말에 생소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는 왜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는 결심에 ‘경영’을 접목했을까.“나와 세상사, 가정의 키워드는 경영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우리 가정의 최고경영자(CEO), 가족 구성원은 협력자이자 고객이죠. 성과를 공유하고 잘못된 방향을 바로잡아 앞으로 나아가는 것도 회사 경영과 다르지 않아요. 가정을 경영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여러모로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업도 효율적인 기업보다 효과적인 기업이 경쟁력 있지 않습니까.”그에게 김승연 한화 회장의 보복 폭력 의혹 사건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물었다. 잠시 논평을 망설이던 그는 “자식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게끔 도와주고, 자식이 성인이 되면 세상을 스스로 항해할 수 있도록 뒤에서 도와주는 게 부모”라면서 “부모가 문제 해결에 직접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슬기롭고 정직하게’를 가훈으로 삼은 그로선 이해하기 힘든 아버지의 모습인 셈이다.그는 인터넷 카페를 ‘지금처럼만’ 운영할 계획이다. 가족 이외 회원 가입은 아예 봉쇄해 놨다. 유명 카페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도 없다. 처음 만들 때처럼 ‘서로의 마음을 아는 장소’로 유지하겠다는 생각이다.“인터넷 카페가 영원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커가고 부모가 나이 들면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해질 테니까요. 우리 가족이 매 순간 재미와 흥미,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할 겁니다. 중요한 것은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