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경영

배려가 키워드…‘팀워크 다져라’

경기도 일산에 거주하는 김고민 씨(43·가명)는 요즘 이혼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아내와의 갈등이 회복될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기 때문이다. 불화는 사소한 말다툼에서 비롯됐다. 어느 날 김 씨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농촌에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한 것이 화근이 됐다. 김 씨의 말에 아내가 “그렇게 소극적이니 성공을 못하는 게 아니냐”며 면박을 준 것. 이에 김 씨는 “이만큼 사는 게 누구 덕인데 타박이냐”고 대거리를 했고 아내의 불평이 이어졌다. 그 후 김 씨 부부는 화해하지 않은 채 6개월을 보냈다. 부부 사이가 파국으로 치달은 것은 물론다.‘부부 농사는 벼락치기 불가능’한국은 이혼 선진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도 한국의 이혼율은 최상위권에 속한다. 2003년 2위, 2004년에 3위였다. 2004년 이후 이혼율이 다소 줄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높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한 부부는 모두 12만5000여 쌍에 이른다. 하루 342쌍이 갈라선 꼴이다.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전문가들은 부부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갈등’에 대한 대처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사소한 다툼을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해 끝내 이혼 법정에 서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이를 김병후 행복가정재단 이사장(정신과 전문의)은 ‘어설픈 이혼’이 많다고 표현한다. 김 이사장은 “부부 사이의 차이로 인한 갈등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며 “문제는 이 갈등을 해소하는 데에 대부분의 부부가 미숙하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전문가들은 과거엔 대개 여성 배우자가 참는 것으로 부부 사이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지 않았지만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행복에 대한 요구가 강해짐에 따라 더 이상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에 가정의 안정과 행복을 기댈 수 없게 됐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노하우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행복한 부부와 불행한 부부의 갈림길은 사소한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갈등의 조정 능력은 저절로 키워지지 않는다. 어떤 일이든 잘하기 위해선 노력해야 한다. 강학중 가정경영연구소장은 “와인을 공부하고 골프를 익히는 사람이 많은데 삶에서 정말 중요한 부부 관계에 대한 투자는 매우 부족하다”며 “부부 농사는 벼락치기가 안 되는 만큼 평소 ‘시간’을 투자해 공감대를 형성할 것”을 강조했다.공감대 형성을 위해서 무엇보다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를 인정하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신의 주장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 갈등의 불씨를 상당 부분 끌 수 있다. 김 이사장은 “화를 내는 이유를 경청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갈등의 80~90%는 해결된다”며 “배우자의 어떤 분노에도 정당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상대를 인정하라’는 조언은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어렵다. 말도 하기 싫고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언짢아지는 상대를 마주하는 것 자체가 감정적인 거부감을 일으킨다. 이럴 때는 갈등 해결에 앞서 서로간의 친밀감부터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전혀 의도되지 않은 이유로 더 큰 불화를 겪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여행, 외식, 스포츠 등을 통해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효과적이다.무턱대고 함께 있는다고 친밀감이 형성되지는 않는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세심하고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 대화의 물꼬는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대방의 관심사로 시작하는 것이 좋다. 첫마디는 무조건 부드러워야 한다. 김 이사장은 “여성이 남성에게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면 부드럽게 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등산을 하면서 손을 잡아주거나 포옹하면 자연스럽게 친밀감이 형성될 것”이라고 조언했다.‘가벼운 스킨십이 행복 밑불’기업이든 가정이든 위기 대응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평소에 충분히 대비하는 것이다.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우선 가벼운 스킨십을 정기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행복가정재단이 진행하고 있는 ‘1, 2, 3, 4 실천운동’의 취지도 같은 맥락이다. 하루에 한 번은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포옹하고, 1주일에 2번은 배우자를 칭찬하고 1달에 3번은 가족과 함께 식사하고 얘기를 나누며 4주에 1번은 부부가 각자의 시간을 가지면 놀라울 정도로 부부관계가 개선된다는 설명이다.일과 가정에 대한 균형 감각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경우 일과 가정의 우선순위를 부부간에 합의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강 소장은 “일과 가정의 균형을 잡자는 것이지 일을 포기하라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아내와 가정과 한 약속을 최대한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배우자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것을 강요하면 갈등만 키우게 되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가정과 비교하고 상대를 평가하는 행동을 피해야 한다. 반대로 상대의 비현실적인 요구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하다. 김 이사장은 “소득이 적다고 불평하지만 실제로 원하는 것은 사랑일 수 있다”며 “상대가 진심으로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할 것”을 주문했다.부부간의 팀워크를 돈독히 다지는 것도 필수다. 고부관계나 자녀 문제로 다투는 부부가 많지만 부모님이나 자녀보다 더욱 중요한 사람은 배우자라는 인식을 확고히 해야 한다. 결국 최후에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부모님이나 자녀가 아니라 배우자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평소에 진실한 대화를 많이 하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억지로라도 시간을 내 대화를 하라는 얘기다. 시간이 부족하다면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나 e메일도 적잖은 도움이 된다.부부의 노력만으로 갈등을 극복할 수 없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기업도 미래 비전이 불확실한 경우 외부 컨설팅을 받는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향후 전략을 세우는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악화된 감정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 갈등도 전문적 식견을 가진 제3자의 도움을 받으면 의외로 잘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실제로 부부 관계 악화를 이유로 정신과나 상담소를 찾는 발길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과거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갈등이 진행된 상태에서 상담을 신청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엔 더욱 행복해지기 위해 오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돋보기 ‘부부의날’ 국가기념일 지정부부관계 회복 공론화 계기 마련지난 4월 24일 국가기념일 목록에 새로운 기념일이 추가됐다. 국무회의에서 매년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지정한 것이다.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기념일이다. 1995년 권재도 목사(부부의 날 위원회 사무총장)가 처음으로 추진한 이후 무려 13년 만의 성과였다.사실 부부의 날 지정이 이렇게 오래 걸릴지는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2001년 국회에 제출돼 2003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행정 당국의 마인드 부족 때문이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지정된 만큼 부부의 날에 대한 권 목사의 기대는 적지 않다. 부부관계의 회복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란 설명이다.권 목사는 “어버이날, 어린이날, 청소년의 날 등 가정과 관련한 기념일이 많지만 정작 가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부의 날이 없었다”며 “부부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만큼 좋든 싫든 많은 부부들이 부부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고민해 보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동안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고려됐던 부부관계가 사회화, 국가화됐다는 말이다.권 목사는 부부의 날을 세계화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유엔을 통해 부부의 날을 세계기념일로 지정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세계 각국의 부부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속내다.권 목사는 “국가기념일이 된 만큼 이제 정부의 재정적, 행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며 “한국의 국가기념일이라는 ‘공인 인증’을 밑돌 삼아 세계기념일 지정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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