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을 위한 제도 개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통법) 등 금융 환경의 기본 구조를 바꾸게 될 굵직한 도전이 우리 금융 시장에 놓여 있다. 때마침 정부는 현재의 경제 제도와 질서가 글로벌 기준과 상치되는 점은 없는지 대대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자유 개방 경쟁 환경 하에서 우리나라 제도 전반에 대한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의지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다. 정부의 움직임이 한국 금융 자본시장과 관련 금융사의 건전한 발전으로 연결되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적 조건을 알아본다.우선, 우리나라 금융사의 경쟁력 제고에 지장을 주고 있는 법령이나 역차별 규정은 없는지 차제에 종합적이면서 미시적인 검토를 해야 한다. 예컨대 현행 ‘은행법’과 ‘금융지주회사법시행령’상 지주회사의 해외 손자회사는 은행업만을 취급하도록 돼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현지 법령이 은행업 외에 증권 인수 및 매매 등 증권업과 기타 비금융업 취급을 허용하더라도 제한된 은행업만을 인가함으로써 오히려 은행의 경쟁력을 우리 스스로 제한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이뿐만 아니다. 금융사에 따라서는 국내 법규의 제한 때문에 기존 해외 지점 이외에 별도의 현지법인을 설치해야만 하는 등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각 금융권역별로 제도 개선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아울러 자통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대로 금융통합법의 제정 작업도 서둘러야 한다.둘째, 우리 금융사의 경쟁 대상이 더 이상 국내 금융사가 아니라 글로벌 금융사라는 점을 규제 당국자나 각 금융사가 주지할 필요가 있다. 자통법의 근본 취지는 실물 경제에 걸맞은 자본시장의 형성과 증권 산업의 경쟁력 제고에 있다. 외환위기 이후 지나치게 은행에 편중된 금융 시스템을 은행과 자본시장 간 균형 발전 시스템으로 전환해 21세기 혁신 산업의 자금 조달 역할을 충분히 감당하게 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소액 지급 결제 업무는 그 자체가 자통법의 핵심 사항은 아닐지라도 증권 투자자의 편익을 향상시켜 증권업의 경쟁력 제고로 연결될 수 있다. 지급 결제의 안전성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보완하는 방향에서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셋째, 금융사 인·허가 업무와 관련해 국내 기관에 대한 역차별은 없는지 검토해야 한다. 향후 인수·합병(M&A)을 통한 금융사 간 합종연횡이 예상된다. 진입과는 달리 퇴출이 어려운 우리나라 시장 구조를 감안한다 할지라도 인·허가 과정에서 외국 기관에 비해 국내 기관에 대한 상대적인 역차별이 있었다면 차제에 시정해야 한다. 무분별한 금융업 진입 시도도 문제지만 진입 과정에서의 과도한 규제는 불필요한 규제 비용과 지대만을 창출하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현행 제도 개선 과정에서 각계 전문가의 참여 폭을 대대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업계와 학계를 포함해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기구로 격상하고 이 부분에서 필요한 제도 개선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와 관련, 지난해 11월 발표된 미국 자본시장규제위원회의 중간발표 과정은 우리의 규제 완화 작업을 어떻게 수행해야 할 것인지 시사점을 준다. 미국 자본시장규제위원회는 투자자 기업 금융계 법조계 학계 전반의 선도적인 전문가 그룹 22인으로 구성된 독립적이고 초당파적 위원회다. 주식회사의 근간인 주주의 권리 보호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되 비용·이익 원칙에 충실한 규제 절차의 수립과 과도한 소송을 유발하는 사적 및 공적 제재 시스템의 개선 필요성을 제안하고 있다.하지만 미국 자본시장규제위원회의 중간보고서의 내용을 한국 금융시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예컨대 미국의 골칫거리인 집단소송의 경우 원고에 거증 책임이 있는 한 한국에서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 시장과 선진 금융시장 간 인프라 격차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지식을 소유한 전문가들이 제도 개선 과정에 포함돼야만 제대로 된 제도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선진 시장이 경쟁력 유지 확보를 위해 제도 개선에 끊임없이 매진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과정에서 광범위한 의견 조정 작업을 거쳤다는 점이다.격변하는 금융 환경 변화에 때맞춘 정부의 제도 개선 작업이 우리 금융사와 금융시장을 도약시키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장범식 숭실대 경영학 교수 bsjang@ssu.ac.kr1957년생. 80년 서울대 영문학과 졸업. 93년 미국 텍사스대 경영학 박사. 93년 한국증권연구원 연구위원. 95년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현). 98년 코스닥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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