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콰르텟엑스(Quartet - X)

팬클럽 몰고 다니는 클래식 그룹

알파벳의 스물넷 째자 ‘엑스(X)’는 규정되지 않은 미지의 것을 상징한다. ‘엑스 파일’은 미결의 수사기록이다. 예측할 수 없는 신세대를 우리는 한때 ‘엑스 세대’라고 불렀다. 그래서였을까. 클래식 음악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현악4중주 그룹 ‘콰르텟엑스’를 만나러 가는 길에 기자의 머릿속에는 수십 개의 물음표가 떠다녔다. ‘다른 직업은 없는 전업 클래식 연주단, 그것도 현악4중주만 한다는데 생계유지가 가능할까?’ ‘멤버가 모두 유학 경험이 없는 소위 국내파라는데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 음악계에서 어떻게 흥행이 되는 걸까?’하지만 그들이 자신들을 알파벳 X로 규정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게 되리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클래식=우아하지만 지루한 음악’ ‘연주복=연미복’ 같은 등식에 확신을 갖고 있던 기자는 뒷머리를 하나로 묶은 장발의 남성 바이올리니스트(리더 조윤범·32)와 마주하는 순간 이 공식들은 일찌감치 버려야 했다.2002년 9월, 이들은 〈거친바람, 성난파도〉라는 이색 제목의 공연으로 데뷔했다. 이후에도 독특한 색채로 숱한 화제를 낳으며 꾸준히 언론의 주목을 받아 온 젊은 연주자 그룹이 콰르텟엑스다. 클래식 음악 그룹이지만 대중가수처럼 팬클럽을 몰고 다닌다. 팬 층도 다양하다. 음악 마니아뿐만 아니라 클래식을 전혀 접해보지 않았던 10대 청소년들도 이들에게 열광한다. 지난해는 또 모차르트와 쇼스타코비치 탄생 기념의 해를 맞아 모차르트의 작품 23개와 쇼스타코비치 작품 15개 등 총 38개의 현악4중주곡을 12차례에 걸쳐 모두 연주하는 〈모차르트 쇼스타코비치 컴플리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올해의 가장 중요한 계획도 12회 연주회 시리즈다. 타이틀은 〈히스토리〉. 32명 작곡가들의 현악4중주 중 걸작으로 평가받는 곡들을 모았다. 연주회의 하이라이트를 담아 두 번째 앨범도 내놓는다.영화 〈호로비츠를 위하여〉에 출연했고 공연장 선택에도 제한이 없다. 지하철 역사는 물론이고 소년원 맹아원 등을 ‘찾아가는 연주회’도 이들에게 중요한 이벤트다.콰르텟엑스가 이토록 활발한 음악 활동을 벌일 수 있는 것은 전업 연주단이기 때문이다. 마치 샐러리맨이 주5일 근무를 하듯 콰르텟엑스는 주5회 모여 연습하고 전적으로 공연 수익으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사실 클래식 인구가 많지 않은 한국 음악계에서 이 같은 시도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어차피 클래식 음악 관련 직업을 갖고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게 녹록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니 유학 경험도 없는 우리가 현악4중주를 업으로 삼겠다고 마음먹은 게 오히려 안정적인 길인지도 모르지요. 요즘 이곳저곳에서 부르는 곳이 많은 걸 보면 역시 세상은 바꾸기 나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제1바이올린을 맡고 있는 리더 조윤범은 “우린 업계 1위”라며 이렇게 대답했다. 현악4중주를 전업으로 하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는 의미다.이들은 처음부터 전업 연주단을 생각하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4중주를 부각시키고 싶었습니다. 현악4중주는 실내악에 묻혀 있는 경향이 있었지요. 사실 많은 작곡가들이 개인적인 성찰이 있었던 시기에 4중주를 작곡했습니다. 그래서 이 음악을 함께 세상에 알리자고 다짐한 겁니다.”첼리스트 오새란(27)의 말이다. 그녀는 조윤범과 더불어 원년 멤버다. 이들은 단지 현악4중주가 좋아서 모였다가 지금의 콰르텟엑스를 만들었다. “피아노 없이 독자적으로 연주할 수 있는 형식의 음악이 현악4중주죠. 저는 음악대학을 졸업하는 순간부터 오케스트라에 입단할 생각은 하지도 않았어요. 현악4중주는 고요함부터 폭풍 같은 소리까지 낼 수 있어 인생이 담긴 일종의 사회의 미니어처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처음에 모여 그저 좋은 곡을 연습만 했다. 데뷔 무대는 2002년 9월에 가졌지만 모인 것은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현악4중주가 잘 알려지지 않은 만큼 레퍼토리를 익히는 것만 해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죠. 그래서 주2~3회 하던 연습이 차츰 5회로까지 늘어났어요. 모험 없이는 이득이 없듯이 과감한 도전을 해보자고 다시 한 번 뜻을 모았습니다.”김치국 비올리스트(30)는 “주5회로 연습 시간이 늘어난 순간 다니던 직장도 모두 접고 음악에 올인해야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심지어 그가 콰르텟엑스 공식 웹사이트에 적어 놓은 취미는 ‘10시간 동안 연습에 집중하기’다. “서른 전에는 10시간을 쉼 없이 연습했는데 지금은 조금 힘들긴 해요.”(웃음)‘전업 현악4중주단’이라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이들의 파격 행보는 일일이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계속되고 있다. 소위 음악계의 관행이라 여겨지는 대부분의 것을 뒤집었다. 연주자의 화려한 프로필 소개가 곧 장식이 되는(그 대신 점잖은) 음악회 포스터 대신 자신들이 직접 디자인한 독특한 일러스트로 포스터를 만들었다. 예술을 소개하는 포스터인 만큼 그 자체로도 역사에 남을 하나의 예술품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대중이 쉽게 접근하도록 각각의 곡에는 별명을 달았다. 관객에게 선입견을 심어줄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음악 전공자조차 기억하기 힘든 클래식 곡들을 쉬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장점이 크다는 게 이들의 말이다. 다만 이것 때문에 음악계 관계자들로부터 많은 공격을 받고 있기에 역사적 고증을 통해 연관성 있는 제목을 달기 위해 애쓴다고 했다. 예를 들면 이들이 〈파리에서의 눈물〉이라는 별명을 단 차이코프스키 현악4중주 3번은 차이코프스키가 파리에서 친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쓴 곡이다.연주할 때는 최대한 숨소리도 크게 내고 표정도 녹화 비디오를 보며 연구한다. 관객이 악보를 보지 않고도 이들의 보디랭귀지를 통해 음악을 몸소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콰르텟엑스는 그래서 연구하는 음악 그룹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현악4중주의 대중화를 위해 그 어떤 노력이든 할 것”이라는 게 멤버들의 공통된 의견이다.“그동안 클래식 음악계에는 대중과 호흡하는 연주 단체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음식을 나눠 먹지 않은 셈이라고 할까요.”(조윤범)클래식 음악의 높은 문턱을 낮추기 위해 이들은 매 공연이 있을 때마다 그에 앞서 연주곡과 작곡가에 관한 강의도 함께 연다. 일종의 교육 마케팅이다. 지금 클래식을 즐기는 마니아층도 처음부터 음악을 알고 태어난 것은 아니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콰르텟엑스는 올해 〈콰르텟티스트〉라는 책을 내놓을 계획이다. 현악4중주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는 음악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현악4중주 팀으로 살아가면서 알게 된 모든 교훈이 들어 있다.이들은 현악4중주단으로 사는 것을 결혼에 비유했다.“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알게 되죠. 공통의 목적을 갖고 만났으니 내가 싫어하는 것은 남들에게도 하지 말아야죠. 인생을 배우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오새란의 말에 김치국도 “다들 개인적으로 명예를 얻겠다는 생각보다는 한국을 대표하는 현악4중주단 콰르텟엑스로 남고 싶은 게 꿈”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최근 팀에 새로 합류한 제2바이올린의 박소연(25)도 “공부하는 연주팀으로 남고 싶다”고 덧붙였다.한마디로 연주 활동을 통해 살아가는 것을 배우고 있다는 이 젊은이들의 꿈은 결국 한 가지다. 어느 날 유럽 어딘가에서 초청 연주회를 여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음악가들과 관객으로부터 “당신들이 바로 콰르텟엑스인가”라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날을 위해 연습을 거듭하며 인생을 배우고 있는 이들 젊은 연주자들의 3월 공연은 3월 23일 서울 서초동 DS홀에서 열린다. 레퍼토리는 멘델스존과 슈만이다. (02-3473-2500) q김소연 기자 selfzone@kbizweek.com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