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외부통제의 필요성

최근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한국은행과 산업은행의 직원 평균 임금이 8000만 원가량이고 간부 직원 수가 다른 금융회사보다 훨씬 많다는 점을 두고 한 말이다. 올해 들어서도 공기업(공공기관)의 폐해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공기업의 부실 경영, 방만 경영 문제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기업은 ‘주인이 없기’ 때문에 민간 기업에 비해 경쟁력과 역동성이 떨어지고 폐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왔다. 그간 수차례 민영화 정책이 시행되고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에서 대대적인 공공 부문 개혁이 단행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참여정부 초기에는 민영화, 회사 분할 등 구조개혁 방안이 빠진 채 경영 혁신에 무게가 실림으로써 이전에 비해 다소 힘이 빠진 듯 보였다. 그러다가 참여정부 중반 이후 정부산하기관기본법이 제정되고 공공 기관 지배 구조 혁신 방안이 마련되는 등 다시 공공 부문 개혁의 고삐가 당겨졌다. 전체적인 강도는 예전에 못지않다고 할 수 있다.오늘날 공공 기관들은 다중 감시 체제에 놓여 있다. 국회나 감사원으로부터 감사를 받고 기획예산처, 주무 부서의 감독과 통제를 받으며 경영 평가, 혁신 평가로 편할 날이 없다. 감사받고 평가받느라 할 일 못한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다. 또한 공기업 경영에는 웬만한 혁신 기법들이 ‘종합 세트’로 동원되고 있다. 규모가 크든 작든, 사업 성격이 무엇이건 ERP, 식스시그마, 사업 구조 재구축, 고객 만족, 윤리 경영, 사회 공헌 등 안하는 게 없다.이렇게 밤낮으로 감시받고 좋다는 기법은 모두 도입하고 있는데 왜 문제가 생기는 것인가. 공공 기관 구조 개혁이나 경영 혁신의 어디에 잘못이 있다는 말인가. 여러 가지 진단이 가능하지만 지배 구조의 관점에서 ‘신이 내린 직장’의 원인이나 대책의 일단을 찾을 수 있다.지배 구조의 본질은 다양한 이해관계자 간에 이해를 조정하고 대리인 비용을 축소하는 데 있다. 공기업의 경우에는 국민이 주인(principal)이고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리인(agent)이며 공기업 경영자는 다시 정부로부터 위임을 받은 대리인에 해당한다. 복잡한 대리인 관계뿐만 아니라 시장경쟁이 없거나 매우 제한적이라는 특징도 갖는다.그러다 보니 공기업의 지배 구조는 내부자 통제(insider control)의 경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외부의 시장이나 주주가 견제 역할을 하지 않고 정부도 감독이나 통제는 하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터에 눈을 부릅뜨고 감시자의 기능을 수행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과적으로 경영자와 종업원 등 내부자들이 공기업 경영의 통제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내부자가 경영하고 내부자가 통제하는 상황에서 자기들한테 유리한 방향으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복지는 최대로, 관리는 헐렁하게 해도 밖에서 잘 모르거나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영 환경이 악화되더라도 경비 좀 절감하면 그만이다. 사람을 자르고 부서를 없애는 등 야단법석을 떨 필요도 없다.‘신이 내린 직장’의 폐해를 없애려면 감시 기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정부 국회 등 다중 감시의 주체들이 상시적으로 감시하는 체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이해관계(stake)가 걸린 주체들이 감시 활동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개설한 공공 기관 경영 정보 공개시스템(www.alio.go.kr)은 매우 의미가 크다.정부, 평가단, 비상임 이사, 언론이 다른 일 제쳐 놓고 공기업 감시만 할 수는 없다. 한정된 기간과 노력으로 인해 허점(loophole)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감시 활동의 주체와 정보 공개의 범위가 확대된다면 공기업 감시의 효율성이 크게 제고될 수 있다. 해당 공기업도 문제의 소지가 없도록 더 많은 신경을 쓰게 될 것이다.공기업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 다중 감시와 혁신 활동의 영향으로 민간 기업 못지않은 효율성을 보이고 있는 곳도 적지 않다. 일부 내부자 통제 모형에 속한 공공 기관 지배 구조를 외부 통제 강화로 보완하고 기존 감시 체제를 개선한다면 상품시장의 경쟁과 주식시장의 견제가 없는 데서 오는 한계를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김용열 홍익대 상경대 교수 yykim@hongik.ac.kr1957년생. 80년 성균관대 경상대 졸업. 86년 서울대 경영학 석사. 93년 일본 고베대 경영학 박사. 84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2002년 중앙대 경영대 겸임교수. 2005년 홍익대 상경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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