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업계 지각변동 오나

백화점계 vs 비백화점계 ‘양대 구도’

2007년 1월 홈쇼핑 업계는 그 어느 해보다 방송채널 사용료 계약에 난항을 겪고 있다. 케이블방송사업자(SO)들이 벌써부터 100% 가까운 인상률을 요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홈쇼핑 사업이 급성장한 최근 3~4년 동안 SO들은 방송 수수료를 매년 30~40% 올려 왔다. 보통 계약이 끝나는 12월 안에 재계약이 이뤄져야 하지만 몇 년 전부터 SO와 홈쇼핑 업체 사이에 수수료 인상률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다 보니 해를 넘기는 것이 관례가 돼 버렸다.지난해 롯데쇼핑이 홈쇼핑 사업 진출을 선언하면서 채널 선점을 위한 경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됐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우려가 연초부터 현실화되기 시작한 것이다.롯데의 홈쇼핑 사업 진출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백화점 기반을 가진 현대홈쇼핑은 롯데의 참여를 또 하나의 기회로 여기고 있는 반면 GS홈쇼핑과 CJ홈쇼핑은 롯데가 쉽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농수산홈쇼핑은 SO 수수료가 높아지는 것에 대해 우려할 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백화점 측은 일단 자신감을 보인다.“우리가 2002년 방송을 시작하면서 업계 전반적으로 상품 구성이 업그레이드됐다. 그 전까지는 저렴한 중소기업 제품 일색이었는데 대기업 제품들이 대거 들어와 시장을 키운 것이다. 보험 여행 유학 등 무형 상품도 우리가 처음으로 시도했다. 롯데가 들어오면 고급 브랜드가 유치되면서 또 한 번 도약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화점 브랜드를 많이 확보하고 있는 곳이 유리하다.”지금은 홈쇼핑 고객과 백화점 고객이 확연히 구분돼 있지만 롯데의 참여로 기존 백화점 고객도 홈쇼핑으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 전체적으로 시장 규모도 커질 수 있다는 점은 업계에서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이다. 롯데의 브랜드 파워 때문에 소비자들이 손쉽게 지갑을 열 것이라는 얘기다. 현대홈쇼핑은 8월 천호동에 스튜디오 6개를 보유한 신사옥을 마련한다. 모기업인 현대백화점도 할인점 사업 진출 등 사업 확장에 의욕적인 모습이다.반면 GS홈쇼핑과 CJ홈쇼핑은 “현대백화점이 처음 진출할 때도 백화점의 유통 파워를 우려했지만 홈쇼핑 고객과 백화점 고객이 겹치는 부분은 예상보다 적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현대백화점도 기존 홈쇼핑을 넘어서지 못하고 3위에 그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은 마케팅과 물량으로 승부하는 것이지만 홈쇼핑은 시청률 싸움”이라며 “방송에 대한 노하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현대홈쇼핑은 현대백화점의 임원이 대거 경영진으로 오다 보니 홈쇼핑에 적응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분석이다.그렇지만 롯데의 유통 장악력에 대해서는 긴장하는 눈치다. 특히 롯데가 입점 업체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불공정 관행이 홈쇼핑 업계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또 롯데가 통합 마일리지로 고객을 관리할 경우 그 파괴력도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백화점은 롯데, 할인점은 이마트, 홈쇼핑은 GS, 놀이동산은 에버랜드’처럼 업계마다 1위를 선호하는 것이 소비자들의 성향이지만 통합 마일리지로 묶이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고객의 선호도가 롯데 브랜드로 합쳐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대백화점도 현대자동차 계열의 현대카드S를 자사 카드로 활용하고 있지만 할인점 놀이동산 등이 없어 사용이 제한적이다.우리홈쇼핑은 롯데의 인수가 확정된 이상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 회사 측은 “방송 노하우라는 것도 사실 특별한 것이 없다. 새로운 포맷과 아이디어도 1주일이면 똑같이 따라할 수 있다. 결국 마케팅과 채널 확보가 관건”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롯데가 홈쇼핑 업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려면 2대주주인 태광(지분 47%)과의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롯데(지분 53%)는 공동 경영도 검토할 수 있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태광은 세부 내역을 제시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태광 계열의 티브로드(T-Broad)는 우리홈쇼핑에 100% 가까운 인상률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맞불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타 업체는 인상률 30% 수준에서 협상이 마무리되는 단계까지 왔지만 우리홈쇼핑에는 높은 인상률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롯데가 200만 가입자를 가진 MSO인 씨앤엠(C&M)을 인수할 것이라는 설도 한때 돌았으나 양측에서 강하게 부인해 쑥 들어간 상태다.신세계, 농수산홈쇼핑 인수할까롯데의 홈쇼핑 참여로 유통 라이벌인 신세계의 홈쇼핑 사업 진출도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 농수산홈쇼핑의 지분 5.1%를 가진 농우바이오가 주식 10만 주를 매각한 데 이어 대주주인 하림이 매각 계약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참여 주체가 누구냐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하림의 김홍국 회장은 인수·합병(M&A) 전문 투자자, 기관 투자가, 유통업체 등으로 주체를 언급해 태광 애경 등도 농수산홈쇼핑을 인수하려는 것 아니냐는 설이 돌기도 했다.어쨌든 신세계의 홈쇼핑 진출설은 주변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롯데가 홈쇼핑에 진출한 이상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 남은 것은 홈쇼핑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신세계는 일단 인수설을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농수산홈쇼핑이 매력적인 인수 대상인지를 저울질하고 있다.농수산홈쇼핑의 매출 규모는 타 업체에 비해 4분의 1에서 5분의 1 정도지만 순이익 규모는 업계 최고로 알려진다. 농수산홈쇼핑은 식품 위주의 구성이 타 상품에 비해 반품률이 낮아 이익이 많이 남는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신규 투자가 거의 없고 SO수수료가 타 업체의 절반에 그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GS홈쇼핑과 CJ홈쇼핑의 경우 신규 투자와 SO 수수료가 각각 영업이익에 맞먹는 규모다.나머지 4개 업체가 입점 업체로부터 판매 수수료를 받는 것과 달리 농수산홈쇼핑은 시간당 광고 비용을 받기 때문에 마케팅에 비교적 소극적인 편이다. 무리하게 S급(양쪽으로 공중파를 낀 채널), A급(한 쪽만 공중파를 낀 채널) 채널을 욕심낼 필요가 없어 SO 수수료가 낮은 것이다.하지만 신세계가 이를 당장 인수한다고 하더라도 경쟁력이 떨어지고 기존 업체와의 격차도 커 인수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 신세계에서도 쉽게 M&A에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이다.방송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 케이블방송의 전망이 불투명하다는 것도 변수다. 현재 초고속인터넷 사업자들이 준비하고 있는 IPTV(인터넷으로 전송되는 TV 방송)가 본격화되면 방송과 통신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케이블방송의 입지가 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홈쇼핑 업체도 발 빠르게 T-커머스(TV에서 직접 결제하는 방식), M-커머스(휴대폰에서 직접 결제하는 방식)를 개발해 내놓았고 해외 진출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다만 방송 환경이 변한다고 해도 인위적인 진입 장벽이 있는 한 홈쇼핑의 입지가 당분간 약해지지는 않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홈쇼핑업체들은 방송위원회 출연금을 일반 방송제작사들(PP)보다 2배나 많은 매출액 대비 10%를 내고 있다. 이를 통해 방송위원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타업체의 진입을 견제하고 있다는 얘기다.지금도 롯데에 우리홈쇼핑 인수 허가를 내준 것에 대해 방송위원회에 정보 공개 청구를 하는 등 롯데를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신세계가 들어온다고 해도 SO를 확보하는 문제를 비롯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에 선뜻 나서기가 꺼려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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