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가는 제조업 경쟁력

‘아듀’ 차이나… 세계의 공장 명성 흔들

중국은 이제 더 이상 세계의 공장 역할을 상실한 것인가.중국 내 임금이 급속히 오르고 있는 데다 중국 정부가 외국 기업에 부여했던 각종 혜택을 최근 잇달아 철회함에 따라 이 같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더욱이 중국에 주력했던 주요 서방 기업들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중국 이외 다른 국가로 속속 눈을 돌림에 따라 이러한 우려가 더욱 현실화되는 상황이다.지난해 초 베트남에 3억50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던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 인텔은 지난해 말 베트남에 대한 투자 규모를 다시 10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이는 과거 10년간 인텔이 중국에 투자했던 것과 맞먹는 규모다.다국적 정보기술 업체인 플렉스트로닉스(Flextronics)는 말레이시아 조호 지역에 1억1000만 달러를 투자해 프린터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 회사는 이미 중국에 대규모 생산 설비를 갖고 있지만 이번 투자처로는 말레이시아를 선택했다.홍콩의 신발 업체인 위에 위엔(Yue Yuen)은 인도네시아에서 나이키 아디다스 같은 브랜드의 신발과 운동화 생산을 최근 급속히 늘리고 있다. 이 회사는 중국과 베트남 공장에서도 생산을 늘리고 있으나 인도네시아 공장에서의 생산 증가율이 더욱 높다.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아시아에 신규 공장을 건설하는데 중국 이외 지역을 택했다는 것이다.홍콩 투자은행인 CLSA 아시아 태평양 시장 담당 애널리스트인 스콧 브릭센은 중국이 다국적 기업의 투자처로 최우선 대상의 자리를 내놓게 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중국보다 베트남 등 타국가로 ‘Go’그것은 비용 증가와 다국적 기업들의 해외 생산 기지 다변화 욕구가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대부분의 산업 발전은 동쪽 해안지역에서 이뤄졌다. 특히 상하이와 홍콩 인근의 주장 삼각주 지역이 중심이 돼 왔다. 그러나 이 지역의 비용은 최근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사무실 임대료가 급등하고 공업용 토지는 부족하며 각종 유틸리티 비용이 오르고 있다. 특히 임금 상승이 가장 괄목할 만하다. 엄청난 인구가 중국 내륙 지역에서 해안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지만 공장 근로자의 임금은 수년간 두 자릿수로 올랐다. 간부급 사원들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아시아 플렉스트로닉스의 사장 피터 탠은 “중국은 스스로의 성공의 희생자가 됐다”고 한숨짓는다.그는 중국 내에서 새로운 경영 기법을 체득하고 있는 간부 사원을 찾는 것도, 오랫동안 고용하는 것도 모두 쉬운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런 인력은 한정돼 있는데 이들을 스카우트하고 데리고 있으려면 자연히 높은 임금 인상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는 따라서 중국은 이제 결단코 가장 싸게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강조한다.실제 지난 2005년 사회보장 비용을 포함한 공장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은 상하이에서는 350달러, 선전에서는 250달러까지 올라갔다. 반면 필리핀 마닐라는 200달러도 안됐고 태국의 방콕은 150달러 전후, 그리고 인도네시아 바탐은 100달러를 약간 넘는 정도였다. 비록 중국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향상되고 있지만 많은 산업 부문에서 임금 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중국 내에서 이런 고임금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은 훨씬 임금이 싼 내륙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2000년부터 이 같은 정책을 장려해 왔고 실제 많은 국내외 기업들이 내륙으로 들어갔다. 인텔이 청두에 5억2500만 달러를 들여 신공장을 지은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중국 정부는 내륙으로 들어가는 대신 많은 당근을 인텔 측에 제시했다.그러나 다른 기업들은 내륙에 들어가는 것을 망설인다. 실제 각종 혜택을 중국 정부가 제공해도 여전히 비용이 높은 데다 직원들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내륙에서 근무하려는 직원들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많은 기업들이 차라리 아시아 내 다른 국가에 투자하려고 한다.그러나 다국적 기업이 중국을 떠나는 이유 가운데 고비용은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에 불과하다. 비용만큼 중요한 것이 지역 다변화다. 많은 기업들은 중국에 이미 너무 많이 투자한 만큼 위험 분산 차원에서도 중국 투자를 망설이고 있다.지난해 말 발간된 일본 대외 교역 관련 한 기관의 리포트는 “중국에서의 비즈니스 리스크와 노동 비용 상승으로 중국 이외에 다른 아세안(ASEAN) 국가들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이 같은 염려는 다른 나라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임금이 싼 중국의 내륙 지방에도 개발 바람이 불면서 곳곳에서 발생하는 폭동 역시 외국 기업들에는 불안 요인이다.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보호주의 움직임 역시 중국을 꺼리게 되는 또 다른 요인이다. 값싼 중국산 물품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는 나라로부터 무역 분쟁을 피하는 방법으로도 중국 이외에 다른 나라들이 이용되고 있는 셈이다. 연간 1억8000만 개 이상의 신발을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만들어 미국 유럽 등으로 수출하고 있는 위에 위엔은 지난해 10월 유럽연합이 자사가 중국과 베트남에서 생산한 신발에 대해 반덤핑 제소를 하자 즉시 인도네시아 공장의 생산을 늘렸다.일본의 의류 소매 업체인 유니클로는 지난해 해외 생산 중 중국의 비중을 90%에서 60%로 낮추고 대신 나머지 물량을 캄보디아 베트남 등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이는 예상되는 중국산 물건에 대한 무역 분쟁을 사전에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중국이 기피되는 또 다른 이유는 지식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외국 기업의 유명 브랜드를 중국 업체가 베끼는 소위 ‘짝퉁’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의료기기 생산 업체나 화학 업체 중 상당수는 중국을 떠나 싱가포르로 이전했다. 이들 분야는 자본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노동 비용보다는 지식재산권 보호가 더 시급한 업종들이기 때문이었다.위안화 가치 상승도 한 원인위안화 가치 상승도 한 가지 요인이다. 지난 2005년 중국 정부가 위안화를 인위적으로 2.1% 절상한 이후 위안화 가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도 5% 정도 위안화가 추가로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위안화 가치가 오르면 중국에서의 수출은 지속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그러나 공장을 어떤 나라에 짓느냐 하는 것은 비용이나 리스크 이외에 그 국가의 인프라 수준, 납품 업체의 존재 여부, 그리고 현지 시장 규모 등이 모두 고려돼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중국은 아직도 투자하기에 매력 있는 시장인 것만은 분명하다.영국 워윅대학의 제조업 교수 쿠마 바타차리야는 “중국 내수 시장의 잠재력은 코스트 증가라는 단점을 상쇄하고도 남는다”고 단언한다. 그는 기업이 중국이나 인도로 향하는 이유를 물을 때 비용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대부분의 대형 테크놀로지 기업들은 시장의 잠재력을 보고 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섬유 직물 등의 산업은 저임을 따라 여기저기 옮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좀더 복잡한 자본 집약적인 제조업은 외국인 직접 투자가 낮은 비용보다는 현지 시장을 겨냥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중국은 무려 13억 명의 인구에다 연간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자랑한다. 게다가 교통이나 인프라 역시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좋은 편이며 각종 공급 체인도 날로 좋아지고 있다. 인도 역시 11억 명의 인구에 8% 안팎의 성장률 등을 감안하면 내수 기반은 상당하다. 물론 아직 인프라가 중국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취약하고 경제 수준도 중국에 비해서는 낮다. 외국인 직접 투자 규모가 지금까지 중국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많은 외국 기업들이 앞 다퉈 인도에 공장을 짓고 있다. 도요타 현대 등이 대표적이다. 매년 70만 명에 달하는 이공계 쪽 졸업생들이 쏟아지는 것도 인도의 강점이다.반면 아세안 같은 경우 단일 시장이 이뤄지면 역시 매력적인 투자 대상지가 될 것이지만 아직까지는 단일 시장으로 보기에는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난관이 남아 있다. 오는 2015년까지 단일 시장을 목표로 지난 1992년 자유무역지대협정 체결 이후 역내 관세는 대폭 낮아졌지만 아직도 비관세 장벽이나 국가간 관세 표준 등이 달라 넘어야 할 산이 많다.아세안은 지난 2005년 370억 달러의 외국인 직접 투자를 유치했지만 대부분이 노동집약적 분야의 부가가치가 낮은 산업들이었다.결국 중국 시장은 비용과 리스크가 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버릴 수 없는 시장임에 분명하다. 베트남으로 떠난 듯했던 인텔이 최근 중국에 다시 무려 20억 달러를 들여 공장을 짓기로 했다는 발표는 바로 중국이 가진 이 같은 잠재력과도 무관치 않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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