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돈 잔치

연말 보너스 239억달러… 뉴욕이 ‘흥청’

김도우 메릴린치 글로벌마켓 투자은행부문 공동사장(45·미국명 다우 김)은 월가에서 가장 성공한 한국인이다. 세계적 금융회사인 메릴린치의 ‘서열 2번’이다. 김 사장은 작년 보너스를 포함한 연봉으로 3700만 달러(약 348억 원)를 받았다. 하루에 1억 원씩 번 셈이다.김 사장만큼은 못하더라도 작년 월가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돈벼락을 맞았다. 사상 최대의 수익을 낸 금융회사들이 돈 보따리를 푼 덕분이다. 세계 최대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작년 연봉과 연말 보너스로 165억 달러를 풀었다. 전 세계 직원이 2만6467명이니까 1인당 평균 62만3000달러(약 5억8700만 원)가 돌아갔다. 평균 연봉이 6억 원에 달하니 말 그대로 ‘돈 잔치’를 벌였다.월가의 돈 잔치는 해가 바뀐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뉴욕시와 뉴욕주는 뜻하지 않은 세금이 굴러들어 왔다. 월가의 부동산은 주택 경기 침체가 무색할 만큼 호조다. 고급 승용차가 불티나게 팔린다. 월가의 돈이 풀리면서 후방 효과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월가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기에 이런 엄청난 돈을 받을까. 우리와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것일까.‘연봉 톱 10’ 김도우 사장김 사장이 작년에 받은 연봉 3700만 달러는 메릴린치 내 2위다. 4800만 달러를 받은 스탠리 오닐 최고경영자(CEO)의 바로 아래다. 2005년에 비해 32%나 늘었다. 베어스턴스증권의 CEO인 제임스 케인의 연봉(3300만 달러)보다 많다.작년 월가의 연봉 1위는 골드만삭스 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 540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어 메릴린치의 스탠리 오닐, 모건스탠리의 CEO인 존 맥(4100만 달러) 순이다. 이런 수준을 감안하면 김 사장의 작년 연봉은 월가의 ‘톱10’에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 사장은 지난 2004년 뉴욕의 100대 고액 연봉 순위 26위에 올랐었다.아무리 인종차별이 없다는 미국이라지만 월가엔 ‘유리벽’이 존재한다. 여성이나 피부색이 다른 인종이 승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걸 빗댄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사장이 월가의 연봉 톱10에 들었으니 그야말로 대단한 입신양명이다.김 사장은 인도네시아 재벌그룹인 코린도의 김동환 부회장의 아들로 한국에서 태어났다. 싱가포르와 미국에서 자란 한인 1.5세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와 경영대학원(와튼스쿨)을 졸업했다. 지난 1985년부터 6년간 뉴욕 매뉴팩처러스 하노버은행에서 신용분석가와 파생금융상품 트레이더로 근무했다. 도쿄 케미컬은행을 거쳐 1994년 메릴린치 일본지점에 입사해 메릴린치와 인연을 맺었다. 이때 눈부신 능력을 발휘했다. 주로 채권 트레이더로 일하면서 엄청난 수익을 내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다. 이런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2000년부터는 글로벌 마켓 투자은행 부문 업무를 총괄했고 현재 공동사장을 맡고 있다.월가에 뿌려진 돈작년 연말 월가에 뿌리진 보너스만 239억 달러에 달한다. 우리 돈으로 따지면 22조5060억 원. 작년 말 현재 월가 종사자는 17만4000여 명이니 1인당 평균 13만7360달러, 우리 돈으로 1억2900만 원을 받았다. 2005년에 비해선 17%나 늘었다.이로 인해 뉴욕주와 뉴욕시는 21억 달러의 세금을 앉아서 거둬들였다. 덕분에 맨해튼 부동산도 호황이다. 한 채에 500만 달러가 넘는 콘도(한국의 아파트)를 사달라는 주문이 상당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물건이 없어 못 구해줄 정도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 대에 25만 달러나 하는 슈퍼카인 ‘페라리 599 GTB 피오라노’는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이 덕분에 뉴욕시는 또 다른 세금이 넘쳐 올해 10억 달러의 재산세를 감축하기로 했다. 참 대단한 월가다.일주일에 100시간 일하는 사람들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미국의 10대 경영대학원(MBA) 졸업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 하는 직장이다. 우리처럼 회사 배지도 없다. 그런데도 지하철에는 골드만삭스 마크가 새겨진 가방을 자랑스럽게 들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 골드만삭스에 들어간 것 자체가 ‘가문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김도우 사장과 마찬가지로 한인 교포 1.5세인 이모 씨는 뉴욕대를 나왔다. 동기생 200여 명의 금융 전공자 중 단 2명이 골드만삭스에 들어갔다. 이 씨도 당당히 거기에 끼었다. 집에서 경사가 난 것은 당연지사. 이제 이 씨는 승승장구하는 일만 남았다. 김 사장처럼 말이다.사실 이 씨가 골드만삭스에 들어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입사 서류를 토대로 전화면접(1차 면접)을 통해 10분의 1이 추려졌다. 이후 2차 면접, 3차 면접, 4차 면접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무려 30여 명과 인터뷰했다. 그리고 마침내 하버드 MIT 프린스턴 콜럼비아 브라운대 등 이른바 아이비리그 졸업생도 어렵다는 골드만삭스의 직원이 됐다.이렇게 어렵게 들어간 골드만삭스를 이 씨는 2년이 안 돼 그만뒀다. 이유는 간단했다. “너무나 힘들어서”였다. 너무나 힘들어서 몸이 고장 났기 때문이었다.골드만삭스에 들어간 이 씨에게 주어진 업무는 꿈에 그리던 인수·합병(M&A). 투자은행의 핵심 중 핵심 업무였던 만큼 기대도, 각오도 컸다. 일도 재미있었다. 선배 직원들도 좋았다. 개인 전담 선배를 붙여주는 만큼 일 배우기도 쉬웠다. 사무실 분위기도 좋았다. 동양적인 질서를 강조하는 골드만삭스라 정서에도 맞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이 보너스를 제외한 연봉만 6만 달러가량을 받았으니 월급도 많았다.그러나 거긴 일벌레들만 사는 곳이었다. 가장 신기한 것은 점심시간이 돼도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 외식은커녕 구내식당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구내식당에서 30분이면 때울 수 있지만 어찌된 게 땟거리를 사와 자기 자리에서 처리했다. 일하기 위해서였다.이 씨가 출근하는 시간은 보통 오전 7~8시. 퇴근시간은 저녁 9시가 훌쩍 넘었다. 큰 딜이라도 있을라치면 새벽 3~4시에 퇴근해 옷만 갈아입고 출근해야 했다. 보름씩 집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야전침대에서 자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휴가도 아예 반납해야 했다. 고참들도 반납하는 분위기에서 신참이 휴가의 ‘휴’자도 꺼내기 힘들었다. 좀 과장하면 밥도 적당히 때우고, 잠도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휴가도 반납하며 오로지 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게 이 씨의 회상이다. ‘우리는 일주일에 100시간 일한다’며 서로를 위안할 정도였다고 한다.몸값은 스스로 올린다골드만삭스뿐만 아니다. 월가의 금융회사들이 대부분 마찬가지다. 물론 업무에 따라 차이는 많다. 일주일에 100시간 일하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칼 퇴근’하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 그렇지만 공통점은 맡은 업무는 최고로 처리하려 애쓴다는 점.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과의 능력 차이를 스스로 느낀다고 한다.최근 재미있는 현상 중 하나는 골드만삭스 등 투자은행의 인기를 누르는 직장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바로 헤지 펀드다. 헤지 펀드가 뮤추얼 펀드와 다른 점은 성과 보수를 별도로 받는다는 점이다. 일정 수준의 수익률을 내면 초과 수익의 20%가량을 펀드가 가져간다. 이 돈의 상당 부분은 직원들에게 나눠진다. 그러다보니 헤지 펀드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치솟고 있다. 투자은행과 똑같이 일하더라도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다. 분위기는 오히려 자유롭고 노동시간은 짧다. 그래서 이 씨처럼 골드만삭스 등 내로라하는 투자은행에서 일단 경력을 쌓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헤지 펀드로 옮기려 애쓰고 있다. 투자은행 3년 경력이면 20만 달러가 훨씬 넘는 연봉을 받는다니 그럴 만도 하다. 죽도록 일해서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는 셈이다.돈벼락 맞은 월가의 내면은 그리 인간적인 모습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한 대로 받는다’는 철저한 자본의 논리로 인재를 끌어 모으는 것이 월가의 힘이다. ‘인간적이지 않더라도 돈벼락 한번 맞아봤으면’ 하는 평범한 샐러리맨들에겐 아직 먼 나라 얘기 같지만 말이다.뉴욕=하영춘 한국경제 특파원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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