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가전’정상 우뚝…‘부’의 상징
OR탐보국제공항에서 요하네스버그 시내로 이어지는 도로는 세계 기업의 광고 각축장이다. 서울의 강남에 해당하는 샌턴(Sandton)에 닿기까지 도로 양 편에서 줄잡아 100여 개의 광고판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서 삼성과 LG의 휴대폰, LCD TV 광고를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호텔과 쇼핑센터 안팎에서도 삼성과 LG는 쉽게 눈에 띈다. 샌턴힐튼호텔에는 로비에 애니콜 울트라에디션 쇼박스가 설치돼 있고 모든 객실의 카드키를 애니콜 울트라에디션 광고가 독차지하고 있다. 객실 TV는 말할 것도 없이 삼성 제품이다.“오, 삼성과 LG가 한국 브랜드였어요? 한국은 기술이 무척 발전한 나라군요.”요하네스버그 NTSU여행사에서 일하는 머투시 씨는 ‘한국 기업을 아느냐’는 질문에 즉각 ‘현다이모터(현대자동차)’라고 대답했다. 삼성과 LG를 언급하자 그는 “어느 나라 기업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이하 남아공)에서 최고급 전자제품으로 인기가 높은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했다.세계적 휴양지 케이프타운에서도 삼성과 LG는 A급 광고주다. 특이한 것은 도심에서 ‘LG’ 로고를 달고 우뚝 서 있는 고층 빌딩. 케이프타운의 상징인 테이블마운틴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빌딩은 LG전자가 꼭대기 광고 영역만 임대한 것이지만 일반 소비자 눈에는 LG 소유의 빌딩으로 보인다.삼성과 LG는 남아공에서 명품 대접을 톡톡히 받고 있다. 삼성의 휴대폰과 LG의 평판 TV는 상류층의 필수품이자 부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브랜드 인지도 역시 ‘최상급’이다. ‘없어서 못 파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LG 가전제품 ‘1위 싹쓸이’LG전자 남아공법인은 요하네스버그 외곽 산업단지 이산도(Isando)에 있다. 사무공간과 물류창고, 서비스센터, 에어컨아카데미 등이 한 단지에 배치돼 있다. 종사자 수는 총 212명. 그 중 한국에서 파견된 직원은 11명이다.LG전자는 지난 1996년 남아공에 진출, 10년 동안 백색가전에 관한 한 다른 업체가 넘볼 수 없는 아성을 쌓았다. 시장점유율 1위 제품만 8개일 정도다. 전자레인지(점유율 48%), 세탁기(38%), DVD(34%), 에어컨(28%) 등은 부동의 1위 품목들이다.LG전자는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남아공을 최고 관심 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신모델 테스트 시장으로 삼을 정도로 시장이 성숙했다고 보는 까닭이다. 스포츠 ·이벤트 스폰서를 비롯한 활발한 마케팅 활동으로 긍정적 이미지를 쌓은 것도 큰 성과다. 백색가전 담당 오윤택 차장은 “밝고 긍정적인, 고급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 생활가전 전반이 고루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LG전자 남아공법인은 2003~04년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지난해에도 15% 성장을 기록했다. 특히 평판 TV, 광파오븐 등이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PDP TV의 경우 2005년 7000대에서 2006년 2만 대로 판매량이 크게 늘었다.LG전자 남아공법인이 주목하는 제품 가운데 가라오케를 빼놓을 수 없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아프리카 시장에서 깜짝 놀랄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중이다. 김경환 AV담당 과장은 “구매자의 80~90%가 음악을 좋아하는 흑인들”이라며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선 남아공에 처음 선을 보였는데 예상 외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LG가라오케는 2005년 1만1000대에서 2006년 3만 대 가까운 수준으로 판매량이 1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올해 목표는 10만 대에 이른다.가라오케 인기몰이의 비결은 고객 접점 이벤트에 있다. 전국을 순회하면서 가라오케를 이용한 노래자랑을 열어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그 결과 4000랜드(615달러) 선의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흑인층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것이다.에어컨 아카데미는 선행 투자의 일환으로 지난해 9월 오픈했다. LG전자가 세계에서 7번째로 만든 아카데미다. 이곳에선 에어컨 판매원 등 매달 100여 명의 관련 인력을 교육해 애프터서비스 등에 배치하고 있다. 정연욱 에어컨 담당 과장은 “에어컨 기술 교육 과정을 민간 자격증화하자는 제안을 받을 정도로 반응이 좋다”면서 “서비스 강화는 물론 제품 판매에도 큰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삼성 휴대폰 ‘부유층 필수품’삼성전자 남아공법인은 지난 2003년 심각한 고비를 넘겼다. 남아공 내 환율 변화로 환차손 폭이 급격히 증가해 적자 폭이 허용 수준을 넘어서자 중동 아프리카 본부에선 ‘폐쇄론’까지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2002년 1달러 12랜드 선이었던 환율은 현재 1달러 6.5랜드로 떨어졌다. 자칫 1987년 지점을 설립해 1995년 법인 설립 과정을 거쳐 20년 가까이 키워 온 시장을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삼성과 같은 외국 기업에 지난 몇 년은 그만큼 어려운 시기였다.하지만 삼성전자는 현재 남아공에서 최고급 전자제품 브랜드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의 조용하고 아름다운 메드스켐 오피스파크에 있는 법인 건물에는 140명이 근무하면서 남아공은 물론 앙골라 잠비아 등 주변국까지 건사하고 있다.삼성의 브랜드 파워를 가늠케 하는 일 가운데 지난해 10월 요하네스버그 샌턴에서 열린 ‘종합 가전 전시회’ 도난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전시회를 준비하던 유통업체 창고에 도둑이 들었는데 도난 제품 대부분이 삼성의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도둑은 삼성 제품을 주로 훔치고 나머지 브랜드는 그냥 남겨 두었다고 한다. ‘화마(火魔)에 살아남은 삼성 휴대폰’ 이야기도 잘 알려져 있다. 2005년 7월 블룸폰테인에 거주하는 한 여성의 집에 불이 났는데 진화 후 보니 삼성 휴대폰 D500이 불에 손상이 되긴 했지만 작동에는 이상이 없었다는 일화다.현재 삼성은 LCD TV, LCD 모니터, 양문형 냉장고 등의 품목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프린터, 에어컨, PDP TV 등도 3위 이내 점유율로 톱클래스에 올라 있다. 특히 삼성 애니콜 휴대폰은 남아공에선 ‘부의 상징’으로 통한다. 점유율은 노키아 모토로라에 이어 3위에 그치고 있지만 특유의 고급화 전략으로 프리미엄급 휴대폰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중고급 제품군에선 최단 기간 1위를 차지했다.삼성의 전자제품은 현지 유통 채널에서도 에이스 대우를 받고 있다. 1월 24일 낮, 고급 주택가에 있는 가전 전문점 허쉬에는 파나소닉 소니 밀레 등 세계적 브랜드와 삼성이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하고 있었다. 전면에 배치된 것은 주력 제품인 LCD TV 보르도. 동행한 이재환 AV 담당 차장은 “12월에 출시된 블루레이에 거는 기대가 큰 데, 이 매장에서 며칠 사이 신제품이 팔린 걸 확인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블루레이는 남아공에서 1만1999란드(1846달러)에 팔리고 있다.삼성은 올해 프리미엄 마케팅을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2010년 월드컵을 겨냥한 본격적인 점프 전략에 시동을 건 것이다. 예산을 지난해의 2배 수준으로 올려 잡고 올해 매출 목표도 7억 달러선으로 높였다. 남아공 태권도 대표팀 후원, 기차와 사람이 경주하는 스팀 챌린지 스폰서 등과 함께 어린이·청소년 후원, 에이즈 고아 후원 등 사회공헌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qsjpark@kbizweek.comINTERVIEW / 아브리엘 LG쇼룸 매니저하루 5000명 방문…‘자부심으로 일해요’“직접 체험해 본 후엔 제품을 꼭 사고 싶어 하죠. 베스트 브랜드를 소개한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습니다.”요하네스버그 다운타운은 흑인 범죄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백인과 관광객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곳이 제한된 게 사실이다. 이에 착안, LG전자는 백인 중산층 이상이 주로 이용하는 오락 공간인 몬테카지노 안에 전용 쇼룸을 설치해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쇼룸을 관리하는 아브리엘 씨도 얼굴에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주말에는 하루 5000명 정도 방문해요. LCD TV, 가라오케, 홈시어터 등을 직접 시현해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고객을 직접 만나 평가를 들어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은 점이에요.”쇼룸엔 구매력을 갖춘 이들이 주로 방문하기 때문에 판매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하다. 말 그대로 ‘고객 접점 마케팅’이 제 효과를 내고 있는 셈이다. 또 광파오븐 ‘솔라돔’을 홍보하기 위한 요리교실 장소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아브리엘 씨는 “유명 요리사가 솔라돔을 이용해 요리를 하면 반응이 뜨겁다”면서 “솔라돔은 ‘밀리파’ ‘보보티’ 등 남아공 음식을 프로그래밍해 현지화 전략을 편 덕에 인기가 대단하다”고 밝혔다. 한편 LG 측은 각급 학교와 연계해 쇼룸을 학생들의 견학 코스로 만드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