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 특수 잡아라’… 판촉전 치열

경기도 일산 동원산부인과는 요즘 황금돼지해 특수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최근 출산 관련 상담과 문의가 눈에 띄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이 병원 전영재 홍보팀장은 “황금돼지해인 올해 아이를 낳으려면 늦어도 오는 2월까지는 임신을 해야 한다”며 “이 시기에 맞춰 아이를 가지려는 부부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말했다. 전 팀장은 지난해 쌍춘년으로 결혼이 많았고, 올해는 재물운을 타고난다는 황금돼지해라 병원을 찾는 산모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국내 대표적인 산부인과 전문병원인 차병원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외래 환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6~11월 강남 차병원과 분당 차병원 외래 환자는 모두 11만3080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14.4%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증가세는 최근의 저출산 흐름에 비춰 볼 때 상당히 이례적인 현상이다. 차병원 측은 ‘황금돼지해 효과’를 환자 급증의 가장 큰 요인으로 꼽고 있다.◇황금돼지해 유래=2007년은 간지로는 정해(丁亥)년 돼지해에 해당한다. 본래 ‘정(丁)’은 오행에서 붉은 색을 뜻해 정해년은 ‘붉은 돼지해’로 불리며, 순서에 따라 60년마다 반복된다. 그런데 특히 올해는 10번째 ‘붉은 돼지해’이기 때문에 ‘황금돼지해’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600년 만에 한 번꼴로 돌아오는 황금돼지해’라는 말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하지만 역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황금돼지해’라는 말 자체가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권오도 역술인협회 부장은 “올해가 황금돼지해라는 건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빼빼로 데이처럼 기업들이 만들어낸 상술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지난해 차병원의 외래 환자 증가 추이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5~16%에 머무르던 증가율이 10월 들어 30.9%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바로 황금돼지해 뉴스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시점과 겹친다. 실제로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지난해 9월 26일 모 경제지에 ‘황금돼지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그러나 황금돼지해 논란의 진원지는 바로 중국이다. 지난해 10월께부터 황금돼지해를 앞두고 중국 일부 지역에서 출산 붐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와 함께 국내에서도 본격적으로 황금돼지해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기 시작했다.보령메디앙스 박혜선 주임은 “황금돼지해 열풍은 중국에서 넘어온 것”이라며 “중국은 훨씬 더 극성”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중국에는 정해년을 ‘황금돼지해(金猪年)’로 부르며 이 해에 태어난 아이들은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민간 속설이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던 것이 최근 들어 경제 발전이 앞선 중국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출산 열풍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도 정해년을 황금돼지해로 부르는 것은 역학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보령메디앙스는 올해 국내보다는 중국에서 더 큰 특수를 기대하고 있다. 박 주임은 “중국은 산아제한이 심해 좋은 해를 골라 아이를 낳는 계획 출산이 광범위하게 확산돼 있다”며 “계획 출산을 할 정도면 생활에 여유가 있는 중산층 이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올해 중국 중·고가 시장을 중심으로 20% 이상의 수출 증가를 기대하고 있다. 박 주임은 “올해 중국에서 태어날 아기만 해도 2000만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특수 얼마나 될까=황금돼지해 논란은 7년 전의 ‘밀레니엄 베이비 붐’을 떠올리게 한다.당시 새천년의 시작에 맞춰 아이를 낳기 위해 출산 예정일을 늦추거나 앞당기는 소동이 벌어지면서, 감소 추세이던 신생아수가 2000년에만 유독 2만 명가량 늘어나는 이변을 연출했다. 아가방 우희정 팀장은 “2000년 즈문둥이 붐 때의 판매 자료를 참조해 올해 마케팅 계획을 짜고 있다”고 말했다. 2000년 사례에 비춰보면, 올해도 최대 2만 명가량 신생아가 증가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유아용품 업체들이 올해 출산 붐을 기대하는 또 다른 근거는 지난해 ‘쌍춘년’ 결혼 특수로 신혼부부가 예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혼인 건수는 총 25만6320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 24만7134건보다 3.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2000년 베이비 붐 이후 다시 하락 추세를 보이던 신생아 수도 지난해 상승 반전에 성공했다. 통계청은 지난해 신생아 수가 44만4000여 명으로 전년 43만8062명보다 1.4%가량 증가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올해 신생아 수는 황금돼지해 효과까지 겹쳐 이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황금돼지해 특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출산율 저하와 이에 따른 시장 축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아용품 업계다. 매일유업 박재랑 대리는 “올해 태어날 아이들을 ‘골드 베이비’, ‘럭키 베이비’라고 부르기도 한다”며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이왕이면 좋다는 해에 출산을 생각하게 되는 게 공통적인 심리”라고 말한다. 이 업체는 올해 황금돼지해 기념 연중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홈페이지에 출산 소감과 생일, 몸무게를 입력하면 매월 2명을 추첨해 태어난 아이 몸무게에 해당하는 순금으로 된 황금돼지를 준다. 남양유업도 올해 임산부 대상으로 진행해 온 ‘임신의학교실’을 연 300회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이 업체는 올해 출산율이 최대 10%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최근 5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해온 분유 매출이 황금돼지해 특수로 13%가량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하지만 출산 붐의 혜택은 대부분 프리미엄 시장에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상일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황금돼지해로 신생아 수가 늘면서 유아용 프리미엄 시장이 급팽창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출산율 저하로 한 아이만 있는 가정이 늘면서 고가, 고품질, 친환경 제품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황금돼지해 마케팅 왜 붐인가=기업에는 황금돼지해가 진짜냐 가짜냐는 사소한 문제에 속한다. 기업이 ‘제안’하고 소비자들이 호응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한 마케팅이 되기 때문이다. 저가 화장품 ‘미샤’로 유명한 에이블씨엔씨 이광열 마케팅본부장은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기업들은 마케팅적으로 좀 더 호소력을 갖고 이슈가 될 만할 걸 찾는다”고 말했다. 최근 브랜드 이미지 교체와 매장 리뉴얼을 끝낸 이 업체는 고객 이벤트 테마로 ‘황금돼지해’를 선택했다.이 본부장은 황금돼지해가 호소력을 갖는 요인 중 하나로 희소성을 들었다. 12년마다 오는 똑같은 돼지해가 아니라 ‘600년 만에 한번 있는 황금돼지해’라는 게 먹혔다는 것이다. 그는 또 40대와 구별되는 20~30대 젊은층의 독특한 감성과도 ‘코드’가 잘 맞는다고 말했다. 디지털화가 가속화될수록 점이나 띠, 별자리 등에 대한 관심은 오히려 더 커진다는 분석이다. 이전 세대보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더 크게, 더 자주 노출되기 때문이다. 이 본부장은 “황금돼지해가 인터넷을 통해 확대 재생산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이동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황금돼지해 마케팅을 침체상태인 경기상황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이 연구원은 “대부분의 경제연구소들이 올 상반기 경기가 바닥권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고, 또 하반기에는 대선 국면이 시작돼 실제 소비증가는 미미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황금돼지해 마케팅은 이런 어려움들에 대한 기업들의 선제적, 공격적 대응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황금돼지해’가 ‘돼지=부’라는 따분한 공식에서 벗어나 출산과 영유아에 초점을 맞춘 것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는 “황금돼지해 마케팅은 기업들이 소비자들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풀 마케팅’의 한 사례”라며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으면 대박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어떤 이벤트 있나=황금돼지해 마케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유아용품 업체들이다. 아벤트 코리아는 ‘2007년 새해, 황금 아기돼지를 찾아라!’를 오늘 6월말까지 진행한다. 이번 행사는 1월부터 한정 판매되는 기획제품인 아벤트 젖병 기획세트와 스킨베리 스킨케어 기획세트 구매 고객이 대상이다. 젖병과 스킨베리 표면에 부착된 행사 스티커 응모번호를 아벤트 홈페이지에 기입하면 바로 당첨 확인이 가능하다. 1등 100명에겐 30만 원 상당의 황금돼지 펜던트 2돈을 준다.국내 1위 유아용품 업체인 아가방은 최근 돼지를 모티프로 한 출산 준비물 ‘보노세트’를 내놓았다. 이 제품은 기저귀, 방수요, 싸보 등 모든 출산 준비물을 망라하고 있다. 회사 측은 황금돼지해를 겨냥해 준비한 야심작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업체의 또 다른 브랜드인 에뜨와 역시 돼지를 귀여운 캐릭터로 표현한 제품을 내놓았다. 돼지 캐릭터 팜므 침구 시리즈는 이불, 요, 겉싸보, 속싸보, 숯베개, 돼지 짱구베개 등이다.보령메디앙스도 출산 붐을 겨냥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 업체의 유아용품 전문 브랜드 누크는 자사 인터넷 커뮤니티 프리미엄 회원을 대상으로 ‘베이비 샤워파티(임신한 치구를 위해 출산 전 아기용품을 선물해 주는 파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회원들이 베이비샤워 파티를 열면 수유 용품과 아기 피부 관리용품 등을 선물로 준다. 이 업체는 또 지난해 12월 한 달 간 ‘저출산 시대 극복을 위한 출산 장려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금융권도 돼지가 부를 상징한다는 점에 착안해 앞 다퉈 황금돼지해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신한은행은 오는 2월말까지 미화 500달러 이상을 환전하거나 송금한 고객들을 추첨해 1등에게 순금 20돈을 주는 등 모두 58명에게 11돈의 순금을 경품으로 준다. 은행 측은 최근 금값 상승과 황금돼지해를 맞아 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핑크색 황금돼지를 형상화한 ‘꿀순이’ 시프트카드를 선보였다. 부산은행은 지난 1월 2일부터 3개월간 ‘황금돼지 정기예금’을 특별 판매한다. 이 예금은 1인 1계좌만 가입이 가능한 1년제 정기예금 상품으로 가입 금액은 500만 원 이상이다. 예금 가입기간 중 자녀를 출산하는 고객은 ‘황금 금리’를 추가로 받을 수 있으며, 2000만 원 이상 예금할 경우 최고 5.0%까지 가능한 고금리 예금이다. 또 ‘600년 만에 찾아오는 황금돼지해’를 기념하기 위해 600번째 가입 고객에게 순금황금돼지 10돈을 증정한다.옥션, G마켓, 인터파크 등 인터넷 쇼핑몰도 올해 출산 및 유·아동 상품 카테고리를 대폭 강화에 매출 확대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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