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에로티시즘의 여섯 가지 향기
첫 주자는 2003년 일본 최고의 영화로 평가받은 〈바이브레이터〉의 감독 히로키 류이치가 연출한 〈걸프렌드〉. 삭막한 도시에서 우연히 만난 두 여자의 감정을 과감하면서도 섬세하게 보여준다. 과거의 상처를 안고 있는 미호와 누드 사진을 찍어야 하는 교코가 우여곡절 끝에 만난다. 호텔 방 안에서 모델이 되고 사진작가가 되는 두 여자는 단순히 카메라를 중심으로 소통하고 섹스와 나체를 넘어서는 진심 어린 고백을 한다. 안도 히로시 감독의 〈마음과 몸〉 역시 두 여자의 교감을 이야기하는 작품. 동거하며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두 여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관조적이면서도 현실적이라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정적인 화면과 선정적인 섹스 장면의 대조가 인상적인 이 작품은 제24회 모스크바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두 영화, 두 여자의 사랑은 동성애의 문제를 떠나 성적인 문제를 초월한 그 무엇이 된다.심각한 에로티시즘만이 전부는 아니다. 〈달과 체리〉는 사랑을 섹스처럼, 섹스를 게임처럼 즐기는 여자와 동정을 떼지 못한 남자의 좌충우돌 이야기다. 마야마는 단순히 소설을 쓰기 위해 겐이치와 섹스를 하지만, 그는 그녀를 점점 사랑하게 된다. 사랑과 섹스의 관계에서 길을 잃은 남녀의 이야기는 신예 여류 감독 다나타 유키의 손을 거쳐 신세대의 성의식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실력파 배우들이 등장하는 〈그 남편, 그 여자의 사정〉은 택시비를 몸으로 지불하려는 여자의 이야기로, 반전을 포함한 블랙 유머가 돋보이는 수작. 하라 마사히로 감독의 〈기묘한 아파트〉는 섹스를 하는 남녀의 교성과 오디오에서 울려 펴지는 헤비메탈 음악 소리로 항상 시끄러운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다. 〈사무라이더〉 〈클론5〉 등의 인기 만화가 스기무라 신이치의 동명 작품을 영화화해 재팬 미디어 예술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강도에게 연정을 느끼는 인질범 이야기 〈은행털이범과 어머니〉는 성숙한 여성의 에로티시즘을 그린다. NHK의 뉴스 캐스터이자 작가, 여배우로 활동해 온 이시이 미츠코가 성에 눈 떠가는 중년 여성 역할을 맡아 일본 에로티시즘 시리즈의 방점을 찍는다. q윤혜정·월간 보그(Vogue) 기자 kidult27@doosan.com개봉영화▶조폭마누라 3매년 명절 극장가를 휘어잡은 〈조폭마누라〉의 세 번째 이야기가 이번에는 연말에 공개됐다. 신은경에 이어 조폭 히로인의 바통을 이어 받은 여배우는 홍콩의 서기. 이번에는 ‘마누라’가 아니라 홍콩 최고의 명문 조폭가의 후계자이자 ‘누님’이 중심이다. 홍콩의 화백련 보스 임 회장은 흑룡회와 세력 다툼이 벌어지자 외동딸인 아령(서기 분)을 한국으로 피신시킨다. 아령의 안전을 부탁받은 한국의 동방파 양 사장은 넘버3 기철(이범수 분)을 불러 아령의 실체를 숨긴 채 보호 임무를 맡긴다. 연출 조진규, 출연 이범수, 서기, 오지호, 현영 등.▶대통령의 죽음대통령 조지 부시가 암살당한다는 내용만으로도 관심을 모은 작품.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더 큰 진실을 드러내는 대담함의 미학을 갖춘 영화’라는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으며 2006년 토론토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지만 동시에, 자극적인 소재와 부적절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한때 미국 내에서 상영이 금지되기도 한 화제작이다. 조지 부시가 암살된 후 혼란과 무질서, 극도의 긴장감이 미국 사회를 휩쓴다. 자말 지크리라는 남자가 암살범으로 체포돼 수사가 종결된 듯 보이지만 새로운 증거가 속속 새롭게 드러나는데…. 연출 가브리엘 레인지, 출연 헨드 아요브, 브라이언 볼랜드 등.▶알래스카이혼한 엄마와 살던 사비나는 엄마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자 결국 아빠를 찾아 낯선 도시로 가게 된다.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우연히 한 소년에게서 도움을 얻은 사비나는 다음날 전학 간 학교에서 그를 같은 반 친구로 다시 만난다. 무뚝뚝하지만 배려심이 깊은 이 친구와 각별한 사이가 되는 사비나. 그러나 그녀가 우연히 살인사건을 목격하면서 두 사람의 사랑은 위기를 맞는다. 독일 비평가협회 최우수 영화음악상 등을 수상했다. 연출 에스터 그로넨보른, 출연 야나 팔라스케, 프랭크 도로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