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밀고’ 민간 ‘당기고’… 싱글벙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하면 여느 동남아 공항과는 다른 느낌을 받는다. 넓고 깨끗한 청사, 각국 비즈니스맨들이 바쁘게 오가는 홀(hall), 메인 터미널과 위성 터미널 사이를 연결하는 무인전동차(Aero Train) 등. 미국이나 유럽의 신공항 청사 이미지 그대로다.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해 놀라는 건 현대적인 공항 청사 때문만은 아니다. 공항에서 75km 떨어진 도심으로 들어가기 위해 공항 청사 지하에서 자기부상 공항고속열차(KLIA Express)를 타고 쿠알라룸푸르 중앙역에 도착하면 또 한 번 신기한 경험을 한다. 바로 이곳에서 호텔까지 가기 위해 택시를 타려면 택시비 쿠폰을 사야 한다는 점이다.중앙역에선 시내 주요 호텔까지의 거리에 따라 5~20링깃(약 1500~6000원)의 택시비를 쿠폰으로 판다. 이 쿠폰을 내면 택시 운전사에게 별도의 팁을 주거나 택시비로 승강이를 벌일 필요가 없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다. 말레이시아가 천혜의 자원만으로 아시아의 관광 강국이 된 것은 아니란 걸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한 해 1600만 명 방문, 8조 원 뿌려말레이시아의 외국 관광객은 1998년까지만 해도 550만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년만인 2000년 1000만 명을 넘어선 데 이어 2005년엔 16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는 2005년에만 84억 달러(약 8조 원)의 관광 수입을 올렸다.말레이시아의 외국 관광객 추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98년 10.6%의 마이너스 성장을 보였으나 1999년부터 최근 4년간 연평균 25%의 높은 성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1999년엔 외국인 관광객이 전년 대비 43%나 급증했다. 1998년 아시아 경제위기 때문에 그 해 관광객이 크게 줄었던 반작용이기도 하지만 말레이시아 정부가 관광청 조직을 개편하고 ‘말레이시아, 진실의 아시아(Malaysia, Truly Asia)’라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펼친 게 주효했다.2003년엔 사스와 조류인플루엔자(AI)로 인해 아시아 지역으로의 여행이 급감하면서 말레이시아의 외국인 관광객 수도 20% 정도 줄긴 했다. 하지만 다음해인 2004년엔 단숨에 회복해 외국인 관광객이 1500만 명을 돌파했다. 여기엔 인도네시아 바탐,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의 조호바루 등을 연계한 관광 상품이 큰 힘이 됐다는 분석이다.제조업 성장 한계 관광산업으로 극복말레이시아가 관광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바탕엔 ‘관광산업을 국가 기간산업화한다’는 말레이시아 정부의 뚜렷한 비전이 깔려 있다. 이런 비전 아래 관광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체계적이고 전폭적인 지원이 뒤따랐기 때문에 관광 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특히 500명 이상의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한 관광회사의 수입에 대해선 소득세를 감면해 주는 파격적인 지원 정책도 밑거름이 됐다.1972년 관광청을 발족한 말레이시아는 1985년부터 관광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다.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당시 마하티르 총리의 지시에 따라 대대적인 지원책을 마련했다. 특히 1997년 경제위기 이후 국가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관광에 대한 지원이 더욱 크게 늘었다.사실 관광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말레이시아가 선택하기 쉬운 산업이었다. 말레이시아는 인구가 2500만 명 정도로 국토 크기에 비해 많지 않다. 이 정도 인구 규모로는 내수시장의 한계 때문에 제조업을 키우기보다는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다.또 말레이시아엔 호텔과 리조트 등 다양한 관광산업 인프라가 이미 잘 갖춰져 있었다. 새로운 투자가 그리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관광산업은 다른 산업보다도 성과가 빨리 나타날 것으로 봤다. 실제 기존 인프라를 이용하는 관광산업은 비용이 크게 들지 않았기 때문에 수입의 거의 100%가 수익이었다.게다가 말레이시아는 아시아 최고의 관광지로 부상할 수 있는 몇 가지 핵심 요소를 갖추고 있다. 기본적으로 안정된 사회, 깨끗한 환경, 저렴한 물가, 친절한 국민성 등이다. 대부분의 국민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토대가 됐다. 이를 바탕으로 정부가 해외 광고 등 적극적인 국가 홍보를 했던 게 적중했던 셈이다.헬스케어 등 틈새시장 공략말레이시아 정부는 최근 ‘관광산업 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핵심 내용은 말레이시아의 관광산업 핵심 역량을 더욱 강화한다는 것. 우선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라는 이미지를 제고하고 호텔 리조트 관광지 등 관광 인프라는 더욱 확충한다는 계획이다.특히 말레이시아는 앞으로 관광산업의 틈새시장을 더욱 넓혀 나간다는 전략이다. 예컨대 세일링 골프 모터스포츠 교육 헬스케어 등이 그런 틈새시장이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이런 부문에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이 부문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관광사엔 세금을 깎아주고 필요하면 금융사 대출 때도 혜택을 주기로 했다.“관광산업을 육성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정부의 전략이다. 관광산업 진흥을 위해선 기본 인프라가 필요하고, 거기엔 큰돈이 들어가야 하는데 이를 민간이 맡기는 어렵다.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 국가 이미지도 하나로 일체화해야 한다. 또한 정부가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살만 아흐마드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 준비사무국 부국장)일자리 창출의 한계에 봉착한 제조업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관광 의료 교육 등 서비스 산업을 적극 육성키로 한 우리 정부도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INTERVIEW 미르자 모하마드 타이얍 말레이시아 관광청장“말레이시아엔 아시아의 모든 것 있다”“모든 아시아가 말레이시아 안에 있다. 말레이시아엔 말레이인 중국인 인도인 등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아간다. 종교도 이슬람교 불교 힌두교가 공존한다. 이 때문에 문화 종교 음식 쇼핑 등 외국인이 아시아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걸 말레이시아에서 맛볼 수 있다.”다토 미르자 모하마드 타이얍 말레이시아 관광청장은 ‘말레이시아, 진실의 아시아(Malaysia,Truly Asia)’란 관광 진흥 캠페인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한마디로 아시아로 향하는 세계의 관광객들을 말레이시아로 모두 유치하겠다는 포부인 셈이다. 다토 미르자 청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말레이시아는 주로 어느 나라 관광객 유치에 주력하고 있나.“현재 외국인 관광객의 70% 이상은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등 주변 동남아 국가에서 온다. 나머지 30%가 일본 중국 한국 인도 유럽 등의 관광객들이다. 앞으로 중점 유치 대상은 미국 유럽 아프리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의 관광객들이다.”말레이시아 관광산업의 최대 경쟁국은.“브라질이 라이벌이라고 생각한다. 브라질은 열대 정글과 비치 등 관광자원이 말레이시아와 거의 비슷하다. 물론 관광산업은 모든 나라가 다 다른 부분이 있다. 그 시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해결 방법이 나온다. 말레이시아의 최대 장점은 천혜의 자연경관과 청정해역 등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더 잘 보존하고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관광산업을 키우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국제항공 노선이 적다는 게 가장 큰 애로다.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항공 노선을 통한 접근성이 중요하다. 그러나 동남아의 경우 남쪽의 항공 허브는 싱가포르, 북쪽의 허브는 방콕이다. 중간에 낀 쿠알라룸푸르는 상대적으로 항공 노선이 적다. 앞으로 5년 안에 동남아 국가와 러시아 중앙아시아 이란 인도네시아 등으로부터 항공 노선을 적극 유치해 제3의 동남아 항공 허브를 만들 계획이다.”2007년을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로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2007년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지 꼭 50년이 되는 해로 말레이시아로선 매우 뜻 깊은 해다. 다양한 독립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는데, 이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선보이고 싶다. 2006년 외국인 방문객 수는 약 18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2007년 목표는 2010만 명이다.”2007년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에 기획하고 있는 주요 행사는.“모두 280개의 이벤트가 준비돼 있다. 말레이시아 메가세일과 문화 스포츠 쇼핑 페스티벌 등 다양하다. 이런 행사를 준비하는데 말레이시아 정부는 총 2억 링깃(약 600억 원)의 예산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준비위원회가 2년6개월 전부터 가동됐다.”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차병석 한국경제 기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