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호 보령제약 사장

혁신은 마지막 1%를 완성하는 과정

지난 1978년 5월 연세대 대형 강의실에선 흥미로운 풍경이 연출됐다. 한국바이엘약품 입사 5년차에 불과한 영업사원 김광호 씨가 무려 200여 명의 쟁쟁한 의대 교수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고 있었던 것. 당시 의약품의 특정 내용은 대중 광고가 불가능했다. 그 때문에 주요 병원이나 의사들을 통한 세미나나 각종 캠페인 형식으로 마케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한국바이엘이 생산하는 고혈압 치료제 영업을 담당했던 김 씨는 국내 고혈압 분야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제품 홍보를 겸한 강연 자리를 마련했다. 그러나 강연 내용은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당시 세미나에 참석했던 배종화 경희대 의대 교수(대한고혈압학회 이사장)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일자무식에 가까운 주제에 수백 명의 의사들을 모아놓고 고혈압에 대해 강연했던 일은 지금도 의사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회자되곤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미워하지 않았다. 그의 진심어린 열정과 고유의 인간미를 모든 참석자들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열정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그는 없었을 것이다.”다국적 제약사에서 보령제약 CEO로보령제약 김광호 사장의 사회 초년병 시절 일화다. 한국바이엘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이 회사 영업본부장, 바이엘 극동담당 매니저 등을 거치며 ‘영업통’ ‘마케팅의 귀재’란 별명을 들을 정도로 명성을 쌓았다.보령제약 김승호 회장은 지난 2월 프랑스계 다국적 제약사 사노피신데라보코리아 부사장으로 일하던 그를 보령제약의 영업 마케팅 담당 사장으로 스카우트했다. 책임 있는 전문 경영인 체제를 정착시키고 영업과 마케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다.다국적 제약사 임원이 국내 제약사 최고경영자(CEO)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매우 드문 경우다. 사노피에서 근무하면서 입증한 김 사장의 역량이 높은 평가를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김 사장은 지난 1996년 바이엘 극동담당 매니저에서 사노피코리아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만 해도 사노피코리아는 연매출 100억 원도 안 되는 영세한 규모인 데다 판매액보다 더 많은 반품으로 골치를 썩고 있던 회사였다. 어디서부터 헤쳐 나가야 할지 끝이 보이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는 시급한 문제였던 회사와 직원들 간의 신뢰부족, 목표의식 결여, 마케팅 지원 부족, 교육 부족 등에 하나씩 손을 대기 시작했다. 또 20여 개 품목 중 14개 품목을 삭제하고 3600개가 넘는 거래처를 200여 개로 정리했다. 품목과 거래처를 단순화한 것은 ‘집중을 위한 선택’이었다. 1996년 연매출 100억 원도 안 되던 회사는 8년 만인 2004년에 1700억 원의 매출을 자랑하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보령제약으로 자리를 옮긴 직후 김 사장은 임직원들과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이런 말을 해 왔다. “국내 기업이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확실히 이길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고 싶다. 외국 기업에서 30년간 근무하면서 쌓은 교훈과 아픔 하나하나를 보령제약의 우수한 인프라에 접목해 운영한다면 승리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확신한다.”김 사장이 보령제약으로 와서 가장 먼저 시작한 작업도 구조조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구조조정의 키워드는 ‘감원’이 아니었다. 집중화와 전문화를 통한 마케팅과 영업 역량 강화에 그는 구조조정의 초점을 맞췄다.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선진 마케팅 기법과 문화를 경험하면서 쌓은 전문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는 우선 전체 제품을 주력제품과 비주력 제품을 구분하고 지역별로 짜여져 있던 영업조직을 질환별로 전환시키는 등 기업 체질 개선에 주력했다. 이에 따라 보령제약의 영업부는 순환기팀, 항생제팀, 항암제팀, 투석영업부 등으로 재편됐다. 영업사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다. 김 사장은 이와 함께 영업사원들을 대상으로 해당 의약품에 대한 전문 교육도 대폭 강화했다. 그 결과 보령제약의 잔고회전율은 112일에서 59일까지 낮아지는 등 영업의 효율이 크게 높아졌다.김 사장은 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0%에도 못 미치는 52개 품목을 정리함으로써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다. 이들 제품은 보령제약 전체 제품의 41%에 달한다.구조조정 과정에서 내부의 이견과 마찰이 없었던 건 아니다. 작년 6월 MAT(Market Access Team) 신설을 앞두고 있을 때의 일이다. 김 사장과 임직원 간에는 격론이 벌어졌다. 김 사장이 구상한 MAT란 의료 현장에서 의사 및 환자들과 대면하며 질병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 이를 기반으로 의사와 환자들에게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팀. 즉 MAT를 통해 의사 및 환자들이 간과하거나 모르고 있던 의약품에 대한 정보를 알려줘 효과적인 처방과 치료를 가능하게 하는 데에만 전념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약물을 복용한 환자를 모니터링해 약물 순응도 등의 임상 결과를 체크해 의사에게 제공하고 환자에게는 자신의 상황에 적절한 맞춤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것이다. MAT는 영업을 통한 매출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기존의 영업사원이나 학술팀과는 차이가 있다. 리베이트와 접대로 대표되던 국내 업계의 영업 관행을 벗어나는 파격적인 실험이었다.MAT의 필요성에는 모두 공감했다. 그러나 MAT를 모두 여성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김 사장의 의견에 임직원들이 난색을 표한 것이다. 김 사장은 그러나 “섬세한 정보를 다뤄야 하기 때문에 치밀하고 꼼꼼한 여성들이 유리하고 새로운 시도인 만큼 기존의 통념을 뒤바꿀 수 있는 여성들이 필요하다”고 설득했다. 그렇게 해서 여성 신입사원 10명을 뽑아 MAT가 탄생했다. 현장에 투입되자마자 이들은 바람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던 의사들도 이들의 방문을 반겼다. 이들이 담당했던 프로젝트는 칼슘길항제인 시나롱과 혈전예방제 아스트릭스. 이들의 투입으로 매출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김 사장은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항상 변화와 혁신을 추구한다. 변화는 마지막 1%를 완성하는 과정이다. 낡은 방법을 계속 따라하면 비용이 많이 들 뿐더러 지금의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매출 2000억 원대 제약사 도약 기반 마련이 같은 혁신의 결과 보령제약은 지난 2분기까지 업계 두 번째로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보령제약은 지난 3분기까지 매출 1356억 원을 달성했다. 전년 동기 대비 약 21% 성장한 수치다. 주요 품목인 시나롱(칼슘길항제)이 66%, 아스트릭스(혈전예방제)가 80%, 메게이스(항암치료 보조제)가 170%씩 각각 성장했다.이 같은 매출 증가세는 앞으로 더욱 가속될 것으로 김 사장은 판단하고 있다. 영업 인력 재배치와 신규 인력 보강이 지난해 6월 마무리됐는데 이들의 매출 실적이 본격화되는 것은 1년이 경과한 올해 하반기부터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이제 전사적으로 진행한 영업 마케팅 조직 재편과 제품 정비 등 구조조정을 바탕으로 올해 매출을 극대화하고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데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이를 통해 보령제약은 2007년에는 매출 2000억 원대의 제약회사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김 사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묻는 질문에 “사람이 가장 큰 재산”이라는 얘기를 종종 한다. 외국계 제약사에서 근무할 당시 본사에서 온 간부들과 이야기할 때 가장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사람’이 소외된다는 점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이 때문에 그는 보령제약빌딩 15층에 있는 집무실 문을 항상 열어 놓고 있다. 누구든지 와서 얘기하라는 의미다. 덕분에 김 사장의 방은 수시로 들락거리는 직원들 때문에 늘 부산하다. 그가 강조하는 열린 경영이다. 그는 직원들과의 대화를 중시한다.그는 사람의 힘을 알고 있기에 늘 감성의 통로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32년간 제약 업계에서 많은 성공 신화를 만들었지만 한사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나를 믿고 열심히 해준 덕분”이라고 말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약제비 적정화 방안 등 국내 제약 업계를 둘러싼 각종 악재를 김 사장이 어떻게 돌파해 나갈지 주목된다.약력:1948년 충남 대천 출생. 75년 건국대 수의과 졸업 및 한국바이엘 입사. 84년 건국대 대학원 수의학석사. 98년 건국대대학원 수의학박사. 86년 한국바이엘 영업본부장(전무). 92년 바이엘USA 극동담당 매니저. 96년 사노피신데라보코리아 부사장. 2005년 보령제약 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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