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계 결산

비보이·사극 등 차세대 한류 ‘와우’

올 한해 문화계를 되짚어 보면, 비보이로 대표되는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가 각광받으면서 차세대 한류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한 해였다. 또한 미술 작품이 감상뿐만 아니라 투자의 대상으로 부상했다. 영화계는 이 흥행기록을 갈아 치우며 한국형 몬스터 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그 이면에서는 수준 높은 저예산 영화가 소리 소문 없이 사장돼 버리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공연계 사로잡은 ‘비보이’비보이(B-Boy), 즉 브레이크댄스를 전문적으로 추는 사람을 뜻하는 이 말은 한국 공연계의 최신 트렌드가 됐다. 그 출발은 전용극장 개관 1주년을 맞은 다. 이 공연은 비보이 댄스에 스토리를 엮어 만든 최초의 콘텐츠로 공연된 지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평일에도 매진사례를 이루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최근 공연 1주년을 기념해 공연 시간을 늘리는 등 보강 작업을 마쳤으며 내년에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진출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한마루커뮤니케이션이 제작한 는 지난 11월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마치고 내년 장기공연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으며 비보이그룹 익스프레션 크루와 공연 제작사 트라이프로가 함께 만든 는 지난 가을 매진사례 속에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쳤다. 역시 내년 1월에 다시 막을 올린다. 난타 제작사 PMC가 제작한 는 1년여의 준비 끝에 12월 현재 비보이 코리아 전용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비보이 경합 대회에서 실패한 한 사내가 국악에 새롭게 눈을 뜨며 결국 비보이 경합 대회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줄거리로 서양 문화인 비보이에 대금, 가야금 등 전통 악기를 곁들였다. 넌버벌 퍼포먼스 의 제작사 예감은 비보이를 주인공으로 한 코미디극 을 준비 중이다. 내년 4월 영국 웨스트엔드 피콕 극장에서 초연한 뒤 충무아트홀에서 장기공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에 한국관광공사는 비보이를 차세대 한류 주력상품으로 정하고 붐 조성에 나선 상황이다.한편 비보이들의 위상이 자연스럽게 높아지면서 기업에서도 비보이를 찾는 일이 많아졌다. 젊은 소비자를 타깃으로 한 기업체가 벌이는 프로모션 행사에서 비보이가 단골손님이 된 지 오래다. 광고 출연 요청도 부쩍 늘었다. 몸값도 올랐다. 광고 모델료도 수백만 원 단위에서 수천만 원 단위로 뛰었다. 최근에는 억대 광고 모델료를 받은 비보이 팀도 등장했다.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명암영화 이 가 갖고 있던 한국 영화 최대 흥행 기록을 갈아 치웠다. 은 상영 105일 만인 11월 8일 막을 내릴 때까지 1302만 명이 관람해 역대 한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인 의 1230만 명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한국형 괴수영화의 성공과 무난한 컴퓨터그래픽 처리 등은 이 한국 영화계에 내놓은 성과다. 그러나 은 ‘할리우드영화보다 더하다’는 의견이 등장했을 정도로 스크린 독점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이 작품은 칸 영화제 등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얻으며 바람몰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의 흥행 성공의 주요 이유 중 하나로 개봉관 수를 드는 이들이 많다. 은 620개 스크린에서 개봉됐다. 한 영화가 한국 스크린 전체의 40%를 장악한 셈이다.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로 영화인들과 정부가 갈등을 빚은 가운데 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중소 배급사의 몰락과 저예산 영화의 붕괴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던 게 올해 영화계의 모습이다.미술에 빠진 대한민국대한민국이 미술 사랑에 빠졌다. 서울 시내에서 들라크루아, 코로, 제리코 등 서양 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의 작품을 접하기란 이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는 ‘루브르박물관전’이 열리고 있다. 내년 3월 18일까지 계속되는 이 전시회는 51명의 대표적인 서양 작가의 작품 70여 점이 공개된다. 미국의 5대 미술관 중 하나인 클리블랜드미술관이 소장한 서양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 94점이 공개되는 ‘반 고흐에서 피카소까지’는 12월 22일부터 내년 3월 28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마네·모네·드가 등 인상주의, 반 고흐·고갱·세잔 등 후기인상주의, 피카소·마티스·몬드리안·뭉크 등 20세기 거장들의 유화·드로잉·조각 등을 감상할 수 있다. 12월 20일부터 내년 4월 1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공개되는 르네 마그리트전은 초현실주의 거장으로 불리는 르네 마그리트의 유화 100여 점과 과슈, 드로잉, 사진 등 270여 점에 달하는 작품이 공개될 예정이다.이뿐만 아니라 올해 미술계는 투자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랑가에 ‘부동산을 옥죄니 미술시장이 살아난다’는 말이 들려 올 정도로 미술 투자가 대안 투자의 하나로 떠올랐다. 유명 작가들의 작품 판매가 늘면서 화랑들은 미술품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을 내놓고 있다. 또 인터넷에서는 투자 정보를 나누는 미술 투자 커뮤니티가 등장했다.미술품에 투자하는 펀드 상품은 적게는 20억 원에서 많게는 100억 원까지 다양한 미술품 펀드가 출시됐거나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9월 있었던 서울대 미대의 개교 60주년 기념 ‘60만 원전’ 이후 그림 컬렉션이 급부상하면서 연말 미술가에는 ‘100만원전’ 등 소품 위주의 전시 판매 행사가 예년에 비해 두드러지게 늘었다.반면, 일부 화랑업체는 경매시장의 활성화로 유명 몇 작가에 의해 시장이 움직인다며 미술 투자 바람은 시기상조라는 우려를 나타냈다.TV브라운관 달군 사극대중문화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트렌디 드라마가 몰락한 대신 사극이 TV브라운관의 ‘블루칩’으로 등장한 점이다. 를 시작으로 등으로 이어지는 사극 드라마의 인기는 40대 이상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들였다.가수 출신 연기자와 TV드라마에 출연한 뮤지컬 배우들이 인기를 얻는 등 연예인의 영역 파괴도 올해 두드러지게 나타난 트렌드다. 대중 가수 그룹 베이비복스 출신의 연기자 윤은혜는 퓨전 사극 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에서 다시 한 번 맹활약해 각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의 여우신인상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윤은혜가 출연한 에서 남자 주인공을 맡은 오만석은 뮤지컬 배우 출신으로 브라운관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으며 드라마 에서 계모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박해미 역시 큰 관심을 모았다.출판계가 사랑한 치크리트여성 자기계발서가 인기를 끌면서 치크리트(Chick-lit) 열풍이 올 한 해 출판계를 강타했다. 치크리트는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 속어 ‘칙(Chick)’에 ‘문학(Literature)’을 결합한 말로 20대 여성 독자를 겨냥한 영미권 소설을 말한다. 최근에 영화화된 나 TV시리즈로 더 유명한 등이 대표적 사례다.한 인터넷 서점 업체의 분석에 따르면 치크리트는 구매자 중 20대 여성이 37%에서 많게는 50%까지 이를 정도로 20대 여성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국내 서적으로는 와 등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치크리트가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중반 영국으로, 대도시 사회 초년생의 일과 사랑을 가볍고 빠른 전개로 보여줌으로써 금세 미국과 아시아에서도 인기를 얻게 됐다. 작품성 없는 통속물이나 패션 잡지 같다는 지적과 함께 올 하반기 이슈가 됐던 ‘된장녀’ 논란으로 비판적인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당분간 그 인기만은 계속되리라는 게 출판계의 시각이다.클래식 거장의 방한올 가을에는 유난히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많았다. 지난 가을에는 거의 매주 유럽과 미국의 정상급 오케스트라들이 잇따라 방한했다. 11월 초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러시아의 거장 차이콥스키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연주했다. 이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458년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最古)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한국 관객을 찾았다.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는 특히 정명훈 지휘로 브람스와 베토벤의 곡의 연주해 호평을 받았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그의 악단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은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모차르트의 미완성 최후작 을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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