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윤리경영 ‘붐’

이윤 우선은 옛말…투명·건전성 ‘쑥쑥’

매년 반부패 비정부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하는 뇌물공여지수(BPI)는 한국 기업의 건전성과 윤리성이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게 여전히 낮은 수준임을 잘 보여준다. BPI는 세계 125개국 중견 기업인 1만1232명을 대상으로 세계 수출 주도국 30개국 기업이 해외 활동 시 비자금을 조성했는지, 현지 기업이나 정부에 뇌물을 주었는지 설문조사한 것이다.올해 한국 기업의 BPI는 10점 만점 기준에 5.8점으로 조사 대상 30개 나라 중 21위에 머물렀다. 한국은 홍콩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과 함께 하위 그룹에 속했고, 대만 인도 중국 러시아 터키 등은 최하위 그룹에 포함됐다.TI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 순위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 조사 대상 163개국 중 42위를 차지했지만, 비슷한 소득 수준인 나라들과 비교할 때 순위가 크게 떨어진다. 경제 발전에 걸맞은 청렴도를 갖추지 못한 셈이다.정부도 적극지원 … 우수기업 우대그러나 기업의 투명성, 건전성, 윤리경영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윤리경영은 내년 기업 경영의 최대 화두로 등장할 전망이다. 우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지속가능 경영을 하는 기업에 혜택을 주는 조항을 신설한 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내년부터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개정안은 정부가 종합시책을 수립해 ‘윤리적 기업’에 세제 혜택 등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지난 11월 28일 국회 산업자원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원안대로 통과됐고 정치권의 호응도 높아 이달 국회 통과가 확실시 되고 있다.또한 기업이 주가 조작이나 분식회계 등으로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주주 대표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해 이기면, 다른 주주들에게도 손해배상을 해줘야 하는 증권집단소송제가 자산 규모 2조 원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내년부터 시행된다. 정부는 그동안 증권집단소송제 시행을 앞두고 과거 분식회계 사실을 고백한 기업에 처벌을 경감해 주는 ‘자진신고 기간’을 운영해 왔다. 지금까지 두산 효성 대한항공 등 129개 기업이 분식회계를 자진 고백했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분식회계가 드러날 경우 집단소송까지 감수해야 한다.지속가능성 보고서를 발간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큰 변화다. 지속가능성 보고서는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 측면에서 어떤 경영활동을 해왔는지를 이해관계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으로, 국제기준인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 가이드라인에 맞춰 작성된다. 지난 2003년 지속가능성 보고서를 펴낸 기업이 현대차 삼성SDI 한화석유화학 등 단 3곳에 불과했지만, 올해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22개 기업이 보고서를 발간했다. 지속가능성 보고서 발간이 ‘일류 기업’의 필수조건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금융 시장의 압력도 기업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올 들어 국내에서도 사회책임투자(SRI) 펀드가 잇따라 등장해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SRI 펀드는 투명성 윤리경영 사회책임 등을 기준으로 기업의 등급을 매기고, 이를 기준으로 자금을 운용한다. 지난 11월말 주식시장의 ‘큰손’인 국민연금이 900억 원을 SRI 펀드에 투자해 이러한 움직임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이런 가운데 정부도 기업의 회계투명성 제고와 윤리경영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 국가청렴위원회는 지난 11월 28일 감사원, 공정거래위원회 법무부, 대검찰청, 금융감독위원회 등 14개 관련 기관과 함께 기업 회계투명성과 윤리경영 제고를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금융감독위원회는 회계 위반 관련 집단소송, 내부회계 관리제도, 공시서류에 대한 경영자 확인서명 의무화 등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그동안 추진해 온 정책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한층 강화하기로 했다.국세청은 분식회계 적발 활동을 전개하고 적발 내용을 관계 기관에 적극 통보하기로 했으며, 대검찰청은 기업회계 범죄에 대한 전문 수사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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