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대균 월드인더스트리얼매니지먼트컨설팅 대표

죽은 공장 살리는 ‘라인의 마술사’

‘라인의 마술사.’ 사람들은 백대균 월드인더스트리얼 매니지먼트 컨설팅 대표(62)를 이렇게 부른다. 그의 직업은 경영컨설턴트다. 주특기는 생산합리화다. 100ppm 같은 생산합리화 전략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업계에서는 그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다. ‘죽은 공장도 살린다’거나 ‘그가 다녀가면 생산 라인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등의 ‘무협지’ 수준의 이야기가 나돈다. 실제로 그가 다녀간 공장은 라인 길이가 3분의 1이나 4분의 1로 줄어든다. 그 기업은 ‘열등생’에서 ‘우등생’으로 다시 태어난다.물론 그의 몸값은 상한가다. 서울 강남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임원들과 중소기업 사장들이 수시로 드나든다. 이들은 그에게 ‘한번만 도와 달라’고 통사정한다. 하지만 그를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가 사무실에 나오는 횟수는 불과 한달에 1~2회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국내외 생산현장을 순회한다.예를 들면 한국 중국 태국 멕시코 등으로 돌아가며 공장 컨설팅에 나선다. 연말에 다음해 일정이 이미 주간 단위로 짜여질 정도로 바쁘다. 그가 활동하는 주무대는 LG전자다. 이 외에도 LG산전 등 LG그룹 계열사와 중소기업 컨설팅에 나서고 있지만 주요 고객은 LG전자다. 특히 LG전자 창원공장은 1989년에 시작해 지금까지 컨설팅을 하고 있는 곳이다. 컨설턴트가 한 기업에서 20년 가까이 일하고 있다는 것은 국내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다.그는 해외 유학파가 아니다. 외국 컨설팅 업체에서 일한 적도 없다. 말 그대로 순수한 토종이다. 한양대 산업공학과(63학번)를 나와 1970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의 도움을 받아 각 현장마다 생산 혁신을 추진했던 시절이었다.발군의 능력을 보였던 그를 업계에서 그냥 놔둘 리 없었다. 그를 눈여겨보던 S전자가 등기이사로 스카우트했다. S전자로 옮겨 근무하던 중 ‘좀 더 자유롭게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련 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러자 기회를 기다리던 LG전자에서 컨설팅 의뢰를 했던 것. “마치 전쟁터에 온 것 같았다.” LG전자 창원공장을 방문한 첫 소감이었다. 생산라인이 거미줄처럼 뒤엉켜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세계가 알아주는 최고의 공장으로 거듭났다.창원공장이 그저 그런 공장에서 GE관계자들이 깜짝 놀랄만큼 생산성이 뛰어난 공장으로 바뀌는 동안 LG그룹의 계열사들이 너도나도 그에게 매달렸다. 이러다 보니 그는 LG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됐다.그가 국내 최고의 생산합리화 컨설턴트로 우뚝 선 비결은 뭘까. 우선 ‘엄청난’ 노력을 들 수 있다. 62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지만 그는 하루 3~4시간 이상 자지 않는다. 일요일에도 사무실에 나와 한 주를 정리하고 다음 주를 치밀하게 준비한다. 특히 새로운 정보 습득에 온힘을 기울인다. 한국과 중국 사무실에 있는 그의 전문 비서들이 세계의 주요 신문과 잡지, 전문 인터넷 사이트를 샅샅이 뒤지면서 정보를 찾아낸다. 그 또한 경제·경영·생산합리화 관련 서적은 거의 모두 읽을 정도로 정보를 소중히 여긴다. 자료 정리도 꼼꼼하다. 지금 당장 책으로 펴내도 될 자료집이 1000여 권이 훨씬 넘는다. 대다수 자료집은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중국어로 번역돼 있다. 규칙적인 생활도 비결 중의 하나다. 그는 술·담배를 일절 하지 않는다. 되도록이면 감기에 걸린 사람과는 함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도 그만의 규칙이다.그는 외국 이론에 의존하지 않는다. 외국 기업의 성공사례는 허구라고 잘라 말한다. 그는 “합리화는 패션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유행하는 이론을 무조건 받아들여 적용하면 대부분 실패한다는 지적이다. 그만큼 한국의 공장 실정과 문화를 우선시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자신의 경험과 그동안 모은 자료집을 바탕으로 한국형 생산 방식을 집대성한 책을 펴낼 계획이다. 이미 준비하고 있는 것만도 수백 권에 달한다.약력: 1944년생. 67년 한양대 산업공학과 졸업. 70년 현대자동차 입사. 89년 월드인더스트리얼매니지먼트컨설팅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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