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부처 24시

레임덕 리더십…경제 더 망친다

“임기를 다 마치지 않은 첫 번째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희망합니다.”지난 11월28일 노무현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시작하자마자 던진 이 한마디에 과천 경제부처는 크게 술렁였다. 무엇보다 대통령의 급속한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으로 인한 정책 추진의 어려움을 우려하는 분위기였다.“대통령이 ‘임기 중 하야(下野)’를 언급하고 ‘열린우리당 탈당’을 시사한 발언으로 정국이 혼미 상태로 빠져들면 정부의 경제운영도 방향감과 추진동력을 상실할 텐데, 걱정이다”(재정경제부 국장)라는 우려에서부터 “가뜩이나 대통령의 레임덕이 일찍 시작된 상황에서 당·정·청이 사분오열되면 정치적 리더십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나 국민연금 개혁 등 핵심 경제현안들은 표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산업자원부 1급)라는 얘기도 나왔다.“정국혼란이 내년 대통령선거 때까지 이어질 경우 우리 경제는 앞으로 1년 이상을 허송하며 회복불능의 저성장 늪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기획예산처 과장)라는 비관적 전망도 나왔다.경제관료들이 노 대통령의 발언에 이처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최근 국내 경제상황이 만만찮기 때문이기도 하다. 최근 우리 경제는 경기가 하강국면에 접어든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떨어지고 조류인플루엔자(AI)마저 발생한 상황이다. 부동산시장의 불안감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다. 한마디로 악재투성이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이 권력누수와 정국혼란을 자초하는 발언을 한 것은 국내경제에 메가톤급 악재가 될 게 뻔하다.실제 노 대통령은 ‘임기’와 ‘탈당’ 발언 이후 열린우리당과는 결별 수순을 밟고 있다. 그나마 불안했던 당·정·청 시스템조차 이제는 완전 붕괴되는 셈이다. 특히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여당이 사라지면 당·정 협의채널도 사라진다. 정부가 경제정책을 입법화하는 데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한·미 FTA 체결이나 국민연금 개혁, 비정규직 관련 법안 개정 등 경제현안은 물론 내년 예산안·세제개편안 등 민생법안 처리도 표류할 공산이 크다.민생법안 표류 … 복지부동 조짐도문제는 이런 불확실성이 관료들을 복지부동하게 만들고, 기업들은 투자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경제부처 고위관료는 “권력의 중심이 사라지고, 그 향방이 불확실해지면 공무원들은 엎드릴 수밖에 없다”며 “실제 역대 정권의 말기에 그런 현상이 나타났고, 참여정부에선 그 시기가 당겨졌을 뿐”이라고 말했다. 기업인들도 “경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게 불확실성인데 정치권이 혼돈에 빠져드는 상황에서 과연 투자를 늘릴 기업이 몇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한다.실제 대한상의가 최근 서울 소재 300개 기업을 대상으로 ‘2007년도 투자계획’을 조사한 결과, 이들 기업은 내년 투자를 금년 대비 3.7% 늘리는 데 그칠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투자확대를 포기한 셈이다. 기업 투자가 늘지 않으면 금년 5%에서 내년 4% 초반으로 전망되는 실질경제성장률은 더 급락할 수도 있다. 향후 성장잠재력이 약화되는 건 물론이다.그렇다면 한국경제는 이대로 표류해야 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파국을 막으려면 경제 리더십이라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부동산 불안, 환율하락 등 경제여건이 심각한 상황에서 경제를 방치하다간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여·야를 떠나 정치권도 경제만은 꼭 챙겨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타협을 모색하는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이재웅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정치가 혼란할 때 중요한 건 관료사회가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정치적 리더십이 흔들리더라도 관료들은 눈치 보지 말고 본연의 업무를 뚝심 있게 밀고나가야 한다.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만든 정책이라면 여·야를 가리지 말고 만나 끈기 있게 설득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이지순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그 어느 때보다 경제부총리의 확고한 경제 리더십이 요구되는 때라는 목소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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