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슈머 시대 네트워크 마케팅이 연다

‘다단계업체? 피라미드 아니야?’이 같은 오해를 하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많다. 하지만 합법적인 다단계업체와 불법 피라미드는 확연히 다르다.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다단계판매란 ‘제조업자 → 도매업자 → 소매업자 → 소비자’와 같은 일반적 유통경로를 거치지 않은 판매형식을 뜻한다. 다단계판매 회사의 물건을 사용해 본 소비자가 다단계사업자가 돼, 다른 소비자에게 판매 또는 구매를 권유한다. 다른 소비자는 다시 사업자가 돼, 또 다른 소비자에게 구매를 권유하는 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방식이다.피라미드는 회사 물건에 대한 자세한 정보 없이, 오로지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서 다단계판매와 다르다. 또 사업설명회를 회사가 관리·감독하는 공개된 장소에서 개최하지 않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강압적으로 진행할 때도 피라미드로 의심하면 된다. 특히 공동 숙소에 묵으며 사업을 진행하고, 확실한 환불제도가 없을 때 피라미드로 판단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제조합 가입 여부다. 공제조합 등에 가입돼 있지 않아 피해보상이 불가능하다면 합법 다단계와는 다른 피라미드 업체다.최근에는 ‘다단계판매’ 대신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적잖은 소비자들이 ‘다단계’라는 말에 거부감부터 나타내서다. 이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다단계판매’ 대신 ‘네트워크 판매’, ‘네트워크 마케팅’이라는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다단계판매’는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의한 법률용어다.업계에서는 네트워크 마케팅을 다단계판매보다 업그레이드된 상위개념으로 보고 있다. 소비자집단이 제품의 가격, 품질, 애프터서비스 등 기업의 마케팅 활동의 전 영역에 참여하는 마케팅 기법으로 여긴다. 물론 최종소비자가 만족을 느껴, 이에 대한 정보를 확산시킨다는 게 전제돼 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법률용어도 ‘다단계’가 아닌 ‘네트워크 마케팅’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다단계판매의 태동은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통적인 방문판매 방식에 한계를 느낀 미국의 영양보급식품 제조업체 뉴트리라이트사가 아이디어를 냈다. 사업자가 하위 사업자를 모집할 수 있도록 했다. 사업자가 직접 판매한 매출에 대한 수당뿐 아니라 하위 사업자의 매출실적에 대해서도 일정 수당을 지급하는 방법을 도입했다. 이를 MLM(Multi Level Marketing)이라고 불렀다.국내에서 네트워크 마케팅 업체들이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시점은 95년이라고 보면 된다. 개정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합법적인 네트워크 마케팅의 사업계기가 마련된 것이다.법적으로 허용되기 전에는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정상적인 다단계판매 방식이 도입되기 전인 88년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불법 피라미드로 국민들은 한 차례 홍역을 치렀다. 이때부터 불법 피라미드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91년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에 다단계판매에 대한 규제를 삽입한 법을 만들었다. 이어 95년에는 통신판매, 방문판매, 다단계판매 전반에 관한 법률을 개정 공표, 다단계판매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발전하기 시작했다.2000년대에는 여러 외국계 회사가 한국에 진출하며, 이른바 화이트칼라층이 업계에 대거 몸담게 됐다. 2002년 또한 네트워크 마케팅 업계에 중요한 한해였다. ‘방문판매 등에 관한 법률’이 다시 한 번 개정되고, 직접판매공제조합과 한국특수판매공제조합이 설립되면서 시장이 정화되기 시작했다. 한때 700여개가 넘던 업체들이 2003년에는 200여개로 줄었다. 이후 추가로 난립하던 업체들이 정리돼 올해는 합법적인 기업 수가 100개 안팎이다.한정현 직접판매연구소 소장은 “지금은 80여개의 합법적인 네트워크 마케팅 업체가 활동하고 있다”면서 “미등록업체로 음성적으로 다단계판매를 하는 업체는 합법업체의 5배로, 약 400개사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2002년 이후 업계 정비가 활발히 이뤄졌지만 아직도 일부 불법업체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옥석을 가리는 혜안이 필요하다.한 소장은 또 “올해 네트워크 마케팅 시장 규모는 3조5,000억원”이라면서 “여기에서 소득을 얻는 사람은 137만여명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2개의 직업을 가진 ‘투잡스족’이 아닌 전업으로 네트워크 마케팅에 뛰어든 사람은 약 10만~50만명”이라는 분석도 덧붙였다.몇 년 전부터 네트워크 마케팅 업계는 ‘프로슈머’ 개념을 도입, 활용하고 있다. 업계 종사자들은 스스로를 프로슈머로 부르기도 한다. 물건을 사용하는 소비자인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는 생산자라는 얘기다. 유형의 물건 자체만 소비, 생산의 대상이 아니다. 네트워크 마케팅의 프로슈머들은 자신의 경험 자체를 무형의 자산으로 여긴다. 다른 사람보다 제품 수용이 빠른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초기수용자)로 물건을 써본 경험을 전파한다. 입소문의 근원지 역할을 한다.경제평론가인 엄길청 경기대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소비라는 경험은 하나의 사업이 될 수 있다”면서 “현명한 소비를 한 뒤 다른 사람에게 그 경험을 알려줄 때 돈을 받는다면 경험 마케팅이 된다”고 말했다. 엄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네트워크 마케팅 업계 종사자는 제품과 함께, 자신의 소비경험에 대해서도 역시 비용을 받는 셈이다. 엄 교수는 “최종 소비자가 네트워크 마케팅 업계 종사자인 프로슈머에게 ‘현명한 소비 경험’에 대한 일종의 대리인 비용을 준다고 보면 된다”고 덧붙였다.프로슈머의 개념이 적용되면서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는 네트워크 마케팅 업계. 보다 밝은 미래로 도약하려면 투명한 경영 시스템과 소비자를 우선시하는 운영철학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프로슈머들의 소비경험을 살려 보다 경쟁력 있는 제품, 합리적인 보상 플랜, 체계화된 교육 시스템을 개발하는 것도 업계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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