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회담 미지수…신사참배 중단이 관건
일본에 아베 신조 시대가 열렸다. 지난 9월20일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사실상의 총리선거라고 할 수 있는 집권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압도적 표차로 승리를 거뒀다. 전체 703표의 66%인 464표를 얻었다. 9월26일 임시국회에서 총리 지명을 받으면 곧바로 3년간의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아베 총재는 ‘강한 일본’, ‘아름다운 일본’을 표방하고 있다. 이를 위해 강도 높은 교육개혁을 실시하고 헌법을 개정해 해외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확보하는 한편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빈부격차와 청년실업 문제 해결에도 박차를 가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대 관심사는 외교정책이다. 고이즈미 총리 시절 악화될 대로 악화된 아시아지역 국가들에 대한 외교정책에도 변화가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아베 총재는 취임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가능한 가까운 시일 안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과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는 게 필요하다”며 정상회담에 대한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다. 특히 “한국과는 자유민주주의 가치관이 같아 동질감을 느낀다”고 말해 한국과의 갈등을 해결하길 원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 입장은 아직까지 냉랭하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정상회담에 대한 어떤 논의도 없다”며 “정식으로 총리로 취임한 후 정부의 입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발표했다.한·일 정상회담이 열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교과서, 독도, 위안부 문제 등 한·일관계를 악화시킨 요인은 많지만 직접적 계기는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였기 때문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한국과 중국의 반복적인 우려에도 신사 참배를 고집했고 일본은 아시아 국가들과 멀어지고 말았다.하지만 아베 총재는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 어떤 공식적인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게다가 그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옹호한 인물이어서 역사인식에 의구심을 자아내는 것도 사실이다. 이 ‘한국,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전쟁 전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솔직히 반성하는 역사인식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한·일관계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대목은 북·일관계다. 최근 일본은 미국과 발맞춰 북한에 강경한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일본의 대북 강경노선을 주도한 인물이 바로 아베 총재다. 관방장관 시절엔 대북 금융제재를 이끌기도 했다.사실 아베 총재가 현재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북한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아베 총재는 북한의 일본인 납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싸웠고 납치피해자 문제인 ‘메구미 사건’ 해결에도 최전선에 섰다. 2004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갖고 일부 납북 일본인을 귀국시키며 국민적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선거유세에도 그는 “납북된 일본인 중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며 “납북자 귀국을 위해 북한에 압박을 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일본의 대북관계가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특히 최근 대포동 미사일 발사 사건으로 이미 분위기는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진 상태여서 북·일관계가 어떻게 전개될지는 미지수다.일본의 언론과 재계는 아베 총재가 경색된 아시아 국가들과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강력히 원하고 있다. 외교마찰로 그동안 받은 경제적 손실이 이만저만 아니라는 불만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은 물론이다. 야마구치 노부오 일본 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 중국과의 관계를 좋게 하는 것은 중요한 국익”이라며 “국가를 위해 무엇이 좋은지 잘 판단해 달라”고 당부했다. 고이즈미 시절 ‘잃어버린 외교 5년’을 어떻게 되찾아올지 아베 총재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