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명문가에서 배우는 경영 ② - 퇴계 이황

인적 네트워크와 섬김의 리더십 ‘탁월’

우리나라 전통 명문가의 대표 브랜드로도 손색없는 진성이씨 가문의 퇴계 이황(1501~1570)은 대표적인 가문의 기획자이자 CEO로 꼽을 수 있다. 퇴계는 조선시대 최고의 학자로 우뚝 섰을 뿐 아니라 진성이씨 가문을 한국 최고의 가문으로 후손들에게 물려줬다. 퇴계에서 시작된 학문과 가문은 500년 동안 큰물줄기가 돼 ‘가문 주식회사’의 차원을 넘어 수많은 기업을 거느리는 ‘가문 그룹’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500년을 이어온 퇴계가문은 가문경영뿐 아니라 기업경영의 차원에서 볼 때도 귀감이 되기에 충분하다.가문의 CEO로서 퇴계가 특히 두드러지는 이유는 450여년 전에 이미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인적 네트워크는 요즘 최고경영자나 직장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통한다. 비단 비즈니스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훌륭한 인맥은 성공의 보증수표로 통할 정도로 큰 위력을 발휘한다. 그래서 너도나도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조선 최고의 대학자인 퇴계 이황은 어떻게 보면 세속적이라고 할 정도로 인적 네트워크 교육에 앞장섰다. 퇴계는 아들과 손자 등 후손이나 제자들에게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 주려고 무진 애를 썼다. 퇴계가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서원은 요즘으로 보면 사립 명문대에 해당할 것이다. 퇴계는 뜻을 같이하는 친구끼리 함께 공부하면 능률이 오른다며 제자들간에, 제자와 그의 후손간에 ‘그룹 스터디’를 적극 권했다. 학식이 높은 제자가 찾아오면 절에 있는 아들을 불러 새 친구로 삼아 함께 공부하도록 할 정도였다. 굳이 당대의 대학자인 퇴계가 제자를 위해 그런 일까지 세세하게 신경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들과 손자, 제자들을 세심하게 보살폈다.퇴계의 인적 네트워크 교육에서 두드러진 점은 출신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학식이 깊고 선비의 자질이 있으면 서로 사귀게 하면서 학문을 닦게 했다는 점이다. 특히 퇴계는 신분과 귀천의 구별을 두지 않고 학문으로 교유하게 했다. 다만 신분이 높더라도 학문하려는 자세가 돼 있지 않으면 결코 퇴계의 네트워크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퇴계의 인적 네트워크는 퇴계 사후 영남학파라는 조선시대 최고의 학파를 형성하는 데 기반이 됐다. 그런데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이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퇴계의 제자들이 다시 수많은 제자를 배출하면서 사제 관계를 맺게 된다는 데 있다. 퇴계의 학맥도에는 제자들이 무려 700여명에 이른다. 기업경영에 비유하면 이들은 창업자와 코드가 가장 잘 맞는 핵심인재들이자 마켓전사라고 할 수 있다.학문을 통해 형성된 퇴계의 인적 네트워크는 다시 혼맥과 결합하게 된다. 퇴계의 인적 네트워크는 500년 동안 이어져 영남의 선비가문 가운데 퇴계 가문과 혼인을 하지 않은 명문가가 거의 없을 정도다. 삼보컴퓨터의 이용태 창업자는 퇴계 종가가 처갓집이다.또한 오늘날에도 유용한 퇴계의 가문경영학으로 섬김의 리더십을 꼽을 수 있다. 퇴계는 학문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존경했다. 아들뻘인 26살 연하의 기대승과 서신을 통해 논쟁을 벌이면서도 깍듯이 예의를 갖췄고, 그의 학문을 경애했다. 제자를 벗으로 대했고 아무리 어린 사람이라도 ‘너’라고 부르는 법이 없었다. 제자에 관한 언짢은 꿈을 꾸면 그의 안부를 염려하는 편지를 보냈고, 곤궁한 제자가 있으면 곡식을 보내줬다.퇴계의 이런 처신과 배려가 도산서원에 제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게 만들었고, 결국 조선시대 최대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든 것이다.이같이 퇴계의 섬김의 리더십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서 나왔다. 퇴계는 아들과 손자, 조카뿐 아니라 형의 외손, 질녀, 형의 사위, 형의 손자, 조카의 글공부와 어려움을 힘닿는 대로 보살폈다.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이지만 퇴계는 먼저 일가의 큰어른으로서의 역할도 다했던 것이다. 퇴계는 맏형의 외손자가 공부를 게을리 하자 닭 한 마리와 생선을 보내 학문에 힘쓰기를 당부하기도 했다.퇴계는 벼슬은 자신이 아니어도 다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스스로 학문을 닦아 착한 사람을 많이 키워내는 교육사업’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았다고 한다. 퇴계는 교육사업을 선택해 수많은 인재를 길러내면서 요즘 기업경영의 키워드가 되고 있는 ‘선택과 집중’을 몸소 실천했고 아울러 ‘인재경영’의 초석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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