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 출신 CEO들

‘의사’보다 ‘사장님’이 ‘더 좋아~’

물론 서울대 의대 출신이라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부와 명예도 어느 정도 보장돼 있다. 그러나 서울대 의대 출신들이 모두 의료인의 길을 걷는 것은 아니다.기업의 최고경영자(CEO)로 제2의 인생을 걷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흰 가운을 벗은 경우가 있다. ‘새로운 꿈’을 펴기 위해 벤처기업을 설립, ‘고행의 길’을 자처하는 의사들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건 이들은 하루 24시간 싸움이 벌어지는 비즈니스 전쟁터에서 치열한 전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전공을 떠나 기업경영에 뛰어든 최고경영자로는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과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 등이 눈에 띈다.최근 황혼이혼으로 화제를 모은 강신호 전경련 회장(79·동아제약 회장)은 서울대 의대를 대표하는 기업 CEO다. 이번에 이혼한 부인도 의사 출신이다. 그는 1952년 서울대 의대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독일유학길에 올랐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강회장의 선친은 고 강중희 동아제약 창업주다. 75년 선친의 뒤를 이어 동아제약 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회사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주로 대외활동에 힘을 쏟았다는 평가다.환경보전협회 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한국제약협회 회장 등 역임한 직책이 A4 용지 한장을 다 채우고도 모자란다. 의료인의 길을 걷지 않았지만 지난 83년 서울대 의대 총동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지난 2004년 2월에는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 회장에 추대됐다.신창재 교보생명 회장(53)은 교보생명 창업자인 고 신용호 회장의 장남이다.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지난 87년부터 10년간 서울대 의대 교수(산부인과)로 일했다. 지난 96년 교보생명 부회장으로 옮기며 기업인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인생의 중반에 접어들면서 더 큰일에 도전하고자 마음먹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신회장은 “의사와 보험회사 CEO는 묘하게 비슷하다”며 “의사가 환자의 질병 원인을 분석하고 적절한 처방을 해야 하듯이 기업경영도 꼭 그렇다”고 설명한다. 그는 교보생명의 보험설계사들에게 ‘신창재는 여자(임산부·보험설계사)없이는 못사는 남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기도 한다. 전권을 물려받은 2000년부터 교보의 혁신·변화 경영을 주도하고 있다. 당시 신회장은 한 해에 370번의 전략회의를 열 정도로 변화와 혁신에 몰두했다. 교보생명을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금융회사로 키우는 것이 그의 꿈이다.박용현 연강재단 이사장(63)도 올 초 두산산업개발 이사로 등재되면서 두산그룹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 박이사장은 두산그룹 고 박두병 창업주의 4남이다.그는 형제들과 달리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병원에서 기획조정실장, 11·12대 병원장을 역임하며 철저히 의료인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가 지난해 그룹에서 운영하는 연강재단 이사장에 취임하고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하면서 그룹경영에 뛰어들었다. 그는 교수직 퇴임을 선언하면서 “의사 출신 CEO도 많다. 서울대병원장 시절 직원 5,500명에 한해 예산 5,000억원이나 되는 거대한 조직을 이끌면서 경영수업도 많이 쌓았다”며 기업경영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기도 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박이사장이 그룹 회장을 맡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없지 않다. 지난해 ‘형제의 난’을 겪으면서 형제들의 치부가 속속 드러났지만, 박이사장은 깨끗한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이들과 달리 서울대 의대 출신으로 직접 기업을 설립해 크게 성공한 CEO들도 적지 않다.황성주 이롬 회장(49)이 대표적이다. 황회장은 유명 의사에서 기업가로 변신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서울대 의대를 나와 국내 최초로 독일에서 대체의학을 수학했고, 교수와 암전문 병원장으로 일하다 99년 이롬을 창립했다. 임상실험 결과 환자의 식이습관과 병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 그는 선조 고유의 자연식인 생식을 적용해 큰 효과를 본 뒤 이를 현대화·과학화한 상품을 내놓게 된 것이다. 생식을 대중화시키고 식단혁명을 일궈낸 선구자로 꼽히는 황회장의 이름 석자는 이제 최고 생식 브랜드로 통한다. 소비자들은 ‘이롬 생식’보다 ‘황성주 생식’에 더 익숙하다. 지난해 7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이롬은 올해 1,000억원 매출에 100억원의 순익을 예상하고 있다. 또 2010년엔 1조원 매출에 1,000억원 이익 달성이 목표다.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44)은 2000년대 들어 가장 유명한 벤처기업인으로 발돋움했다. 무엇보다 안의장은 윤리·투명 경영을 앞세운 기업경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CEO 반열에 올랐다. 그는 지난 80년 서울대 의대에 진학하고, 단국대 의예과 학과장까지 지냈다. 물론 박사학위도 취득했다. 하지만 대학 1학년 때 접한 컴퓨터에 대한 관심은 끝내 그의 가운을 벗게 했다.그가 의사란 직업 대신 창업을 선택한 이유는 특이하다. ‘의사는 일에 쫓기지만 사장이 되면 아무도 간섭하지 않으니 책도 마음대로 읽고 쓸 수 있다’는 주변의 권유를 듣고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95년 서울 서초동에서 3명의 인원으로 안철수 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해 바이러스 솔루션 V3 시리즈를 선보였다. 이후 보안컨설팅, 웹기반 보안사업, 해외진출 등으로 사업체는 점점 커졌고, 이제 회사는 국내를 대표하는 보안업체로 자리잡았다.바이오기업은 서울대 의대 출신들이 주름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의 인체를 다룬다는 점에서 연관된 업종이기도 하지만, 이들의 도전정신이야말로 새로운 세계로의 진출을 꾀한 주된 이유다.제대혈업계의 선두주자인 메디포스트의 양윤선 사장(42)은 89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99년 같은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병원 임상병리학 전공의와 삼성서울병원 임상병리과 교수로 일하다가 2000년 메디포스트를 설립했다.양사장은 서울대 의대 수석졸업에 이어 임상병리학 전문의 자격시험에도 수석합격한 국내 최고의 세포 치료제 전문가다. 삼성서울병원 재직 시절인 98년에는 제대혈 보관기술을 국내 최초로 상용화한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외국에서는 제대혈은행이 널리 보급되고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제대혈이 폐기물로 버려지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는 것이 변신의 이유이다. 그녀는 “제대혈 내 줄기세포를 이용해 난치병 치료제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설립했다”고 말했다. 아무튼 그녀는 지금 시가총액 1,000억원이 넘는 코스닥기업 CEO다.세포치료 전문기업으로 유명한 이노셀의 정현진 사장(42)도 서울대 의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마친 의사 출신이다. 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한 정사장은 일찍부터 면역세포 치료제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해 왔다.줄기세포에 비해 치료제 개발이 상대적으로 수월한데다 부작용도 없어 시장전망이 밝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면역세포치료는 종양백신, 각종 면역세포, 사이토카인 등을 이용한 치료제를 투여해 환자의 체내 면역력을 증강시켜 치료하는 항암치료요법의 일종이다.기존의 항암제 치료가 암세포와 함께 정상세포까지 죽이는 문제점이 있다면, 면역세포치료는 환자 자신의 면역세포가 치료제로 쓰여 고통이나 부작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정사장은 현재 면역세포치료제 사업을 비롯해 세포 보관사업, 항암치료 관련 진단사업 등을 영위하고 있다. 그는 이노셀 지분 21.49%를 갖고 있는 바이오메디칼홀딩스의 최대주주다.이 밖에 현 교수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마크로젠의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서정선 교수(54), 바이오벤처인 마이진의 대주주 한인권 성균관대 의대 교수(53) 등 의료인의 길을 가면서 기업경영에도 참여하는 의사들도 있다. 아직 CEO 반열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기업의 핵심 임원으로 활동하는 서울대 의대 출신도 상당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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