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현지화…컬러TV 등 5부문 ‘킹’
LG전자 인도법인의 신문범 부사장(52). 그는 이곳에 부임한 지 1년여밖에 안됐지만 그동안 10차례 가량 복통을 앓았다. 틈나는 대로 전국의 대리점을 방문하고 시장조사를 하며 의견을 듣는 과정에서 물을 잘못 먹기도 했고 영상 40~50를 오르내리는 여름날씨에 적응하지 못해 고생했다.이 법인의 김광로 사장(60). 1997년 인도법인 설립 때부터 9년째 법인장을 맡고 있는 김사장은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은 공장에서 사업을 총괄 지휘하고 나머지 닷새는 첸나이, 뭄바이, 하이드라바드, 방갈로르 등 지방을 구석구석 방문한다. 이들 지역에서 매장 적합지를 발굴하고 현지에서 곧바로 의사결정을 내려 대리점 개설을 지원하기도 한다. 초창기 지방을 방문할 때는 트럭에 제품을 가득 싣고 다니며 현지에서 브랜드를 알리고 제품을 팔았다.인도는 말이 한 나라지 28개주가 각기 다른 나라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특성이 제각각이다. 기후와 관습, 인종이 다르다. 중앙정부의 공용어는 힌디와 영어이지만 헌법에 지정된 언어만 18개에 이를 정도로 언어도 다양하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LG전자는 발로 뛰는 경영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난해 이 회사는 컬러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레인지 등 5개 가전제품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했다(리서치기관 ORG-GFK조사).컬러TV 시장에서는 264만대를 팔아 27%를 점유했다. 냉장고는 106만대로 30%, 세탁기는 52만대로 35%, 에어컨은 45만대로 35%, 전자레인지는 19만대로 40%를 각각 차지했다. 이뿐만 아니다. DVD플레이어와 모니터, 휴대전화는 각각 2위를 기록했다. 재미있는 것은 퍼스널컴퓨터는 시장점유율이 5위에 그쳤는데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1위(AC닐슨, CNBC 공동조사)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그만큼 LG전자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도와 호감은 절대적이다.초창기 자본금 3,000만달러를 단독 투자해 설립된 LG전자 인도법인은 9년 만에 총자산이 5억달러로 늘어났다. 그동안 번 돈을 재투자해 알뜰하게 키운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18억달러. 직원수는 2,800여명에 이른다. 지점수 125곳, 딜러 1만8,200명, 서비스망 1,100개 등으로 늘어났다. 인도 전역에 실핏줄처럼 판매망, 서비스망을 구축한 것이다.신부사장은 “오는 2010년에는 매출을 60억달러로 늘릴 계획”이라며 “이를 위해 2010년까지 1억5,000만달러를 추가투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미 지난 9년 동안 2억달러를 투자했는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투자해 1위자리를 확고히 굳힐 계획이다.LG전자가 인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중에서 첫손에 꼽을 수 있는 게 철저한 현지화다. LG가 인도에 현지법인을 설립할 당시 인도에는 제대로 된 가전제품업체로 소니 정도가 있었다. 단독법인 설립 직후 현지공장이 완공되기 전까지 LG전자는 현지업체와 제휴해 주문자상표부착(OE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했다. 그러나 현지업체의 생산성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자 먼저 부장급 관리자가 생산공정에 참여해 현장 근로자와 같이 일했다. 이들과 음식을 함께 먹으며 문제점을 파악했다. 이를 통해 이들의 느슨한 작업태도를 바꿨고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었다. 힌디와 영어가 공용어이면서 10여개가 넘는 지역언어들이 사용되는 인도 사정을 감안, TV화면에서 10개의 지역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첨가해 현지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반면 LG보다 먼저 인도에 진출한 소니는 제품의 현지화보다 일본산 제품을 수입, 판매하는 전략을 써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인도는 전기사정이 좋지 않아 전압도 불안정했다. 이에 따라 초창기 TV콘덴서가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원인을 분석해 인도의 현지 불안정한 전압에 견딜 수 있는 콘덴서를 개발해 제품에 달았다. 부품도 현지 실정에 맞도록 개조한 것이다.특히 과감하게 권한을 넘겼다. 소비자들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현지 전문가라는 판단에서 이들에게 마케팅 업무의 99.9%를 맡기고 과감하게 권한을 부여한 전략이 주효했다. 지금도 LG전자 인도법인에는 2,800명의 임직원 가운데 한국인은 고작 20명에 불과하다. 현지주민과의 친화를 위해 노이다공단 인근에 보건소를 지어주고 의사, 약사, 간호사를 고용해 무료진료와 처방활동도 하고 있다.제2공장이 있는 푸네지역에도 이런 형태의 보건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돈만 버는 기업이 아니라 현지인을 채용해 고용을 늘리고 사회에도 기여한다는 이미지를 굳건히 심어주고 있는 것이다.둘째, 효과적인 스포츠 마케팅이다. 인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구기종목은 크리켓이다. 이들의 기호를 파악해 TV 내에 크리켓 게임기능을 내장했고, 크리켓 경기를 공식후원하는 스포츠 마케팅도 활발히 펼쳤다.셋째, 상위중산층 개척전략이 맞아떨어졌다. LG전자는 상위 5%에 해당하는 상류층을 타깃으로 하는 고가전략을 펴왔다. 이들은 구매력이 있었고 이들의 LG제품 구매는 새로 유효수요층으로 진입한 다른 소비자들로 하여금 LG제품을 갖고 싶도록 만들었다.넷째, 거미줄 같은 유통 및 서비스 전략이다. LG전자는 인도진출 초기부터 전국 주요 지역에 18개의 지사를 설립하는 한편 1,800여개의 유통망과 85개의 서비스센터를 만드는 등 유통과 서비스에 심혈을 기울였다. 다른 외국업체들이 애프터서비스(AS)를 소홀히 하는 동안 LG전자는 지사인원의 절반을 AS요원으로 운영하는 등 이 부문에 신경을 썼고 처음으로 주부사원 판매제를 도입해 인도의 유휴 여성인력을 활용했다. 여성판매사제도의 활성화는 인도에서 업계 최초로 실시한 것이며 전자제품 주 고객층인 여성층 공략 등 판매확대에 기여한 것은 물론이다.다섯째, 철저한 인센티브제도 도입을 통해 인도 현지인들의 동기유발을 극대화했다. 이 회사의 전명종 부장은 “직원들에 따라 인센티브(보너스)가 한해 0%에서 2,000%까지 차등 지급된다”고 설명했다.LG전자 인도법인은 앞으로 계획은 그동안 다소 미흡했던 PC와 GSM(유럽 방식 이동통신기술) 방식 휴대전화사업 강화와 수출확대로 요약된다. 신부사장은 “이미 인도의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시장을 장악한 저력을 바탕으로 마지막 남은 PC와 GSM 시장까지 공략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nhkim@kbizweek.com·shoh@kosb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