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키워드… 판촉전 ‘치열하네’

옛 아라비아인은 식물의 재를 ‘알칼리’(Alkali)라고 했다.알(al)은 물질, 칼리(kali)는 재라는 뜻이었다. 그뒤 재에서 추출된 물질과 비슷한 성질,즉 강한 염기성을 나타내면 모두 알칼리라고 불렀다. 지금은 pH(수소이온농도)가 7이 넘으면‘알칼리성’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라비아와 이역만리 떨어진 한국에 최근‘알칼리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알칼리수 소주, 건강식품, 정수기, 심지어 시큼한 식초도알칼리 덕을 본다. 소비자를 유혹하는 알칼리의 세계로 들어가본다.‘당신은 지금 알칼리인가?’두산주류BG가 지난 2월 선보인 야심작 ‘처음처럼’의 광고문구다. 시원한 옷차림의 광고 속 모델 이영아는 바람에 긴 머릿결을 휘날리고 있다. 신인으로 단숨에 이름을 알린 탤런트 이영아처럼 처음처럼도 그야말로 ‘떴다’. 출시 100일 만에 누적판매량 6,300만병, 5개월 11일 만에 1억병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운 것. ‘산’ 소주 시절 업계 6위였던 두산은 처음처럼의 판매에 힘입어 2위로 급부상했다. 전국 시장점유율 또한 10%를 넘어선 상태다.처음처럼 돌풍의 주요 비결 중 하나는 바로 ‘알칼리’다. 20도 ‘저도주’를 강조하기도 했지만 ‘미네랄이 풍부한 알칼리수 소주’를 전면에 내세웠다. 두산주류BG의 김일영 상무는 “‘좋은 물’은 원수가 깨끗하고, 알칼리성이며, 물 입자가 작고, 천연미네랄과 활성수소가 풍부하다는 5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며 알칼리수 소주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두산이 알칼리수 소주로 소비자를 사로잡자 진로도 전열을 가다듬었다. 진로는 두산의 상승세를 저지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 지난 8월 19.8도의 ‘참이슬 후레쉬(fresh)’를 내놓은 것. 알칼리전쟁에서 신종무기를 빼든 셈이다. 참이슬 후레쉬 역시 알칼리수 소주를 표방한다. 참이슬 후레쉬는 지리산과 남해안의 청정지역에서 자란 3년생 대나무를 섭씨 1,000도에서 구워 만든 숯으로 정제해 빚었다고 강조한다. 알칼리수 소주인 까닭에 미네랄이 풍부하며 깔끔하고 깨끗한 맛을 낸다는 게 진로측의 설명이다.진로는 알칼리수 소주와 함께 새로운 공법 또한 도입했다. 천연 대나무숯 정제공법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BCA 공법’과 ‘매링시스템’을 선보였다. BCA(Bamboo Charcoal Agitation)는 물이 소용돌이치며 도는 와류작용을 이용해 물과 대나무숯의 접촉공간을 증대시키는 공법이다. 대나무숯에 들어 있는 칼륨이온 등 필수미네랄을 보다 효율적으로 추출한다는 원리다. 또 매링(Marrying)은 대나무숯 정제과정을 거쳐 제조한 소주의 성분에 미세한 운동작용을 지속적으로 가하는 시스템이다. 각각의 성분을 안정화, 균질화시켜 첫맛부터 끝맛까지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만들었다.알칼리수를 둘러싼 두산과 진로의 광고경쟁도 유례없이 치열하다. 진로의 참이슬 후레쉬가 나오자 처음처럼의 두산측은 광고에서부터 전면 대응했다. 광고에 ‘따라오려면 제대로 따라오라’고 큰 활자로 새겨 넣었다. 또 ‘알칼리 소주를 흉내내려면 죽탄을 이용한 특허가 아니라 알칼리 환원공법 특허를 따라하셨어야 합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두산은 이어 ‘알칼리수가 아니라 알칼리 환원수인 점이 중요하다’면서 ‘처음처럼의 부드러움은 저알코올이 아닌 알칼리 환원수의 작은 물 입자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두산이 대응전에 나선 이유는 진로가 참이슬 후레쉬를 출시하면서 두산 처음처럼에 선전포고해서다. 처음처럼의 알칼리수 제조방식인 ‘전기분해’보다 ‘천연 대나무숯으로 정제’해 만든 진로 알칼리수가 한결 낫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진로측은 여기서 한층 더 나아가 “대부분의 소주 제품은 정도의 차이지 근본적으로 태생이 알칼리(엄밀히 약알칼리)”라며 “처음처럼만 알칼리 소주인 양 소비자를 기만하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산성화된 현대인에게 ‘필수’말도 많고 탈도 많은 알칼리 소주 논란은 어디서 촉발됐을까. 두말할 필요없이 드높은 알칼리의 인기가 논란까지 몰고 왔다. 현대인이 지나치게 고기를 많이 먹으면서 체질이 산성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알칼리 성분 또는 알칼리수를 먹고 마셔야 음이온과 양이온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고 믿는 소비자가 적잖다. pH는 1~14의 수치로 나타낸다. pH가 7보다 작으면 산성, 7이 넘으면 알칼리성이다. 육류 가운데 삼겹살의 pH는 평균 6.3, 한우는 5.9로 모두 산성이다.사실 두산이 알칼리 환원수를 사용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한기선 두산주류BG 사장의 개인 경험이 밑바탕됐다. 대장암으로 투병생활해 온 한사장은 우연히 알게 된 알칼리 환원수를 마시고 큰 효과를 봤다. 그뒤 ‘소주 성분 중 80%의 비율을 차지하는 물을 알칼리 환원수로 사용하면 어떨까’라는 발상에서 처음처럼의 개발이 시작됐다.알칼리수가 인체에 이롭다는 통념은 세계 유수 연구기관의 발표에 근거를 두고 있다. 지난 97년 일본 규슈대 대학원 연구그룹이 논문을 발표하면서 알칼리의 효능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람이 마시는 산소의 2%는 활성산소로 전환된다. 이 활성산소는 조직, 세포, 세균을 파괴해 노화를 촉진시키고 질병을 유발한다는 설명이다.반면 활성수소(H)는 활성산소(O)와 결합해 물(H2O)로 바뀌어 체외로 배출된다. 즉 활성수소가 인체에 해로운 활성산소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알칼리 환원수는 일반 수돗물에 비해 활성수소를 500배 더 함유하고 있다니, 소비자가 귀를 쫑긋 세우지 않을 수 없다.지난 2004년에는 연세대 의대 김현원 교수팀이 미네랄의 조합을 이용, 알칼리 환원수를 만들어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그 결과 항암, 암 전이 억제, 항산화, 면역기능 강화 효과가 확인돼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밖에도 알칼리에 함유된 칼륨, 마그네슘, 칼슘, 나트륨 등 미네랄은 몸의 생리활성을 촉진시킨다.소주 외에 건강기능식품 시장에도 알칼리 바람이 거세다. 대표주자는 ‘클로렐라’다. 알칼리 성분의 웰빙 상품으로 떠오른 클로렐라는 담수 녹조류로 단백질, 아미노산, 식이섬유, 비타민, 무기질 등이 함유돼 있는 알칼리성 식품이다. 클로렐라를 국내에 본격 선보인 기업은 대상이다. 대상의 임대홍 창업주는 클로렐라를 먹고 당뇨 치료에 효과를 봤다. 그뒤 클로렐라의 가능성에 확신을 갖고 연구해 보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후문이다. 대상은 ‘클로렐라’라는 용어도 생소하던 91년 클로렐라 배양법 연구에 착수한 뒤 96년 배양에 성공, 특허신청을 했다. 이후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수출을 3년간 했고 99년에는 국내시장에 제품을 출시했다. 매출도 급상승해 2002년 150억원에서 2003년 390억원, 2004년 670억원, 2005년에는 800억원을 기록했다. 대상은 클로렐라의 올해 매출목표를 1,000억원 이상으로 잡고 있다. 지난 4월부터는 미국을 비롯해 멕시코, 중남미, 유럽 등 세계시장으로 유통채널 확대에 나섰다.클로렐라의 전체 시장규모도 커지고 있다. 99년에는 20억원 정도에 불과했으나 2000년 70억원, 2002년 24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어 2004년 1,000억원을 돌파한 뒤 2005년에는 1,200억원의 시장을 형성했다. 클로렐라를 판매하는 업체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현재 60여개 업체에서 100여종을 팔고 있다.또 다른 건강기능식품 스피루리나도 알칼리성 식품이다. 남조류에 속하는 미생물 스피루리나는 신체 알칼리도를 높여 체질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점을 내세운다. 최근 스피루리나 시장에도 대기업이 뛰어들었다. 지난해부터 효성무역PG가 일본 건강기능식품 전문기업 우메켄과 손잡고 스피루리나 제품을 판매 중이다. 효성측은 “스피루리나는 육류를 비롯한 탄수화물의 지나친 섭취와 스트레스로 산성화된 현대인에게 도움이 되는 제품”이라고 알리고 있다.신맛 식초도 알칼리 마케팅 나서톡 쏘는 신맛의 식초도 알칼리 수혜를 입고 있다. 얼핏 생각하기에 산성으로 여겨지는 식초도 몸에 들어가면 알칼리성이 된다는 것이다. ‘알칼리성 식초’ 열풍을 일으킨 사람은 박승복 샘표식품 회장이다. 현재 84세인 박회장은 지난해 10월 한 세미나에서 “건강을 지켜온 비결은 바로 하루 세 차례 식초 마시기”라고 밝혔다. 박회장은 “식후에 식초를 물에 타서 마신다”면서 “식초는 ‘산’ 성분이지만 몸에 들어오면 알칼리로 변해 위의 활동을 도와주고 고혈압, 치매, 통풍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박회장의 식초 예찬론은 시장에 바로 반영됐다. 샘표식품의 식초 매출은 3배 가량 뛰어올랐다.샘표식품은 아예 지난 2월 ‘마시는 벌꿀 흑초’라는 신제품을 내놓았다. 마시는 벌꿀 흑초와 물 또는 다른 음료를 1대1에서 1대3의 비율로 섞어 마시는 원리다. 신맛으로 식초 마시기에 부담을 갖는 소비자를 위해 흑초에 벌꿀을 첨가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물론 ‘아미노산, 구연산, 미네랄성분의 알칼리성 식품’이라는 설명을 빼놓지 않았다.‘마시는 벌꿀 흑초’는 출시 3개월 만에 26만병 이상 팔려나가며 그 위력을 과시했다. 식초 트렌드의 주역 박회장은 최근에도 끊임없이 식초 건강법 강연회를 연다. 2006 하이서울 페스티벌, 2006 국제우수안전식품전 등 각종 행사에 직접 참가해 식초 건강법 전도사로 나섰다. 샘표식품의 한 관계자는 “25년간 식초를 마셔온 박승복 회장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관련 제품을 계속해서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샘표식품 외에도 롯데햄우유가 올 초 ‘현미흑초’를 내놓았다. 롯데칠성음료 역시 지난 5월 식초음료인 ‘사랑초’를 선보였다. 식초제품이 쏟아져 나오면서 시장규모는 2배 이상 급팽창했다. 체내로 들어가면 알칼리성으로 변화한다는 특성 외에도 다이어트, 피부미용, 숙취해소, 피로회복에 좋다고 알려지기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마시는 식초 시장이 2004년 60억원에서 2005년 160억원으로 2배 이상 성장했다고 본다. 올해도 지난해 대비 50% 이상 시장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예측한다.정수기업계도 알칼리로 뜨겁다. 알칼리수로 정수해 준다고 마케팅하는 정수기업체가 한둘이 아니다. 웅진코웨이는 지난 8월 ‘웰빙수기’를 선보였다. 일반 정수와 냉이온수가 나오는 출구를 분리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웅진코웨이 상품기획팀의 정윤종 팀장은 “웰빙수기는 정수기와 냉이온수기의 장점을 결합한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온수기’는 필터로 물의 불순물을 제거한 뒤 다시 전기분해를 통해 알칼리 이온수를 생성하는 기기다. 웅진코웨이는 웰빙수기에 사용자의 기호에 따라 pH를 2단계(약알칼리, 강알칼리)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 또한 입혔다.교원L&C의 ‘웰스 정수기’ 또한 ‘웰스필터’를 개발, 미네랄을 물에 첨가해 약알칼리수로 바꾼다. 2003년 정수기 시장에 뛰어든 교원L&C는 약알칼리수 정수기가 소비자의 호응을 얻으며 시장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연초 대비 현재 월매출액이 4.5배 성장했다.공기청정기업체로 잘 알려진 청풍 역시 먹는물시장에 뛰어들었다. ‘청정무구 알칼리 이온수기’ 역시 pH 7.5~8.5 수준의 약알칼리성 이온수를 만드는 제품이다.물론 이 같은 알칼리 비즈니스에도 반대의견은 있다. 식품을 산성과 알칼리성으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고 일각에서는 반격한다. 산성과 알칼리성으로 구분해도 신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주장이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상품, 히트상품은 소비자의 니즈(욕구)에서 나온다는 진리다. 소비자가 먼저 알칼리 성분을 찾았고, 기업은 이 시장을 다변화했다. 새로운 시장의 개척자, 시장을 이끄는 선두주자는 소비자부터 예의주시한다.이효정 기자 jenny@kbiz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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