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뛰고 정부 밀고…‘한국 잡아라’

‘한국을 잡아라.’한국기업에 벌써 몇 년 동안이나 1ㆍ2위 자리를 내주고 있는 해외 LCD업계가 칼을 벼리고 있다. 차세대 황금시장이 될 것이 틀림없는 LCD시장의 주도권을 뺏겠다는 각오로 일전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현재 LCD 패널을 생산하는 국가는 한국, 일본, 대만, 중국 등 4개국뿐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기업들은 LCD산업에 반드시 필요한 대규모 초기투자 리스크 탓에 진입을 하지 않은 상태다. 이에 따라 세계 LCD시장은 ‘아시아 4개국만의 리그’라는 경쟁구도를 갖고 있다.향후 경쟁의 키워드는 ‘클러스터’가 될 가능성이 크다. 4개국 모두 클러스터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기업들의 이합집산도 관심거리다. 한국의 기업에 규모 면에서 열세에 있는 대만과 일본의 기업들은 인수합병, 합작투자 등을 통해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 각국 정부도 LCD산업을 국가 주력산업으로 선정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하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대만 - 클러스터로 1위 등극 야심대만은 시장점유율 면에서 한국을 코밑까지 추격한 유일한 국가다. 지난해 3분기까지 시장점유율이 43%로 한국에 불과 1.6%포인트 뒤진 상태다.현재 세계 LCD시장은 한국, 대만, 일본의 3파전 양상이다. 대만은 2000년 이후 대규모 투자를 통해 모니터용 시장에 진입, 한국과 일본이 주름잡던 시장이 3파전으로 재편됐다. 특히 AUO, CMO 등 대만의 간판기업들은 시장점유율 면에서 3위 이하의 상위권을 휩쓸며 일본기업들을 따돌린 상태다.대만의 목표는 세계 1위다. 대만 정부는 올해 LCD산업의 규모를 1조3,700억대만달러(약 405억달러)로 성장시켜 세계 1위에 오르겠다며 대규모 LCD 클러스터 조성과 각종 세제혜택 등 다각적인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패널업체가 2개뿐인 한국에 비해 7개의 패널업체를 보유하는 등 관련업체가 많다는 이점을 활용해 세계 LCD시장을 석권하겠다는 계산이다. 기업이 많은 만큼 외국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유리하다.우선 북부, 중부, 남부 등 3개 지역에 대형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기업들의 입주를 유도하고 있다. 한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수입하는 부품과 원재료에 대해선 무관세 혜택을, 일본 등 선진국에서 들여올 경우엔 2.5%의 낮은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또 국산화되지 않은 장비를 들여올 때도 수입관세를 면제해주고 있다.기업들의 투자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 3위 기업인 AUO는 최근 신죽과학단지에 18만평 규모의 6세대 라인을 구축한 데 이어 올해 말에는 7세대 라인을 가동할 예정이다. 또 대만 2위업체인 CMO는 2007년 안에 7세대 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주목할 사실은 이들이 모두 LG필립스LCD의 7세대 라인과 동일한 규격의 제품을 생산할 계획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들 공장이 가동되면 LPL과 치열한 가격경쟁을 벌일 공산이 크다.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형 업체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것으로 전망된다.일본 -‘LCD 종주국’ 복귀 시동일본은 LCD산업의 종가다. 세계 최초로 LCD를 상용화시켰고 초기시장을 한동안 주물렀다. 하지만 90년대 후반부터 한국에 시장을 빼앗기면서 현재는 상당히 위축된 상태다. 지난해 3분기까지 시장점유율이 9.5%에 불과해 한국과 대만에 크게 뒤져 있다. 그나마 60%의 점유율을 유지하며 큰기침을 하던 소형시장에서도 대만과 한국의 파상공세에 조금씩 자리를 내주고 있어 입지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하지만 샤프를 비롯한 일본의 기업들은 공격적인 투자를 발표하며 한국, 대만과 일전을 벼르고 있어 주목된다. 우선 세계 최대의 LCD-TV 제조업체인 샤프는 지난해 가메야마 공장에 TV전용 6세대 라인을 운용하기 시작한 데 이어 올해 안에 8세대 라인을 가동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대형 LCD-TV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대형 LCD 패널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올해 1만5,000대를 생산할 계획이고 2기 라인이 가동되는 2007년에는 월 3만대 정도를 생산할 예정이다.샤프의 8세대 라인은 규모가 비교적 작은데다 자사의 TV 제작용으로만 사용할 것으로 보여 전체 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삼성전자나 LPL의 7세대 주력 제품의 규격과 다른 45인치와 52인치 제품을 생산할 것으로 알려져 한ㆍ일 3사의 치열한 표준경쟁이 전개될 것으로 점쳐진다.기업들간의 합종연횡도 관심을 끈다. 대표적인 사례가 히타치, 마쓰시타, 도시바 등 3개사가 공동출자한 LCD 패널 제조업체인 IPS알파테크놀로지다. 3사가 약 1,000억엔을 투자한 이 회사는 오는 3분기 6세대 라인을 가동할 예정이다. 또 캐논과 도시바는 SED라는 합작회사를 설립, 2007년 본격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2008년 월 15만대를 생산할 예정이고 총투자금액은 1,800억엔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부품업체들도 적극적인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아사히글라스는 지난해 1월부터 가동하기 시작한 7세대 패널용 유리기판 라인에 이어 조만간 8세대용 유리기판 생산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토판인쇄는 500억엔을 투자, 컬러필터 공장을 짓기로 했고 다이닛폰인쇄도 신규공장을 설립하고 생산확대에 나섰다.중국 - 정부 지원 업고 ‘대도약’중국은 세계 최대의 컬러TV 생산국이다. 2004년을 기점으로 평판디스플레이가 브라운관TV 생산량을 앞서가고 있다. 중국 정부는 향후 평판디스플레이가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판단하고 관련산업 지원에 적극 나서고 있다.LCD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은 아직 미약하다. 생산수준이 5세대 이하로 경쟁국에 비해 취약한데다 6세대 투자는 2008~2009년으로 잡혀 있어 염려할 상대는 아니다. 하지만 LCD산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관심과 지원의지, 외국계 기업의 투자유치 경향, 거대한 관련 생산시설 등을 감안하면 무작정 안심할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다.우선 중국 정부의 LCD산업 육성의지가 강하다. 중국 정부는 LCD를 포함한 모든 디스플레이 관련산업의 부품수입에 대한 관세율을 대폭 인하했다. LCD 패널의 경우 5%이던 관세율을 2.5%로 내렸다. 지난해 3월부터는 TFT-LCD산업 발전을 위한 세제 우대정책을 정식 시행하고 있다. 자국에서 생산하지 못하는 생산설비 부품, 부대설비 시스템 등에 대해 관세와 수입 부가가치세를 면제하기로 했다.금융지원에도 적극적이다. 지난해 양산을 시작한 BOE-OT의 공장에 정부가 나서 9개의 국유은행을 동원, 대출을 해준 것이 대표적이다.기업들도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다. 중국 지앙수 내의 군산지역에는 월 3만대 규모의 5세대 라인이 건설될 예정이다. 일본과 중국의 합작으로 이루어질 이 공장은 상하이의 SVA-NEC, 베이징의 BOE-OT에 이은 중국의 3번째 5세대 라인이다.후아비아오홍다, 룽텐, 테엔마, 애로우디스플레이 등도 수십억달러 규모의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대만의 기업과 함께 4.5~6세대 라인을 집중적으로 구축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2009년까지 6개 이상의 대형 LCD라인이 건설될 것으로 전망된다.당분간 중국은 LCD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지만 2010년 이후에는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생산량 면에서 세계 1위에 올라 있는 TV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LCD산업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감행할 것이 틀림없다. 품질 면은 차치하더라도 가격 면에서는 한국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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