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변동폭 확대… 정부 개입 말아야

참석자 =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 양태열 금정공업 사장, 이용석 대우 인터내셔널 금융ㆍ회계담당 외환팀장(이사), 이진우 농협선물 금융공학실장사회 = 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환율은 기업의 수익성과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영업에서 이익을 내놓고도 환율 탓에 오히려 적자를 볼 수도 있다. 환율이 기업경영의 키워드로 등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환율변동의 방향과 그에 따른 리스크 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하지만 지난해 환율의 흐름은 전문가들의 전망과 상당부분 어긋났다. 당초 민간연구소를 비롯한 예측기관들은 원/달러 환율을 950원 안팎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실제 환율은 상반기 한때 세 자릿수를 기록했을 뿐 1,000원대를 굳건히 지켰다. 그렇다면 올해는 어떨까. 환율과 기업경영의 함수를 전문가들과 풀어봤다.사회: 2005년은 환율 때문에 기업들이 고생을 많이 한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지난해 환율 흐름을 어떻게 봐야겠습니까.이진우 실장: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기업이 과거 어느 해보다 적극적으로 환리스크 헤지에 나섰음에도 효과는 기대에 못미친 해였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특히 2004년 10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지속된 급격한 환율하락은 외환시장 참여자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과도한 시장개입으로 재정손실을 야기한다는 지적이 일자 정부가 시장에서 손을 놓으면서 환율이 더욱 폭락했습니다. 이에 따라 원화가 강세로 돌아섰고 이런 현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원화뿐만 아니라 아시아지역의 통화가 전반적으로 강세를 보인 것도 지난해 환율시장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김상경 원장: 환율이 전망치와 다르게 움직이면서 기업들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변동폭이 그나마 크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엔/달러 환율이 오르고 원/엔 환율은 하락하면서 일본과 경쟁해야 하는 국내기업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사회: 실제로 기업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가 궁금합니다. 또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말씀해 주십시오.이용석 이사: 대우인터내셔널의 경우 거래의 95% 가량이 이종통화 거래입니다. 연초 전망기관들이 원화 강세를 점쳤지만 내부적으로는 평균환율을 1,000원으로 잡고 사업계획을 세웠습니다. 매출이 20% 정도 감소할 것으로 보고 수출시장을 확대해 매출을 늘리는 방안과 환율변동의 영향을 받지 않는 해외투자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환율과 관련해선 일단 환거래로 이익을 보지 않겠다는 방침이었습니다. 그보다는 100% 헤지를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매도 포지션 같은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죠. 환으로 돈 벌면 칭찬보다는 오히려 욕을 먹는 분위기가 정착된 상태죠.양태열 사장: 대기업에 비해 중소기업은 환율 변동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상태입니다. 극소수의 기업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대응방법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위안화의 강세로 수출형 기업은 더 많은 이익을 실현했겠지만 수입형 기업은 손실이 컸을 겁니다. 또 한국의 10대 주력산업에 속한 대기업의 경우 세계의 관련시장을 주도하는 만큼 원/엔 환율의 변동에 따른 영향을 그다지 많이 받지 않았겠지만 중소기업의 사정은 딴판이었습니다. 매우 민감하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환율 문제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셈입니다. 금정공업의 경우 선물환 변동보험에 가입해 환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환차익을 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사회: 지난해보다 올해 환율 변동폭이 더 클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 외환시장의 변화를 주도할 주요 변수들은 무엇입니까.김원장: 올해 환율시장은 제도적으로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외환자유화 조치에 따라 외국인들이 원화의 차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환율의 변동폭이 과거보다 훨씬 커질 수 있습니다. 일례로 아시아지역의 외환위기를 불러일으킨 태국의 바트화 폭락은 외국인투자가들이 대량의 바트화를 달러로 바꾸면서 생긴 일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방지할 수 있을 정도의 인프라와 펀더멘털은 갖춰져 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통화별로는 달러화와 위안화에 특히 주목해야 합니다. 달러화는 한국경제 구조상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고 중국과의 거래는 더욱 많아지니까요. 올해 원화는 위안화와 동반 강세를 보일 것입니다.이실장: 지난해 하반기 환율변동이 그나마 크지 않은 이유는 시장의 특성 때문입니다. 외환시장은 한 번 크게 요동을 치면 한동안 조정국면에 들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 환율 안정도 그런 측면에서 풀어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의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안정국면이 끝나고 다시 한 번 환율이 요동칠 때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10~30원이 아니라 단기간에 50~100원까지 움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달러화가 한순간에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은 단기적으로 세 자릿수에 들어설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여전히 네 자릿수를 유지할 것입니다.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런 전망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환율변동에 단기적으로 대응하기보다 기업은 본업에 충실해야 합니다. 환차익을 남길 생각은 접고 100% 헤지를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 기업들이 많아질수록 환율은 안정될 것입니다. 수출기업이든 수입기업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환리스크 헤지라는 측면에서 환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사실 지난해 원/달러 환율은 별다른 이유 없이 하락했습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는 상당부분 개선됐고 금리도 올리지 않았습니까. 시장의 변화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기업들은 환율이 오를 것이라든가 내릴 것이라는 방향을 판단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적정한 이윤을 남겼다면 그때그때 헤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한국경제의 전체적인 체력도 향상될 것입니다. 환율변동에 따라 적정 이윤 이상을 남기려는 것은 이미 투기의 영역입니다.김원장: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올해 환율은 세 자릿수에서 안정될 것입니다. 위안화와 함께 원화도 강세를 보일 것이기 때문입니다.사회: 자연스럽게 올해 환율 전망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기업들은 어떻게 전망하는지 궁금합니다.이이사: 대우인터내셔널의 경우 이미 환율 예측과 그에 따른 사업계획을 마무리한 상태입니다. 지난해보다 환율 변동이 커지고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상의 영향을 받음에 따라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른 대응도 세웠습니다. 환율 예측치는 정확한 수치를 알려드릴 수는 없고 다소 보수적으로 잡았다는 것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950~1,000원대의, 보수적인 예측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사회: 일본 엔화의 영향에서 국내기업이 많이 벗어났다지만 일본의 자금을 빌려야 하는 기업의 경우 엔화의 변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국내 금리가 오르면 금리가 저렴한 일본 자금의 필요성이 더욱 커질 텐데 올해 원/엔 환율 전망을 부탁드립니다.이실장: 800원대인 현재의 원/엔 환율은 말하자면 족보가 있는 수치입니다. 안정적으로 보이던 1,000원대가 무너진 데 이어 지난해 말 900원대마저 뚫렸습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원/엔 환율은 하락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다만 어디까지 내려갈 것인지가 관건이겠죠.문제는 일본의 자금을 빌릴 때인데 타이밍과 만기라는 2가지 요소를 반드시 염두에 두고 대출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대출 상환 만기를 1~2년 정도로 짧게 잡으면 환율 차이가 금리 차이를 초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단기적으로 엔화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반대로 장기대출이라면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김원장: 통화간 환율 변동의 속도 차이도 고려해야 할 겁니다. 지난해 상승세였던 엔/달러 환율은 올해 하락세로 반전될 수 있습니다. 미국이 금리인상을 멈췄고 일본이 제로금리 정책을 사실상 포기하면 양국간 금리 격차가 줄어들어 일본의 자금이탈이 둔화될 것이고 이에 따라 엔화가 강세를 보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엔화의 하락 속도에 따라 원/엔 환율은 상승하거나 최소한 진정국면에 들어갈 겁니다. 이 경우 일본의 자금을 쓰고 있는 기업의 부담이 높아지겠죠.사회: 중국 위안화 문제로 화제를 넘기겠습니다. 위안화의 변화와 그에 따른 국내기업의 영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김원장: 위안화 절상 추세는 이어지겠지만 급격하게 높아지지는 않을 겁니다. 이는 중국 정부의 외환관리 시스템을 살펴보면 분명해집니다. 중국은 과거 우리나라처럼 환율변동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복합 바스켓’ 제도(달러화 외에 여러 종류의 통화에 기반해 기준환율을 산정하는 방식)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이 제도를 끝까지 고수할 수는 없겠지만 폐지하더라도 천천히 할 것이 분명합니다.이이사: 위안화의 변동이 국내기업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줄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위안화가 절상된다고 국내기업에 꼭 해로운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중국에 자산을 갖고 있는 기업이 많기 때문에 위안화 절상은 오히려 자산가치가 높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물론 중국 현지에서 자금을 빌린 경우 자산부채가 발생하는 측면도 있지만 말입니다.위안화가 오르면 수출이 타격을 입기 때문에 기업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란 전망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오로지 수출만 하는 기업은 없습니다. 특히 상사는 수출도 하지만 수입도 많이 합니다. 수입 측면에서 보면 위안화 절상은 호재죠. 또 직접거래가 아니라 3국 거래 등 위안화 절상의 위협을 피할 방법은 다양합니다.양사장: 중소기업은 사정이 많이 다릅니다. 대기업의 경우 현지에 투자한 자산도 많고 위안화 절상에 따라 중국 현지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대출 확대를 노릴 수 있죠. 하지만 중소기업은 현지에 자산도 없고 매출 확대를 기대하기도 힘듭니다.사회: 꼭 부정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환리스크는 되도록 피하는 것이 상책일 텐데요. 어떤 방법이 있겠습니까.김원장: 대기업은 걱정할 것도 없어요. 전문인력도 있고 환리스크를 다룰 툴도 갖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중소기업이죠. 가장 좋은 방법은 보유 외환을 연말이 아니라 그때그때 헤지해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거죠.양사장: 사실 환리스크에 중소기업은 무방비 상태입니다. 웬만큼 덩치를 키우지 않고는 CEO가 여러 역할을 해야 하는데 환율까지 챙길 여력이 없습니다. 별도로 조직을 만들기도 부담이고요. 그때그때 환리스크를 헤지하고 싶어도 금액이 적어서 여의치 않습니다. 환리스크를 그때그때 헤지하길 원하는 중소기업들을 모아 일괄적으로 헤지할 수 있는 제도가 있으면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김원장: 좋은 아이디어네요. 같은 맥락이지만 대기업의 사내선물환 제도에 중소기업을 포함시켜 일종의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환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만합니다.이실장: 대기업에 권할 수는 없지만 중소기업이라면 단기선물거래를 통해 환리스크 헤지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사회: 양태열 사장의 말씀은 결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 같습니다. 환리스크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도입돼야 할까요.김원장: 중요한 것은 기업 내에 얼마나 전문적인 인력이 있고 이들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환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느냐 여부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 좋은 소식이 하나 있습니다. 노동부가 올해 2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종업원 300인 이하의 중소기업에 무료로 환관리 교육을 지원한다고 합니다.이실장: 외환시장은 이미 정부가 개입해서 효과를 거둘 수 없는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실제로 과거에도 이렇다 할 성공사례는 없지만 말입니다. 정부는 과거처럼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해 시장을 왜곡하기보다 반대로 자본시장을 완전히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국인도 국내 자금으로 마음대로 해외의 자본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면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외환보유고가 갈수록 커지는 것만 자랑할 때가 아닙니다.이이사: 동감합니다. 환율은 정부가 개입하든 안하든 어차피 변하기 마련입니다. 정부가 나서 환율의 방향을 정하거나 환율변동의 흐름을 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다만 환율이 급격히 변동하는 것은 막을 필요가 있겠죠.양사장: 중소기업을 위한 정책이 절실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여러 중소기업을 모아 단체로 환 헤지를 하거나 전문적인 컨설팅을 해줬으면 합니다. 또 중국시장의 비중이 큰 중소기업을 위해 위안화에 대한 환 변동 보험제도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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