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ㆍ기업생산성 ‘직격탄’ 맞는다

고령화 맞물려 문제 더 심각 … 세대간 갈등 ‘발등의 불’ 될 조짐

‘인구감소에 따른 문제는 매우 심각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너무 부족하다.’와 한국인구학회가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한국인구학회 소속 인구전문가 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구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사회적인 위기의식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 50인 가운데 44%에 해당하는 22명이 ‘별로 심각하다고 인식하지 않고 있다’고 답한 반면, ‘심각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응답한 전문가는 28%인 14명에 그쳤다. 그다지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석되는 ‘그저 그렇다’고 대답한 전문가도 28%인 14명이나 됐다. 결과적으로 72%에 해당하는 전문가들은 인구감소 문제가 사회적으로 심각하게 고민되지 않고 있다는 우려를 표한 셈이다.이에 대해 한국인구학회장을 맡고 있는 동아대 최순 교수는 “일반인들이 인구성장의 프로세스에 대해 잘 모르는데다 본격적인 인구감소가 2020년 무렵이나 시작될 전망이어서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라며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통해 크게 이슈화해 사회적 인식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인구감소 문제는 향후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만한 ‘빅 이슈’임에 틀림없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인구가 줄면서 번영을 누린 예는 한 번도 없다는 것.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의 60%에 해당하는 30명의 전문가도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반면 개인적으로 심각하게 느낀 적이 없다고 응답한 전문가가 38%인 19명이나 돼 주목된다. 인구감소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하다는 응답이 72%에 달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인구감소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변한 전문가가 의외로 많은 것은 이 문제가 우려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한국의 인구밀도는 너무 높으며 실업문제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인구가 어느 정도 줄어드는 편이 유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이번 조사에서도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이런 견해에 뜻을 같이하고 있었다. ‘어느 정도의 인구감소는 국가경제나 개인생활에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답변한 전문가가 30%에 이르렀다. 하지만 과반수(52%)의 전문가는 ‘그렇지 않다’고 응답, 인구감소의 잠재적 파괴력을 우려하고 있었다. 박상태 서강대 교수는 “단기적으로 인구감소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도 있지만 장기적으로 인구감소는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며 “너무 많이 늘어나는 것은 경계해야겠지만 적절한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인구감소는 언제 시작될까. 15년 후인 2020년께나 돼야 시작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68%). 46%에 해당하는 23명이 2020년에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할 것으로 예상했고 2020년이 지나야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한 전문가도 22%에 이르렀다. 8%가 2025년, 4%가 2028년, 8%는 2030년, 2%는 2040년을 인구감소 시작 시점으로 내다본 것. 반면 2020년 이전이라고 답한 전문가는 14%에 그쳐 무응답인 18%에도 미치지 못했다.그렇다면 한국의 적정인구는 몇 명일까. 통계청의 장점추산 인구인 4,800만명을 기준으로 현재보다 많아야 한다는 견해가 16%, 오히려 줄어야 한다는 의견이 26%, 현 수준이 4%로 나타났다. 그 가운데 지금보다 800만명 이상 줄어든 4,000만명이라고 답한 전문가가 14%로 가장 많았고, 현 수준인 5,000만명이 10%로 그 뒤를 이었다.하지만 이 질문에 과반수의 전문가는 적정인구를 제시하지 않아 주목된다. 30%가 응답을 하지 않았고 ‘적정인구란 없다’고 답한 전문가도 24%나 됐다. 이와 관련, 박교수는 “모든 조건이 동일할 때 알맞은 인구규모를 뜻하는 적정인구는 이론적인 개념일 뿐”이라며 “경제, 식량, 안보 등 인간을 둘러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적정 인구는 변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적정 인구는 상황에 따라 2,000만명이 될 수도 있고 1억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과도한 육아비용이 저출산 원인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한 세미나에서 “저출산 문제를 놓아두면 나라가 망한다”고 강하게 경고할 정도로 저출산 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최근 정부가 대통령 직속으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하고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고 밝히는 등 저출산 문제에 대한 대응을 본격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했다.응답자의 68%가 정부의 대응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 가운데 54%는 정부의 대응책이 미비하다고 답했고 적절한 대응을 할 수 있는 시기를 이미 놓쳤다는 응답도 12%나 됐다. 이에 비해 적절히 대응하고 있다는 견해는 불과 12%에 그쳐 보다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책이 필요함을 시사했다.문제해결의 첫 단추는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는 것이다. 저출산에 대한 정부의 대응책 역시 정확한 문제진단에서 시작해야 함은 물론이다. 전문가들은 ‘육아 및 교육 관련 비용의 상승’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52%). 아이를 키우기 힘들어 낳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 기피 현상도 중요한 이유로 지적됐다(20%). 결혼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늦게 하는 풍조가 저출산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다.여성의 사회진출 증가가 저출산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었다(6%). 직장여성이 늘어나면서 출산과 육아에 전념할 수 있는 여성이 줄었다는 것이다. 6%의 전문가들은 기업이나 정부의 출산장려제도의 부족에서 원인을 찾고 있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고, 이에 따라 출산율이 하락하고 있지만 저출산을 예방할 수 있는 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출산으로 인해 가장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분야는 어디일까. 전문가들은 사회복지 분야가 저출산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응답했다(34%). 출산장려를 위한 비용이 증가할 것이 분명한데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령화와 저출산 현상이 함께 진행되면서 복지비용에 대한 부담이 갈수록 커질 것이란 전망이다.기업의 생산성 하락도 우려됐다(22%). 출산율 하락은 노동인구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출산이 고령화 현상과 맞물려 발생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젊은층의 인구감소가 전체적인 인구감소를 주도하기 때문에 생산성 하락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가 높다. 최교수는 “나이가 젊을수록 새로운 기술과 혁신을 잘 받아들인다”며 “선진국의 기술을 수입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는 기술변화가 빠르기 때문에 선진문물 수용에 거부감이 없는 젊은층의 감소는 곧바로 생산성 하락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국가재정도 고민거리로 지적됐다(16%). 세금을 낼 수 있는 인구가 줄면서 세수가 감소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노후생활도 불편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16%). 고령화로 인해 비고령인구 한 명이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는 더욱 증가하면서 고령인구 한 명에 돌아갈 복지비용이 줄어들 수도 있는 것이다.그렇다면 실제로 저출산은 어떤 사회에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까. 특히 부정적 영향은 어떤 것일지 물어봤다. 가장 크게 우려되는 현상은 노후보장을 둘러싼 세대간 갈등(42%)이었다. 점점 많아지는 고령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젊은 세대와 더욱 풍족한 노후를 요구하는 고령인구의 이해가 엇갈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는 저출산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분야가 사회복지라고 지적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시장과 산업구조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응답도 상당수를 차지했다(28%).사회복지 확충이 일등 해법저출산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사회변화를 방지하기 위한 묘안은 없을까.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방법은 아이를 더 많이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출산율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무엇보다 육아와 관련한 사회복지제도를 확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응답했다(42%).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이 육아와 교육비용 상승에 있는 만큼 이를 해결하는 것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출산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전환에서 해법을 찾는 전문가도 적잖았다(16%).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자녀를 부양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안정된 일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노동시장의 경향은 이와 거리가 있다.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아지는 등 고용의 안정성이 떨어지고 있는데다 청년실업 문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16%의 전문가들은 고용의 안정과 일자리 확충을 저출산 문제의 첩경으로 제안했다.저출산은 노동인구 부족 문제를 필연적으로 동반하고 이는 산업과 경제의 성장 잠재력 약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물어봤다. 60%의 전문가들은 여성인력 활용을 처방전으로 내놓았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저출산을 야기하는 원인이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여성인력 활용이라는 것이다.노동의 질 향상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응답도 많았다. 18%의 응답자가 숙련된 인재양성이 노동력 부족 해소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답했다. 여러 명이 하던 일을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면 어느 정도 문제가 해결될 것이란 논리다. 외국인 노동자의 활용도 해법으로 제시됐다(14%).저출산과 인구감소는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피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결국 당면한 과제는 이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정부, 기업, 개인이 준비해야 할 사항을 물어봤다. 우선 정부는 복지를 비롯한 사회 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52%)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교육혁신도 긴급한 과제로 꼽혔다(32%). 과도한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자녀들의 교육비에 대한 부담을 감소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균형발전(6%), 국방개혁(2%), 연금개혁(2%) 등도 시급하다고 지적됐다.기업은 우수인재 양성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42%)고 조사됐다. 노동력 부족 해소를 위해서라도 유능한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 글로벌 시장 개척에도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28%). 인구감소에 따라 내수시장의 규모가 작아질 것이므로 해외시장에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생산성 향상도 중요 과제로 꼽혔다(20%).개인들은 어학 등 자기계발에 힘써야 한다고 28%의 응답자가 주문했다. 인구감소에 따라 경제가 위축될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라 일자리가 줄어 경쟁이 치열해 질 것이므로 자신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기술습득(14%), 경제적인 부(12%)도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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