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안정성·사회 육아지원 ‘필수’

한국은 OECD 화원국 중에서는 물론이고 전세계를 통틀어 출산율이 가장 낮은 10개국 중 하나다. 2004년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은 1.16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이 수치는 한 사회가 인구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평균 출생아수를 나타내는 인구대체출산율 2.1명에 크게 못미치는 수준일 뿐만 아니라 OECD 회원국의 평균인 1.6명보다도 훨씬 낮은 수준이다. 저출산이 지속되면 장기적으로는 노동공급이 감소해 성장잠재력이 약화된다. 또한 연금적자 확대로 국가재정이 악화되고, 젊은 세대의 부담이 가중되는 등 사회 전체에 부작용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출산율 제고는 정책 효과가 발생하기까지 장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시급하게 추진해야 한다. 따라서 정확한 원인진단에 근거해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저출산의 원인은 미래소득 불안정성 증가 등 소득 요인, 자녀의 편익과 비용 등 자녀 요인, 라이프스타일의 변화에 따른 가치관 요인, 그리고 여성의 경제적 역할 증대, 양성 불평등, 육아와 직장의 양립 어려움 등 사회ㆍ직장 요인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저출산의 원인으로 대두된 만큼 종합적인 정책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출산의 원인을 개선하기 위해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정책의 여지가 크지 않은 실정이다.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 구조변화로 초래된 미래소득 불안정성 증가 등 소득 요인은 노동시장을 포함한 경제 전체의 문제이기 때문에 출산율 제고만을 목표로 경제정책을 운용할 수는 없다. 또한 만혼과 독신 증가, 개인만족 중시 등 가치관 요인을 바꿀 수 있는 정책 수단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출산율 제고 정책은 자녀 요인과 사회ㆍ직장 요인에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우선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등 출산율 제고에 성공한 나라의 정책분석을 통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알아보자. 노르웨이는 출산, 육아, 가사, 노동인구 창출 등의 부담을 국민과 국가가 함께 공유하면서 해결해 나가고 있다.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국가와 국민이 함께 조성하고 있는데, 1990년대부터 공적 비용의 60% 이상을 보육비에 투자하고, 출산휴가를 최대 1년까지 보장하며, 출산휴가시 소득 또한 100% 보장해 육아에 대한 부담으로 경제활동을 포기하는 여성이 없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90년 이후 여성의 취업률은 70% 이상이며 주로 복지, 교육, 공공부문, 일반사무직 등에 여성이 취업하고 있다. 사회복지제도의 확대 추진으로 공공부문의 여성 고용자수가 증가했다. 보육의 사회화로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출산율도 증가하게 된 셈이다.덴마크는 여성친화적인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해 출산율이 1.7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자녀양육에서부터 노인복지까지 여성들의 애로사항을 사회가 분담하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이 가정과 직장생활을 양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커리어 관리를 위해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일은 옛이야기가 됐다.프랑스는 전방위적인 국가 차원의 출산장려 정책을 펼쳐 출산율은 2004년 현재 1.91명으로 유럽국가 중 아일랜드에 이어 2위다. 개인주의의 확산과 젊은이들의 결혼율 감소가 인구감소의 주 원인이었다. 프랑스가 출산율 제고에 성공하게 된 것은 편안하게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도록 정부가 각종 지원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결국 출산율 제고에 성공한 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은 여성의 경제활동 지속 여부가 보장이 될 때 출산율도 증가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보육의 사회화로 여성의 경제 참여를 늘리면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로 다시 보육 등 여성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여성의 노동력과 경제력 향상으로 출산율이 증가하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우리나라는 사회ㆍ직장 요인이 상당히 열악한 상황이다. 그러므로 다른 요인, 특히 자녀 요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다고 하더라도 사회ㆍ직장 요인에 대한 대책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출산율 제고는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출산율 장려정책은 단순히 가정복지 지출의 증가를 통해 육아, 보육서비스를 확대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에 대한 불안이 해소될 때만 가능해진다. 육아, 보육 지출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직장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출산율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녀양육 및 교육비용 등 ‘자녀 요인’의 개선에만 치중할 경우 출산율 제고 노력은 한계에 봉착할 우려가 있다. 일본의 경우도 여성의 열악한 경제적 지위 등 ‘사회ㆍ직장 요인’의 개선 미비로 그동안의 출산장려책은 실패하고 말았다. 현재 정부의 출산장려 정책은 영ㆍ유아 보육비 보조 등 지나치게 ‘자녀 요인’ 개선에 치중하고 있으나 자녀양육 및 교육비용 지원 정책은 재정지출 대비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우려된다. 따라서 향후의 정책방향은 자녀비용 지원을 보조적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출산율 제고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육아지원과 여성의 직업안정성이 필수적이다. 노르웨이나 덴마크 사례에서 보듯이 여성의 커리어가 출산으로 영향을 받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출산휴가의 보장과 커리어에의 복귀가 출산율 제고를 위한 필수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육아는 부부 공동의 책임이며 사회의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아버지에게 육아 관련 휴가를 주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방안도 고려해 봐야 한다.우리나라가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사회ㆍ직장 요인’ 개선에 정부 대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전일제(Full-Time) 근로 형태의 획일성에서 탈피하는 것이 시급하다. 여성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던 시대에는 가장 효율적이었던 전일제 근무 형태가 오히려 사회 전체 생산성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시간 근로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여성 취업 확대는 곧바로 출산율 하락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가정과 직장을 병행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이나 근무장소에 대해 유연성을 부여하는 등 근무 형태의 유연화를 근간으로 하는 친가족 근로 형태(Family-Friendly Work Patterns)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 영구적인 유연 근무제는 고용계약상의 문제이므로 개별 사용자에게 일임하기보다는 정부가 앞장서 노력해야 확산될 수 있다. 친가족 근로 형태를 활용하는 기업에 세제 혜택이나 지원금을 제공하고 저출산 시대의 대안으로 홍보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중장기적으로 개인의 경제적 불안을 완화해 ‘소득 요인’을 개선해야 한다. 개인의 경제적 불안이 경감돼야 출산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복원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개인들로 하여금 출산과 같이 장기적 책임이 뒤따르는 결정을 회피하거나 연기하게 만든다. 국가의 양육비 보조 등이 일정한 효과를 낼 수 있겠지만 근원적으로는 개개인이 경제적으로 안정돼야 출산에 대한 부담감이 경감되기 때문이다.또한 직업훈련 및 재교육의 강화와 노동시장 활성화 등을 통해 개인에게 스스로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퇴색했으나 ‘평생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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