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는 ‘끄덕끄덕’, 준비는 ‘절레절레’

위기관리의 첫 단추는 위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한 채 관리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의미에서 위기이해는 위기관리의 기본이자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이번에 실시된 조사에서 300대 기업의 위기이해지수는 2003년에 비해 소폭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3.68점에서 3.55점으로 0.13점 낮아졌다. 이를 100점 만점 기준으로 환산하면 73.6점에서 71.0점으로 2.6점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하락폭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은 아니며 점수 자체만 따져보면 양호한 수준이라고 조사를 진행한 코콤포터노벨리측은 밝혔다.그렇지만 기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을 감안하면 소폭이라도 위기이해지수가 떨어진 것은 다소 의외의 결과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 코콤포터노벨리는 “(위기관리) 실무자의 전문성 강화와 위기위식 고취로 평가기준이 보다 엄격해졌기 때문”이라고 이해지수 하락의 이유를 풀이했다. 위기관리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거보다 담당자들의 위기이해 수준이 위기의 양상을 꼼꼼하게 따져볼 수 있을 정도로 높아졌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라는 설명이다.위기이해지수는 크게 4개의 항목으로 구분, 조사됐다. 위기개념, 위기유형, 위기단계, 위기공중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위기개념(3.76)과 위기공중(3.5)은 2003년에 비해 각 0.04점, 0.07점 상승했지만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반면 위기유형(3.52)과 위기단계(3.49)는 각 0.34점, 0.25점 떨어지며 전체 점수를 끌어내렸다. 이 두 항목의 하락폭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이었다. 위기의 개념이나 공중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 반면, 위기유형이나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적합한 대처방안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의미다. 이는 담당자들의 교육수준이나 전문성이 심화되지 못하고 아직도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위기관리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측정하는 위기개념 항목은 3개의 하위항목을 통해 조사됐다. 전반적으로 300대 기업은 위기관리를 전체 기업경영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관리를 단순히 이미 발생한 사고를 수습하는 것을 넘어 위기를 예방하는 활동을 포함한 광범위한 경영활동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이는 ‘우리 회사의 위기관리는 독립적인 활동이 아니라 조직경영과 함께 이루어지고 있다’는 두 번째 항목(3.96)과 ‘어떤 문제점이 발생했을 때뿐 아니라 평소 회사의 위기를 예방하는 활동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경영활동이다’는 세 번째 항목(3.94)의 점수가 매우 높았다는 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이에 비해 ‘우리 회사는 위기관리를 위해서 회사의 이익보다 대외적으로 호의적인 명성과 신뢰를 얻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는 첫 번째 항목의 평균점수는 3.37점으로 다른 항목에 비해 점수가 크게 낮았다. 이는 아직도 기업들이 위기관리를 장기적인 명성관리 차원이 아니라 단기적 이익 제고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점수 자체만 보면 2003년에 비해 0.11점 높아져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기업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무게를 두는 기업이 이전에 비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위기의 유형에 따른 관리 정도를 묻는 위기관리지수는 2003년에 비해 0.35점이나 하락했다. 해당 기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의 유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위기관리의 제도화와 체계화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위기유형 항목은 4개의 세부 항목으로 구성됐다. 첫 번째 항목은 ‘우리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기가 어떤 것들인지 잘 알고 있다’였다. 위기 유형에 대한 인지도를 묻는 이 항목의 점수는 나머지 3개 항목에 비해 점수가 높았다. 비록 2003년에 비해 0.16점 하락했지만 위기이해지수 전체 점수인 3.55점보다 0.44점이나 높은 3.99점을 받았다.이에 대해 코콤포터노벨리는 “위기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증가하면서 실무자 스스로 위기 유형을 세분화해 규정할 수 있게 됐다”며 “문헌과 이론을 벗어나는 다양하고 복잡한 위기유형에 대한 인식이 제고된 결과”라고 풀이했다.위기유형에 대한 인지도가 높은 반면,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에 대한 수준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와 관련된 3개 항목의 점수 모두 위기유형 평균보다 낮았다. ‘일어나는’ 위기를 구분하기 위한 제도화된 기준이 있냐는 질문의 점수가 3.35점, ‘일어날 수 있는’ 위기를 구분하기 위한 제도화된 기준이 있냐는 항목은 3.37점, 체계화된 기준을 정해서 집중 관리해야 하는 위기와 그렇지 않은 위기를 구분하고 있냐는 물음은 3.35점을 얻는 데 그쳤다.주목할 사실은 이 3개 항목의 점수가 2003년에 비해 매우 크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일어날 수 있는’ 위기를 구분하기 위한 제도화된 기준이 있냐는 항목은 2003년 4.01점에서 3.37점으로 0.64점이나 곤두박질쳤다. 이는 위기유형에 대한 제도화된 기준이 있기는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외부환경과 실무자들의 높아진 인식수준을 만족시키는 데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반영한다. 위기발생의 요인이 복잡해지면서 기존의 위기분류기준에 대해 실무자들이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코콤포터노벨리는 “위기유형에 대한 업무지침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실무자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며 “위기유형을 파악하는 것은 집중 관리할 대상을 선정하고 효과적인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기반이 되므로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위기의 단계별 관리 현황을 묻는 위기단계 항목의 점수도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3.49점으로 위기이해지수를 구성하는 4개 항목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2003년에 비해서도 0.25점 하락했다.위기단계 항목 가운데 하락폭이 가장 큰 하위 항목은 ‘위기의 각 발전단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준비하고 있냐’는 질문이었다. 이 항목은 2003년 3.8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이번에는 0.42점이나 하락한 3.47점을 기록, 다른 항목보다 오히려 점수가 낮아졌다. 이는 위기관리활동에서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만 ‘준비’에 대해선 자신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위기단계별 업무분장(3.48), 관리활동이 부족한 단계의 인지(3.46), 단계별 위기관리활동을 가로막는 어려움 파악(3.55) 등 3개 항목의 점수도 전체 위기이해지수 평균인 3.55보다 낮거나 같은 데 그쳐 효과적 위기관리활동을 위한 조직적ㆍ심층적 대응방안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실제로 위기관리를 담당하는 조직이나 직원은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63.6%가 5명 이하의 전담직원을 두고 있었고 25.4%는 전담직원이 1명 이하라고 답했다. 아예 없다고 답한 기업도 14.5%나 됐다.기관, 다른 기업, 언론, 소비자 등 위기의 이해당사자들에 대한 이해도와 관리 정도를 측정하는 위기공중 항목의 점수는 2003년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2003년 3.43점에서 3.5점으로 0.07점 오른 것. 이는 사람과의 갈등이 위기의 큰 요소이며 기업과 관련한 공중관리의 중요성이 전에 비해 갈수록 부각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조사 대상인 300대 기업은 지난 한해 겪은 위기 가운데 가장 큰 위협으로 ‘주요 공중과의 갈등’(32건)을 꼽았다. 기술적 문제(18건), 대규모 피해(11건), 경제적 문제(11건), 직원 비행(9건), 정보적 문제(7건), 정치적 문제(6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하지만 점수 자체는 위기유형이나 위기단계 항목과 비슷한 수준이었다.‘위기와 관련된 공중의 파악과 관리’ 정도를 묻는 첫 번째 질문은 2003년보다 0.01점 상승했고 ‘미래 위기에 따른 희생자 관리’ 항목은 0.15점, ‘정부와 규제기관과 갈등해소 관리’ 항목은 0.07점 오르는 등 전반적으로 점수가 높아졌다. 미래 희생자 관리 항목 점수의 상승은 기업의 위기관리활동이 사후의 피해자 관리 차원에서 사전예방까지 범위를 넓혀가고 있음을 의미한다.공중관리의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는 반면, 구체적이고 효율적인 공중관리 방안 및 대상에 대해선 여전히 잘 모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코콤포터노벨리는 “공중관리에 대한 구체적 교육이 부족한 탓에 대정부, 대규제기관, 대언론관계 활동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들 이외의 공중에 대한 인지 및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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