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가정 조화 이루는 버팀목 돼야

우리나라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2005년 유엔의 인구현황에 따르면 홍콩과 우크라이나와 같이 급격한 사회체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나라를 제외한 국가 중에서는 가장 심각한 저출산 국가로 나타났다. 저출산 문제는 단순히 유소년 인구의 급감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앞으로 15년 후인 2020년을 정점으로 총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으며, 2026년이 되면 인구의 20.8%가 노령인구인 초고령사회로 접어들 전망이다. 이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프랑스(156년), 영국(91년), 일본(36년) 등과 비교했을 때 그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늙어가고 있다.많은 사람들은 저출산 문제를 비단 국민연금의 부족, 젊은 노동력 급감에 국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저출산 여파는 곧 사회 전반에 그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기업의 측면에서도 저출산은 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의미한다. 저출산 여파는 곧 빠른 속도로 전 산업분야로 확산될 것이며, 시장의 규모와 형태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할 것이다.1970년대 출생아수는 약 100만명 수준이었다. 2000년에는 60만명 수준으로 급감해 지난 30년 사이에 무려 40만명의 아이가 줄어들었다. 그리고 올해 불과 5년 사이에 무려 15만명이 줄어 약 40만명 아이가 태어나고 있다. 통계청 2005년 장래인구특별추계에 따르면 앞으로 15년 내에 출생아수는 다시 30만명대로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급속한 인구변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 당장 어떠한 조치를 취하더라도 그 효과가 나타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지금 당장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이 변화는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점이다.이에 정부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기업들이 앞으로 겪어야 하는 길은 험난하다. 어쩌면 우리는 앞으로 정보화로 인한 시장의 변화보다 청년층의 급감으로 인한 시장의 변화로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얼마 전 LG경제연구원에서는 베이비 붐 세대가 은퇴하는 시점인 2015년 자산시장 붕괴 가능성 여부에 대한 연구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이는 인구변화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할 수 있는 사례다. 또한 소니가 삼성전자에 추월당한 이유 중 하나가 시장변화에 민감하게 대처하지 못한 기업문화, 즉 변화를 이끌어갈 젊은이들의 패기와 정열, 도전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평가에 예의 주시해야 한다.저출산으로 인해 절대적인 내수시장 규모가 축소되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다. 기업이 아무리 우수한 제품을 내놓는다 해도 이를 구매할 수 있는 수요가 턱없이 부족하게 될 미래를 상상해보라. 기업은 무한경쟁시대인 지금보다 더 큰 난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물론 각 기업들은 인구변화에 따른 시장변화에 맞춰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줄어드는 한계를 극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프리미엄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해도 중국이나 인도의 저가 제품이 쏟아져 들어온다면 고가 전략마저도 위험하다. 노령인구를 위한 실버산업이 제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지금의 모든 기업들이 실버산업으로 전향할 수는 없다. 글로벌 시장으로의 진출도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할 것이다.앞으로 15년 사이 산업 전반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내수시장이 축소되면서 의류, 생활용품, 전자제품 등 제조업체들은 이익을 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할 것이고, 외식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줄어 서비스업 업체들이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홈쇼핑, 백화점 등도 고객수가 줄어들어 구조조정을 해야 할 것이며, 택배회사도 사용인구가 줄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얼리어댑터가 많아 첨단 제품의 테스트 시장이었던 한국시장의 매력은 과거의 영광이 될지 모른다. IMF 외환위기 때처럼 내수시장 위축으로 기업의 존폐를 고민해야 할지 모른다. 기업이익이 줄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며, 일자리가 없는 계층의 소비가 줄어 다시 기업이익에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우리 사회는 이미 고객이 있어야 기업이 있다는 교훈을 경험한 바 있다. 기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도 지속가능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어린이는 나라의 미래이자 기둥’이라는 말은 단순히 어린이날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출산과 보육은 국가와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며, 동시에 기업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기업의 역할이제 기업들은 출산이 자연적으로 늘어나기를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 스스로가 주체가 돼 저출산 극복에 동참해야 한다. 이는 기업을 위한 일일 뿐만 아니라 기업이 뿌리내리고 있는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데 기여하는 일이다. 이를 위한 기업의 1차적인 역할은 근로자가 일터와 가정에서의 역할을 조화롭게 수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에 있다. 기업의 구성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출산을 하고 양육을 할 수 기업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많은 경영자들은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고려하는 가족친화경영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이 저출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이며, 또 비용이 증가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가족친화경영은 저출산 극복의 핵심 과제이며, 동시에 기업경쟁력을 위해서도 효과적이라는 점이다.최근 저출산 극복을 위해 기업문화 개선에 주력하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왜 가족친화적 기업문화가 중요한지를 실감할 수 있다. 일본은 지난 20여년간 보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막대한 국가예산을 지원했으나 실제 출산율 증가는 미미했다. 그 원인을 조사한 결과 장시간 근무나 자녀양육을 고려하지 않는 고용환경, 성차별적 문화 등 기업의 노동환경이 주된 이유로 평가됐다. 직업을 가진 사람들 모두가 회사에 묶여 있으니 결혼하고 싶어도 시간이 없고, 아이를 낳고 싶어도 육아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올해 차세대 육성지원대책을 통해 기업의 근무환경 개선과 남성의 육아 참여 유도, 가족친화적 기업에 대한 인증제도 도입 등을 실시하고 있다. 심지어는 육아휴직에 대한 사회 전체 목표치를 설정하고 각 기업의 계획과 실천을 의무적으로 강제하고 있다.우리나라의 연간 근로시간은 문제가 되고 있는 일본에 비해서도 약 10% 이상 초과하는 세계 최고의 과로사회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이 심각한 반가족친화적 기업문화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지난 10여년간 유한킴벌리는 전체 근로자의 ‘삶의 질’, 즉 근로자가 가정과 일의 양립을 추구해왔다. 93년 대전 사업장에 도입한 평생학습 시스템은 근로자들이 일과 삶의 조화를 추구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고, 이는 이후 전 사업장으로 확산됐다. 평생학습 시스템은 과로를 멈추고 법정근로시간을 준수하면서 학습을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새로운 시스템이었다. 이 과정에서 일과 가정의 조화, 출산과 육아의 보호 및 장려 등에 대한 노력이 본격화돼 출산휴가, 대체인력지원, 육아휴직 등 모성보호를 위한 제도는 기본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사원 개인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고 이들이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 출산을 축하하는 선물 제공이나 가족건강 지원 프로그램, 사원가족 상담 프로그램(EAP) 등도 가족친화제도 중 하나다. 이처럼 유한킴벌리에는 출산을 축하하고 가정을 소중히 여기는 문화가 뿌리내리고 있다.남성과 여성 모두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은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쳤고, 2004년 유한킴벌리의 합계 출산율은 1.89명으로 국가 평균인 1.16명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가족친화경영은 또한 인적자원관리(HRM) 측면에서 긍정적인 성과를 가져와 2004년 평균 이직률은 0.3% 미만이다. 이는 제조업 평균 이직률인 2.46%의 약 10분의 1수준으로 이직으로 인한 손실이 매우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3년과 2004년 한국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됐고, 여타 조사에서도 직원들의 직무만족도가 높고 애사심이 높은 기업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매출액과 영업이익 모두 지속적으로 성장했으며, 전 제품이 시장점유율, 고객만족도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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