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육아 ‘공동책임’… 나라가 키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스웨덴을 중심으로 한 노르딕 국가의 복지제도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완벽에 가까운 복지제도는 스웨덴 모델의 ‘위기’ 혹은 ‘죽음’이 공공연히 선언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여러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스웨덴이 보여주는 높은 출산율이 그중 하나다. 지난 1990년대 말 경제위기로 크게 떨어졌던 출산율은 지난해 여성 1인당 1.8명까지 늘어났다. 선진국들이 대체로 출산율 저하로 고민에 빠져 있는 가운데 스웨덴의 출산율은 계속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스웨덴 여성의 취업률은 70%가 넘는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큰 사회문제가 된 심각한 출산율 저하가 흔히 여성의 사회진출 증가 때문이라고 분석되는 것을 고려하면 스웨덴 상황은 우리 시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이 특이한 현상은 출산과 양육에 방해가 되는 물질적ㆍ비물질적 문제를 해결해주는 여러 제도와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육아문제에 대한 공통된 의식과 그 해결방안으로서의 복지제도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 것이다.스웨덴의 법정 육아휴직 기간은 총 16개월이다. 하지만 이 기간은 한 번에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8살이 될 때까지 여러 번에 걸쳐 나눠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스웨덴 여성들은 대부분 육아휴직을 여름휴가 기간이나 연말휴가 등과 번갈아 사용한다. 심지어 사정에 따라 반일제, 즉 반나절만 휴직하는 경우도 있다.이처럼 융통성 있게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복직이 당연하게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육아휴직 후 복직은 공휴일에 쉬고 다음날 출근하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출산 후 재취업의 문제로 고민하는 우리나라 여성들의 상황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다.또한 여성인력 활용을 위한 노동시장의 남녀평등 정책도 육아휴직제도의 실용화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고 있다. 현재 480일의 육아휴직 기간 중 60일은 아버지가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며 정부는 160일을 남성들이 사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출산과 육아를 남녀가 공동으로 책임져야 직장에서 여성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고 마음 편하게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다는 것이다.스웨덴의 탁아제도 역시 여성의 사회진출과 출산율 증가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빈부에 상관없이 돌이 지난 아기는 대부분 학교에 다닐 때까지 지역 탁아소에 맡겨진다. 지역 탁아소의 75%는 지방정부가 운영하고 나머지는 육아공동체 등 민간이 운영한다. 탁아소는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고, 유아교육 전공 교사 1명이 어린이 5명 정도를 돌본다. 어린이들의 나이에 따라 숫자, 글씨, 그림 등 다양한 수업이 진행되는데 공부보다는 건강하고 예의바른 어린이를 키우는 데 교육의 중점을 두고 있다.학교교육도 부모들의 양육 걱정을 덜어준다. 또한 대부분의 부모들이 맞벌이를 하는 것을 고려해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정규수업이 끝나면 오후 6시까지 ‘방과 후 탁아소’를 운영한다. 방과 후 탁아소는 학교 수업과 별도로 각종 견학과 미술, 수영 등 특별활동을 포함해 다양한 프로그램과 놀이시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무료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학교 교사와 임시교사, 학부모가 번갈아가면서 진행한다.이들 제도 외에도 육아를 돕는 금전적인 지원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일단 육아휴직 기간에는 부모수당이 지급된다. 남녀 구분 없이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지급되는데 이는 스웨덴 국영보험회사가 담당하고 있다. 육아휴직 기간 중 390일 동안은 월급의 80%를, 나머지 90일은 월급에 상관없이 매일 60크로나(약 8,000원) 정도를 지급한다. 실직자의 경우에는 최저 수준인 하루 1,080크로나(약 14만원) 정도를 지원해 준다.따라서 스웨덴 여성들은 오히려 아기를 낳기 전에 직장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또 국영보험회사는 육아휴직 전 240일 동안 근무한 것을 기준으로 수당을 지급한다. 부모수당이 생활비 명목이라면 자녀수당은 양육비 개념이다. 이 제도는 지난 50년대부터 시작돼 가족의 경제력에 상관없이 생후 1개월부터 18세가 될 때까지 지원해 준다. 지원 액수는 한 달에 1인당 950크로나(약 12만원)이다. 이 역시 국영보험회사가 관리하며 출산을 장려하는 뜻에서 셋째부터는 자녀수당 누진제가 적용돼 추가 금액이 지급된다. 셋째를 낳으면 기존의 950크로나에 추가로 245크로나가 더 지원되고 넷째는 760크로나, 다섯째는 6명분의 자녀수당이 지급된다.이 같은 지원은 16세까지 기본적으로 이뤄지며 그후 2년 동안 자녀가 학생일 경우에만 교육지원비 명목으로 같은 액수의 자녀수당이 지급된다.현재 스웨덴 정부는 앞으로 지원기간을 줄이더라도 물가상승을 반영해 자녀수당을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국가가 보조한다. 탁아소 비용은 부모의 소득수준과 가정형편에 따라 차등화돼 있는데 보통 소득의 5% 정도다. 학교에 들어간 이후에도 고등학교까지는 무상교육을 받는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 의료비 부담도 없다. 임신에서 출산까지 전 과정을 국가가 무상으로 관리할 뿐만 아니라 18세까지 지역 보건소에서 무료로 정기 건강검진과 예방접종, 간단한 질병치료를 받을 수 있다.이 같은 제도로 출산율 증가 행진을 계속하는 스웨덴 사회에 최근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지 못하는 여성이 증가하는 것이다. 해마다 불임여성이 눈에 띄게 늘어나 90년대 10%이던 불임률이 지난해 15%로 증가했다. 스웨덴 단드리드병원의 분만실 과장인 니콜 실베르스톨페 박사는 불임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임신연령이 높아지고 성병환자가 많아지는 것을 꼽는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웨덴 정부는 불임도 병으로 분류하고 있다. 아기를 갖고 싶어 하는 여성이 인공적으로라도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돕고 있는데, 시험관아기 시술은 3번까지 무료이다. 이 경우 임신 성공률은 50%나 된다.스웨덴은 장차 인구감소에 대비해 출산장려는 물론 입양에도 적극적이다. 10세 이하의 어린이를 입양하는 경우 양부모는 친부모와 마찬가지로 480일의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다. 아이가 양부모와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부모수당과 자녀수당도 친부모ㆍ친자식인 경우와 똑같이 지급된다.스웨덴 사회가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이처럼 복합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과감한 투자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세금 덕분이다. 복지제도를 위해 스웨덴 정부가 지출하는 비용은 GDP(국내총생산)의 40%에 육박한다. 국민들도 소득의 30~60%를 세금으로 내지만 그만큼 혜택을 받기 때문에 조세저항이 크지 않다. 리사 베리 스웨덴 법무부 정무수석은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부자 나라가 아니어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출산 관련 복지는 ‘나라의 부보다는 정치적 신념의 문제’라고 강조한다.이런 정치적 신념은 생활 곳곳에 작은 제도로 현실화돼 있다. 스웨덴의 대형 할인매장이나 백화점 주차장에는 장애인 전용주차 옆에 가족 전용주차 표시가 돼 있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부모들이 가까운 곳에 편리하게 주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런 세심한 배려는 스웨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이와 동반한 사람들에게는 버스요금을 받지 않는다. 아이를 데리고 있으면서 요금을 내는 것이 물리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또 어디든지 공공장소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공간과 휴식공간이 마련돼 있다. 출산과 육아가 단순히 개인이나 한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미래가 걸린 공통의 문제라는 공감대가 폭넓게 확산돼 있다.스웨덴 모델이 위기를 맞고 있다지만 스웨덴 사람들은 아직도 지난 한 세기에 걸쳐 이룩된 그들의 복지제도가 여전히 옳은 선택이며 자부심의 대상이라고 믿는다. 취재 중 만난 울리카 스트렘베리는 “남들은 우리를 ‘요람에서 무덤까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아마도 ‘엄마 뱃속에서 천국까지’일 것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웨덴의 출산 배려 제도들은 ‘천국까지’인 것은 몰라도 ‘엄마 뱃속에서부터’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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