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한해 동안 4300여개사 입주

칭화대·베이징대 등 68개 대학 밀집 … 인재 젖줄 자리매김

베이징대 인근 하이롱 빌딩. 중관춘의 명물이 된 이 빌딩 아래쪽은 PC에서부터 디지털카메라 등 전세계 정보기술(IT) 제품이 판매경쟁을 벌이는 상가이고, 위층은 기업들의 입주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그 뒤쪽은 3년 전만 해도 착공 때라 허허벌판이었지만 지금은 고층빌딩 숲을 이루고 있다.중관춘의 스카이라인이 바뀌고 있다. 중국 53개 국가급 첨단기술개발구 가운데 최대 규모인 중관춘에 입주하는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5개 구역으로 흩어져 있는 중관춘의 핵심구역인 하이뎬구 과기원에만 지난해 3,000여개 첨단기술기업이 새로 입주했다. 중관춘 전체로는 4,300여개사에 이른다. 하루 12개 벤처기업이 탄생한 것이다. 덕분에 지난해 중관춘 입주기업들이 올린 매출액은 전년보다 25% 증가한 3,600억위안으로 올해는 2001년의 2배 수준인 4,280억위안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첨단기업들이 늘면서 세무, 법률, 회계, 컨설팅기업들도 중관춘에 속속 생겨나고 있다.베이징시 총생산액의 18%를 차지하는 중관춘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중국 창투사인 CAPI의 진상판 CEO는 “중관춘은 68개 대학과 219개 연구기관이 밀집돼 있는데다 급성장하는 IT시장을 끼고 있어 태생적으로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문화교육지대이던 이곳에 1980년대 초 대학과 연구기관을 겨냥한 수입품 전자기기와 전자부품 판매점포가 모여들기 시작해 중국 최대 IT상가를 일궈냈다. 시시각각 변하는 IT시장의 최전선에서 피드백을 받아 산학연 공동 연구개발이 행해지고 있는 게 중관춘 생태계의 강점으로 꼽힌다.자연발생적인 중관춘의 태생 조건에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이 벤처하기 좋은 생태계를 만드는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하이뎬구에 머물던 중관춘을 펑타이원 등 베이징 내 5대 구역으로 확대한 것은 99년이었다. 당시 장쩌민 국가주석은 “10년 내 대만의 신주(新竹),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따라잡겠다”고 호언했다.지난해 세계 IT업계를 놀라게 한 중국 롄상의 IBM PC사업 인수계약은 그의 호언이 허언이 아님을 실감케 했다. 중관춘 생태계의 자양분을 먹고 자란 중국 벤처가 다국적기업의 반열에 오른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중국과학원의 연구원 11명이 과학원이 대준 20만위안(약 2,500만원)을 밑천으로 창업한 게 84년. 베이징시가 중관춘을 첨단기술 시범개발구로 지정하기 1년 전이다. 허름한 단층 가옥에서 IBM PC 대리상까지 했던 롄상은 창립 20주년을 바로 앞둔 지난해 12월 IBM PC사업을 12억달러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대학도 중관춘에 인재를 제공하는 역할에 머물지 않고 생태계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른바 샤오반기업들이다. 칭화대가 설립한 쯔광 등 46개사를 거느린 칭화지주회사의 쑹쥔 총재는 “칭화지주회사는 연구성과의 상품화를 탐색하는 큰길”이라고 소개했다. 쑹총재는 “칭화대는 학교이기 때문에 많은 연구성과와 정보, 그리고 우수한 인재가 있다”며 “기술 산업화로 거둔 수익이 학교의 연구개발 발전에 기여하는 상승작용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그럼에도 중관춘관리위원회는 중국과학원과 기술이전센터를 설립키로 하는 등 산학연 연계의 끈을 더욱 단단히 매기 위해 곳곳에서 작업 중이다.하이뎬구 과기원도 당초의 자연발생적인 중관춘 거리에서 계획된 단지를 추가하는 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하이롱빌딩에서 서북쪽으로 10분 정도 차를 달리면 중국 최대 소프트웨어단지인 중관춘소프트웨어파크가 나온다. 2기 공정에 들어간 이곳을 관리하는 리바오신 회장이 내놓은 조감도는 영락없는 ‘공원’이다. 녹화율이 60%다. 건축물이 13m를 초과하지 못한다. 햇빛이 널리 비치고 잔디가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다. 5성급 호텔과 슈퍼마켓 등을 한데 모은 건물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날아가는 CD를 연상시키는 지붕이 인상적이다. 그 옆 호수를 끼고 카페들이 들어설 예정이다. 자녀의 교육을 위한 국제학교도 세워질 예정이다. 리회장은 “살기 좋은 환경이 연구원들에게 기술을 혁신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고 강조했다.호텔 옆에 창업보육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80여개 업체가 대박의 꿈을 만드는 곳이다. 인근에는 민간기업이 운영할 우주선 외관의 창업보육센터가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중관춘에는 대학이 운영하는 것을 포함해 20여개의 창업보육센터가 있다. 선진기술을 보유한 해외유학파를 겨냥한 국제창업보육센터도 가동 중이다.덕분에 롄상의 후예가 될 고성장 벤처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소프트웨어파크에 별도의 사옥을 갖고 있는 강완네트워크는 네트워크 솔루션을 제공하는 신생벤처다. 설립 5년째인 지난해 12억위안(약 1,5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연구인력만 1,000여명에 이른다.소프트웨어파크와 맞닿은 신식 산업기지에는 중국 남부 광둥성에 본사를 둔 화웨이와 중싱의 빌딩도 보인다. 중국 양대 통신장비업체의 연구기지들이다.중관춘에는 중국의 두뇌들만 몰리는 게 아니다. 오라클,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모토롤라, HP, 미쓰비시 등 다국적기업들의 연구센터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세계로 뻗어가려는 중국기업과 중국시장을 공략하려는 다국적기업이 공존하는 곳이 중관춘이다.모영주 베이징 아이파크 소장은 “중관춘에서 소프트웨어파크는 물론 생명공학 신소재 등 각 기능별 단지를 직접 관리하는 건 기업이어서 효율성이 높다”며 “모든 것을 정부가 하려는 한국과 다르다”고 말했다.물론 중관춘에도 허점이 적지 않다. 지난해 ‘후웨이 현상’이 중관춘을 강타한 것. 미국 유학파인 후웨이가 창업한 의료벤처기업이 자금난 끝에 120배의 가치를 인정받고 미국 나스닥 상장기업에 인수된 것을 두고 기술력이 우수한 중국 벤처가 해외자본에 인수되는 현실을 자성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중관춘의 자금줄을 개혁하기 위한 논의가 활발해진 계기가 됐다.중관춘은 쉼 없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INTERVIEW 리바오신 중관춘 소프트웨어파크발전유한공사 동사장“기업이 춤출 때까지 서비스 제공할 것”“입주기업을 만족시키면 60점, 흥분시키더라도 80점입니다.”중관춘 소프트웨어파크발전유한공사의 리바오신 동사장(회장ㆍ57)은 “정부의 중관춘 육성 정책 틀 안에서 입주기업에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중국 최대 소프트웨어 단지를 관리하는 회사의 서비스 이념은 달라도 많이 달랐다. 나머지 20점은 서비스 제공과정에서 새 서비스를 추가하고 서비스 표준을 향상시키며, 혁신을 통해 고객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계산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추구해야 할 목표라는 것이다. 2000년 말에 착공된 이 단지는 연말까지 입주사를 200여개사로 늘려 고용인원을 3만여명으로 확대하고 연간 매출액도 110억위안(약 1조3,750억원)으로 늘린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기업에 정책법규를 이해시키고 기업의 희망사항을 정책 결정과정에 반영시키고 있습니다.” 그가 소개한 서비스는 한둘이 아니다. 정부와 기업을 잇는 다리에서부터 납세, 법률, 회계심사 등 대행, 특허출원 신청 지원, 인재 유치, 합병 주선 등 다양하다.“미국의 유명 벤처캐피털업체가 입주를 결정했습니다.” 리회장은 “입주기업의 융자환경이 중요하다”며 “은행 대출을 지원하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정부와 협력해 정부 구매 관련 기업도 입주시키기로 했습니다.” 그는 “바이어가 가까이 있으면 입주기업의 비즈니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무대가 잘 꾸며져 있어도 배우의 훌륭한 공연이 없으면 소용없죠.” 리회장이 직원들에게 입주기업에 늘 고마움을 가지라고 얘기하는 이유다.“배우가 성공할 때 무대는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리회장의 말에서 중국의 실리콘밸리 밑바탕에는 기업을 춤추게 하려는 철저한 서비스 정신이 흐르고 있음을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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