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성이 생명…‘오차 제로에 도전’

“면접원들이 수집한 설문지들을 체크하고 있는 중입니다. 간혹 불성실한 면접원들이 엉터리로 설문을 작성해 오는 경우가 있거든요. 에러율이 일정 한도를 넘어서면 해당 면접원이 작성한 설문지는 전량 폐기하고 그 면접원은 다시 고용하지 않습니다.”(AC닐슨 안여경 과장)리서치의 생명은 정확성이다. 그렇지 않은 조사는 차라리 안하는 편이 낫다. 오히려 혼란을 줄 수 있는데다 심각한 피해를 발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조사업체의 1차적인 경쟁력 역시 조사의 정확도에서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조사업체들이 갈수록 면접원들에게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일반적으로 리서치 하면 특정 이슈에 대한 여론조사나 선거 때 실시하는 선거구 조사를 연상한다. 하지만 실제로 리서치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곳은 기업이다. 프로모션이나 광고를 집행할 때, 신제품을 런칭할 때, 점유율을 확인하는 등 시장환경을 파악할 때 리서치는 기업 경영의 전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이용된다.조사를 실시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고객이 주문하는 경우(주문조사)와 리서치회사가 자체적으로 하는 경우다(기획조사). 대부분은 주문조사로 이뤄진다. 조사의 첫 단추는 조사의 목적과 이에 맞는 조사설계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자료를 수집해 어떤 방법으로 이를 처리할지 등 전반적인 프로세스가 결정된다. 설문지를 돌려 통계를 내는 정량조사를 할 것인지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통찰력을 얻기 위해 정성조사를 할 것인지도 이 단계에서 정해진다. 예를 들어 신제품을 내놓은 뒤 점유율을 확인하고 싶은 경우에는 정량조사가 적당하고 신제품 기획단계에서 소비자들에게서 직접 아이디어를 얻고 싶으면 정성조사가 유리하다.가장 대표적인 정량조사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소매유통조사다. 현재 국내에서는 AC닐슨이 유일하게 실시하고 있는데 조사의 프로세스는 다른 정량조사와 별 다르지 않지만 조사의 규모나 역사는 다른 조사에 비교해 압도적이란 게 업계의 전반적인 평가다.실제 조사는 모집단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소매유통을 조사할 경우에는 전국 소매점의 현황을 추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다시 지역이나 규모별로 묶은 후 대표성을 가진 표본을 추출한다. 현재 전국 소매점은 약 11만개. AC닐슨은 이 가운데 1,200여개를 대상으로 조사를 매월 진행한다. 다른 조사와 달리 조사원들의 전문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는 고용하지 않는다. 120여명의 조사원 전원이 정규직원이다.조사원들에게 자료가 도착하면 통계 처리 과정에 들어간다. 우선 자료에 에러가 있는지를 일일이 확인한 뒤 이를 컴퓨터에 입력한다. 업체들간의 차이는 이 다음 단계에서 발생한다. 저마다 고유의 통계 처리 기법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AC닐슨의 경우 위닝 브랜드(브랜드자산조사), eQ(자산관리), ads@work(광고효과 평가), BASES(신제품 수요예측) 등 조사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고유의 모델을 적용하고 있다.통계 수치가 도출되면 분석에 들어간다. 통계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뽑아내는 작업이다. 통계의 품질에 대한 최종점검도 이 단계에서 이뤄진다. 혹시라도 미심쩍은 통계는 곧바로 재검토된다. 이 작업은 대부분 월말에 진행되는데 고객사들마다 결과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따로 해야 하기 때문에 4~5일 정도 밤샘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특히 최근에는 단순한 통계보다 시장전망에서 대응전략까지 고객들의 요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 연구원들의 몫이 커지고 있다고 한민영 AC닐슨 소매유통조사본부 국장은 말한다.“숫자에서 쾌감을 느낄 수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매월 비슷비슷한 자료에서 의미를 발견하자면 숫자에 대한 애정이 필수적이죠. 전달과 숫자가 같다고 해서 시장이 멈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시장과 기업이 역동적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같은 점유율, 순위가 나왔다고 봅니다. 미세한 숫자 변화가 의미하는 물밑의 역동성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합니다.”소매유통조사로 대표되는 정량조사가 아직도 많이 활용되고 있지만 최근에는 정성조사가 많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숫자로 표현할 수 없는 것, 예를 들면 제품 기획단계에서 소비자들의 반응을 미리 살펴볼 수도 있고 심지어 새로운 제품의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다. 정량조사에 비해 조사기간이 절반 정도에 불과해 빠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것도 매력이다.최경희 AC닐슨 소비자조사본부 국장은 “얼마 전까지 정성조사에 대한 고객들의 신뢰가 낮은 게 사실이지만 선진국에선 정량보다는 정성조사가 더 많이 실시되고 있다”며 “3~4년 전부터는 국내 고객들도 정성조사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해서 현재 건수로는 40% 정도가 정성조사”라며 정성조사의 비율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정성조사 가운데 많이 활용되는 방법은 포커스 그룹 디스커션(FGD)이다. 하나의 주제를 놓고 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새로 선보인 과자가 잘 팔릴까를 미리 알아보고 싶을 때 해당 과자를 직접 먹어보면서 제품의 장단점을 토론하는 식이다. 경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통상 2시간 정도 진행된다.FGD는 ‘미러룸’이라고 불리는 별도의 공간에서 진행되는 것이 보통이다. 미러룸은 토론자들이 토론을 하는 공간과 이를 관찰하는 별도의 공간으로 구분돼 있다. 이 두 공간은 이중거울로 막혀 있는데 토론자들은 관찰자들을 볼 수 없지만 관찰자들은 토론자들을 볼 수 있다. 리서치회사의 전문가와 고객 관계자들이 관찰자로 참석하는데 토론에 개입하기를 원하면 ‘쪽지’를 토론장 안으로 들여보낸다.“FGD의 성공은 참석자 선정에 달려 있습니다. AC닐슨은 3차에 걸쳐 최종참석자를 선별합니다. 참석자를 모집하는 전문 리크루터도 있죠. 그래도 한두 명 도움이 안되는 참석자가 있어요. 그럴수록 토론을 진행하는 모더레이터의 역할이 중요해지죠.”능력 있는 모더레이터는 흔치 않다. 많은 업체들이 프리랜서를 고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AC닐슨의 경우에는 내부인력 육성 차원에서 직원들이 모더레이터 역할을 한다.“모더레이터는 생산적인 결론을 내기 위해 시장이나 제품에 완전히 문외한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이를 오해한 고객들이 때로 ‘왜 저런 초보자를 고용했느냐’고 불평을 하기도 하죠. 갈수록 빈도는 적어지고 있지만요.”토론은 처음부터 끝까지 녹화를 하고 전문 스크립터가 토론내용을 정리한다. FGD가 끝나면 미리 정해 놓은 가설과 비교해 고객과 의견을 조절한 다음 2주 후쯤에 최종 리포트를 작성한다.업체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최근에는 소비자패널조사라는 새로운 방법이 도입되고 있다. 이 조사는 소비자로 구성된 패널들에게 본인이 구매한 제품과 수량, 구입가격, 구입장소 등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하게 한 뒤 이를 인구통계학적 정보와 결합해 분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은 아니고 전용 단말기를 많이 이용한다. AC닐슨의 경우 휴대용 스캐너로 제품의 바코드를 찍으면 필요한 정보가 입력되는 방법을 활용하고 있다.최효재 AC닐슨 소비자패널조사 국장은 “소비자들의 반복구매 패턴을 분석해 브랜드 충성도를 알 수도 있고 브랜드간의 스위칭 관계도 알 수 있다”며 “고객 입장에선 경쟁사를 파악해 마케팅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사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데 유용한 정보가 된다”고 소비자패널조사의 장점을 설명했다.패널조사의 정확도를 높이는 것은 역시 패널의 수다. AC닐슨은 최초 2,500명으로 시작해 현재 6,000여명의 패널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이 분야에 투자를 확대해 가고 있다. 최국장은 “소비자패널의 장점이 고객에게 충분히 전파되지 않아 시장이 다소 정체된 상태이긴 하지만 5년 안에 현재의 2배 이상 커질 것”이라며 “지금보다 훨씬 다양한 분야에서 이 조사방법이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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