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의존 버리고 팀플레이 중시

“글쎄요. 요즘 워낙 난리들이잖아요. 남들도 다 가입했다 그러고…. 수익률도 굉장하다면서요. 들까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침 남편 월급도 늘었고 해서 그걸로 들었죠. 자세히 알아본 건 아니고요. 은행 창구에서 콩 구워먹듯 계약했죠. 그래도 최소한 손해 볼 일은 없는 것 아니에요?”고등학교 교사 P모씨가 귀띔한 지난 9월의 적립식펀드 가입 스토리다. 계약기간 3년에 월 30만원씩 적립하는 주식형상품이다. 이로써 P씨도 적립식펀드의 주인이 됐다. 그가 펀드통장을 손에 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10여분 남짓. 고민이야 진작 했다지만 막상 창구에서의 가입은 일사천리였다. 워낙 인기상품인 까닭에 세세한 상품설명도 생략됐다. 대신 “으레 좋겠거니 하는 암묵적인 분위기였다”는 게 P씨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렇게 가입하는 투자자가 적잖은 것으로 알려졌다.하지만 뒤집어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적립식펀드는 생각보다 간단치 않은 상품이다. 일련의 프로세스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 기획ㆍ개발에서 판매ㆍ운용ㆍ환매에 이르는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1년 이상 걸린다. 수많은 관련 전문가의 손길도 필요하다. 첨단 금융상품답게 고도의 전문지식과 노하우가 필수다. 불특정다수의 자금을 위탁ㆍ운용하는 까닭에 금융당국의 심사ㆍ통제도 거친다. 한명의 인기스타가 나오자면 엄청난 유무형적 투입요소가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다. 적립식펀드의 붐 형성에는 이들 보이지 않는 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적립식펀드의 탄생에는 기획(상품개발)이 첫 단계다. 대중ㆍ시장성 등 이른바 잘 팔릴지 여부의 타진이다. 대면고객이 많은 금융기관의 동향을 주로 체크한다. 대략 3~6개월은 걸린다. 이때 기존 상품을 변형해 고객욕구를 반영할지 아니면 신상품으로 신규시장을 창출할지 등을 결정한다. 고객욕구ㆍ성향 파악과 운용기법 등도 논의된다. 성태경 미래에셋투신운용 마케팅팀 차장은 “개발팀과 마케팅팀, 그리고 운용팀 등 상품설계에 관여하는 여러 팀의 협조ㆍ조화가 관건”이라며 “히트 가능성은 이때 얼추 판가름난다”고 전했다.상품제안은 운용ㆍ판매사 모두 가능하다. 다만 7대3의 비율로 운용사의 제안이 더 일반적이다. 판매사(은행ㆍ증권사)의 상품 제안은 개발여력이 있는 대형사에 국한된다.신상품 쪽으로 방향이 정해지면 그 다음은 디자인단계다. 상품개발팀의 업무다. 판매사가 잘 팔도록 상품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된다. 포장을 잘하는 건 물론 매출확대를 위한 각종 인센티브의 부여 여부도 고려된다. 판매사가 상품설계 주도권을 쥔 경우에는 운용사에 운용제안서를 보낸다. 이때는 해당 펀드의 성격과 가장 잘 어울리는 운용사가 선택된다. 약관 작성도 동시에 이뤄진다. 펀드성격ㆍ운용기준 및 세세한 편입종목 비중까지 대략 정해진다. 완성된 약관은 금융감독원에 보내져 심사를 받는다. 2주 정도 걸리며, 대부분은 승인된다. 이때도 붐업을 위한 사전 마케팅은 계속된다. 주로 기반작업을 독려하는 차원에서 판매라인을 다독이게 된다.금감원의 ‘OK 사인’이 떨어지면 본격적인 판매준비에 돌입한다. 투자설명서ㆍ약관ㆍ운용제안서ㆍ광고전단 등 판매ㆍ마케팅에 필요한 인쇄가 진행된다. 그밖에도 다양한 광고ㆍ홍보수단이 강구된다. 판매채널의 확보도 적극 고려된다. 관련된 운용ㆍ판매사가 협의해 판매망을 넓히는 식이다. 인기몰이의 주역인 유명 적립식펀드의 경우 가능한 많은 판매사를 확보하려는 경쟁이 벌어진다. 판매 중이라도 채널확대는 계속 진행된다. 가령 미래에셋의 적립식펀드는 판매 점포수만 대략 7,000개에 육박한다.원칙 지켜지는지 잘봐야판매시작은 곧 운용개시를 뜻한다. 적립식이라면 판매와 동시에 돈이 들어와서다. 이체날짜가 월급날인 25일이 많아 ‘월말효과’(월말에 주가가 상승하는 것을 일컫는 말)란 단어까지 만들어졌지만, 굳이 특정 날짜에 넣을 필요는 없다. 본격적인 레이스는 이때부터다. 적립식펀드는 흔히 ‘J커버 효과’를 보인다. 정액적립식인 까닭에 시간이 지날수록 투자자금이 급증한다. 운용제안서대로 운용되는지 체크ㆍ통제도 시작된다. 김명환 대우증권 상품개발마케팅부 과장은 “판매사는 운용사를 견제하는 역할도 한다”며 “수익률이 낮거나 하는 문제가 발생하면 고객을 대신해 피드백을 요청한다”고 밝혔다.펀드고객은 가입 다음달부터 운용보고서를 받는다. 서비스 차원에서 직접 우편으로 운용보고서를 보내주는 곳도 있지만, 고객이 HTS(홈트레이딩시스템)나 전화로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우편통지는 의무사항은 아니다. 운용보고서에는 펀드매니저 이동 여부를 비롯한 전반적인 운용상황과 수익률 등이 기록돼 있다. 다만 현재로선 즉각적인 신탁명세(투자상황 등) 확인은 불가능하다. 운용사의 포트폴리오 보호 차원에서 주식형의 경우 1개월 후 볼 수 있게 돼 있다. 때문에 피드백이 늦을 수밖에 없다.대우증권 김과장은 “적립식은 장기상품이라 매우 엄격하게 운용상황을 체크한다”며 “운용원칙을 따르지 않는 케이스도 일부 목격돼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한편 미래에셋 성차장은 “운용ㆍ성과와 관련된 요구가 많은데 기본적으로는 운용기준을 지키는 게 최대 원칙”이라며 “해석상 견해차이가 있는 경우도 적잖다”고 밝혔다. 펀드매니저의 판단착오나 실수로 인한 결과는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운용사 내부에서 먼저 알고 개선할뿐더러 이는 순식간에 수익률로 시장평가를 받는다는 얘기다.마지막은 환매ㆍ청산단계다. 물론 적립식펀드의 경우 추가 가입이 가능한 개방형 펀드로 얼마든 장기존속이 가능하다. 만기 개념도 없다. 때문에 고객 1명이 남아도 운용은 계속된다. 다만 최악의 경우 판매를 중단한 후 환매를 유도할 수는 있다. 고객 입장에선 사정에 따라 환매가 늘 가능하다. 표준약관에 따르면 가입 3개월이 지나면 환매수수료가 없다. 다만 중도환매 때는 일부 수수료가 발생할 수 있다. 급격한 환매 요청에 대비한 펀드의 안정적 운용 차원에서 환매 직전 3개월 평가익의 70%를 환매수수료로 뗀다. 환매와 관련한 펀드 성격은 크게 두 가지다. 목표식과 적립식이다. 목표식은 사전에 정한 목표금액(원금+수익)에 도달하면 스톱된다. 적립식은 만기 때가지 매월 일정액을 넣은 뒤 해지 여부를 정하는 방법이다.운용ㆍ판매보수도 알아둬야 한다. 수수료 구조다. 가입 당시 순간의 판단이 나중에 적잖은 수익률 차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운용ㆍ판매사의 보수 총계는 평잔(평균잔액)으로 연간 약 2.5%포인트다. 판매사(1.8%)가 운용사(0.7%)보다 많다. 이것을 지불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먼저 떼는(선취) 경우가 있고 평잔(원금+수익)으로 매년 지불하는 게 있다. 5~6년 이상 장기투자가 아니라면 선취보다 평잔에 따라 내는 게 더 유리할 수 있다. 주식형이라면 세금은 없다. 단 배당수익이 발생했다면 이건 15.4%로 개인과세가 이뤄진다. 판매사 보수가 더 많은 건 과거 대우 부실채권과 관련이 있다. 당시 판매사가 운용사의 부실을 크게 떠안은 데 대한 배려 차원이다. 일종의 암묵적 동의다.펀드운용도 중요한 포인트다. 내 펀드가 어떻게 운용되는지 알자는 차원이다. 요즘 펀드는 거의 대부분 공동운용ㆍ팀제를 지향한다. 때문에 과거처럼 스타 펀드매니저가 별로 없다. 미래에셋 성차장은 “펀드매니저 1명이 운용을 결정하는 시스템은 거의 사라졌다”며 “사전에 정한 자산배분비율ㆍ모델포트폴리오 등 운용원칙 안에서 여럿이 협의해 결정한다”고 말했다. 일부 운용사가 펀드매니저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여러 체크ㆍ주문단말기를 치운 게 대표적이다. 큰 파워였던 주문도 오더를 받은 여직원이 기계적으로 처리할 정도다. 차라리 그 시간에 종목발굴을 위해 애널리스트와 기업탐방을 가는 데 신경 쓰는 모습이다.매매는 매일 일어난다. 매일 비슷한 규모의 자금이 펀드로 이체되기 때문에 매매를 쉴 수는 없다. 돈은 쌓이는데 매수를 하지 않으면 펀드의 편입비율 자체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약관상 주식형이라면 주식편입비중은 60% 이상이다. 요즘 같은 호황장세에는 90% 이상을 주식으로 보유한다. 나머지 10%는 환매에 대비해 유동성으로 보유한다. 거래는 대개 바스켓(여러 주식을 일정비율로 분산해 하나의 거래묶음으로 만든 매매단위)으로 이뤄진다. 한 바스켓은 얼추 10억~30억원 가량이다. 바스켓 보유규모는 매일 바뀐다. 한번 사면 기본적으로 장기투자를 하지만 유지비중은 계속 변한다. 물론 개별종목을 사고팔기도 하지만, 이건 일부 케이스다. 적립식은 선물ㆍ옵션투자도 기본적으로 피한다. 또 펀드매니저들은 운용성과에 연동하는 별도의 보상시스템을 갖고 있다.
상단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