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부는 정부혁신의 모델하우스’

대담 = 양승득 편집장“사람들은 변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편하고 안전하게 사는 것을 추구하는 게 인간의 본성 아닙니까.”‘일반적으로 변화라는 것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 특히 피부로 느껴지는 개혁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중)오영교 행정자치부 장관(57)은 ‘혁신 전도사’로 불린다. 경영혁신의 화신으로 불리는 제너럴 일렉트릭(GE) CEO 잭 웰치에서 따온 ‘오 웰치’가 별명이기도 하다. 오장관은 이미 지난 2001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사장에 오른 뒤 공기업 고객만족도 꼴찌였던 KOTRA를 전세계 최우수 무역투자진흥기관으로 탈바꿈시켜 경영혁신 전문가로 인정받은 바 있다.오장관은 올해 초 행자부 장관으로 취임하면서도 역시 ‘공공조직의 변화’를 주창하며 변신을 도모해 왔다. 그래서인지 행정에도 경영마인드를 도입해 정부의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그의 단호한 한마디 한마디는 잭 웰치의 말과 무척이나 닮은 모습이었다.그는 “공무원 사회야말로 변화가 필요한 조직”이라며 ‘고객과 성과중심의 세계 일류의 행정기관’을 행자부의 비전으로 내걸었다. 오장관은 이미 취임 초기 공무원 사회에 팀제를 도입해 화제가 됐다. 부임하자마자 “조직의 혁신을 위해 민간기업처럼 팀제를 도입하겠다”고 공표한 오장관은 3월 말부터 팀제를 전격 실시했다. 결재는 최대 3단계가 넘지 않도록 조정하고 대부분의 권한을 팀장에게 위임해 팀원과 팀장 선에서 80% 이상 업무처리가 되게 했다. 지난 7월부터는 ‘하모니’라는 이름의 통합행정혁신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민간기업보다 행자부를 더 능률적인 조직으로 만들어야 고객만족, 즉 국민의 행복을 이끌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이제 CEO형 장관이 필요한 시대”라는 오장관은 시스템화된 혁신을 완성해 자신이 퇴임한 이후에도 행정자치부가 고객만족과 성과중심의 행정조직으로 남게 하겠다는 각오를 거듭 밝혔다.장관으로 취임한 지 벌써 1년이 돼 갑니다. 가장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과제는 무엇입니까.행자부를 완전히 바꿔 놓는 일입니다. 공무원 조직이지만 민간 조직보다 더 효율적인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 중입니다. 한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조직 중 하나로 손꼽히는 삼성보다 효율성 높은 행자부를 만드는 일에 역점을 두고 있습니다. 제가 도입한 팀제나 통합행정혁신시스템이 모두 행자부를 기업보다 능률적인 조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입니다. 사실 기업은 돈만 벌 수 있게 해준다면 어떤 것이든 효율적인 시스템이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는 국민의 삶의 질을 올리는 여건이나 제도를 만드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돈을 버는 일이 아니니 더 능률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반발도 있었겠죠.혁신에는 기본적으로 크고 작은 갈등이 따릅니다. 게다가 전통적인 공무원 조직을 바꾸니 당연히 저항이 있었겠죠. 팀제를 예로 들어봅시다. 지난 1월 팀제 도입을 선언하고 나니 웅성웅성하더군요. 공무원 조직이 어떻게 민간 조직과 같겠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저항과 갈등에 비해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으면 바꿔야 할 때가 온 겁니다. 따라서 반발하는 의견이 나왔을 때는 나머지 다수의 생각을 같게 만들어줘야 합니다. 전 직원을 모아놓고 연설을 했습니다. ‘지금 행정자치부의 할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국민의 기대수준에 맞습니까. 이대로 가면 어떤 위기상황이 오겠습니까.’ 약 40분간의 연설을 마친 뒤 전 직원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예정에도 없던 총 2시간30분 정도의 토론회가 마련됐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직원과의 사고 차이가 사라지더군요. 극렬한 반대가 있더라도 다른 구성원의 생각을 같게 만들어주면 저항하는 소수의 목소리는 힘을 잃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갈등관리입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역할이기도 하죠. 이렇게 전 임직원이 같은 생각을 갖고 출발선상에 서게 만든 다음에는 크고 작은 성과를 발굴해서 직원이 행복하다는 느낌을 갖게 해줘야 합니다. 저는 이제 행자부 내에 반발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봅니다.팀제 도입의 성과는 어떻게 보십니까.그동안 행정부처에서 ‘고객’과 ‘성과’의 개념은 무척 약했습니다. 한 예로 공무원 조직은 복식부기를 하지 않으니 예산을 효율적으로 썼는가에 대한 성과의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 아닙니까. 성과분석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나마 공급자 위주의 성과분석이었고요. 공무원 조직의 혁신을 위해서는 생각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성과’와 ‘고객’ 개념으로 일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 행자부에서는 직원들의 전화친절도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변화는 보이지 않는 사람과 대화하는 친절한 전화응대에서부터 나타납니다. 이것이 고객만족도의 시작이자 끝인 셈입니다. 행자부에서 시작된 팀제가 여러 다른 부처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수직의 계급조직에서는 효율성이나 창의성이 발휘될 수 없겠죠. 창의성 있는 아이디어가 어떻게 아래에서 위로 여러 단계를 거쳐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아이디어는 단계를 타고 올라가면서 점점 사라지게 되고 책임을 묻기도 어렵습니다. 이런 조직에서는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판단하기 어려워서 성과관리도 어렵습니다.결재단계가 많이 줄었다고 들었습니다.결재방식은 최대 3단계를 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 대신 부내의 중요 정책결정 사항은 장ㆍ차관과 1급 국장, 담당국장 등 10여명이 참석하는 정책조정회의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친 뒤 시행 여부가 결정됩니다. 기업의 중역회의처럼 정책조정회의를 만든 것입니다. 그 대신 일일이 결재하지 않아도 되는 업무의 결과 보고는 메모 보고로 대신하고 있습니다. 형식에 관계없이 해당 업무와 관련된 임직원 모두에게 정보를 동시에 전달합니다. 리플이 없으면 결재가 끝난 셈입니다.7월1일부터 시행된 통합행정혁신시스템 ‘하모니’의 운영성과도 궁금합니다.행자부의 통합행정혁신시스템 ‘하모니’는 민간기업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능률적입니다. 업무관리시스템을 기본으로 고객관계경영시스템(CRM)과 성과관리시스템인 BSC(균형성과표·Balanced Score Card) 시스템을 통합해 하나의 포털로 구성한 게 하모니입니다. 모든 업무처리가 고객과 바로 연결되고 이것이 다시 기록으로 남아 지식으로 남습니다. 이 지식은 곧 모든 이가 공유하게 되겠죠. 그러면 바로 평가시스템으로 연결되고요. 이렇게 평가된 업무는 인사와 급여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연결된 것은 어느 민간기업보다 앞서 있는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 모든 업무가 기록으로 남으니 일이 투명하게 처리됩니다.혁신에 의미를 두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또 그 과정에서 영향을 받은 인물은 없었습니까.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산업자원부와 KOTRA 사장을 거친 뒤 사회부처에 와보니 정부가 민간부문에 비해 경영적인 측면에서 뒤처져 있더군요. 경영학도 입장에서 공무원 조직을 보니 비효율이 너무 많았습니다. 질 높은 정책개발을 위한 시간이 부족한 셈입니다. 따라서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좋은 정책과 서비스를 생산해야 국민도 신뢰할 것 아닙니까. 특히 행정은 기존의 문화를 바꾸지 않으면 한계가 있습니다. 기업은 무한한 방법으로 혁신기법을 개발합니다. 하지만 행정은 틀 속에 갇혀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과거에는 행정이 앞서 있었다는 생각이 있지만 지금은 기업이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니 행정에도 경영을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잭 웰치 전 GE 회장입니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나와 생각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아, 정책을 세울 때도 이런 철학을 갖고 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죠.행정부처를 자주 삼성, LG 같은 민간기업에 비유하시더군요. 기업의 CEO 같은 장관상을 원하시나 봅니다.장관은 당연히 ‘CEO형 장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장관 이 된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그의 전문성은 발휘되기 어렵습니다. 경영자나 관리자는 조직의 비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1,000여명의 공무원 한사람 한사람이 전문가 아닙니까. 리더는 바로 이들의 지식을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CEO가 전문지식을 남발하면 사실 그 조직은 헤매게 되죠. 그들의 전문성을 높여주고 같이 토론해야 합니다.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모를 수 있는 용기, 무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관리자가 자신이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든 사항을 결정하려 들면 직원은 왜 필요하겠습니까. 관리자가 일정부분을 모르고 무시도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관이란 경영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하죠. 혁신만 아는 사람이 아니고요.(웃음)취임 당시 경제관료 출신으로 행자부 장관에 올라 의아해한 사람이 많았는데요.개각 때마다 산업자원부 장관 하마평에 오르고는 했죠.(웃음) 하지만 KOTRA 사장으로 일하면서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위원, 혁신관리위원회 위원장 등 ‘혁신’과 관련해 겸직하고 있는 일이 많았습니다. 따라서 제가 행자부를 맡게 된 것이 남들에게는 의아한 일일지 몰라도 저 스스로에게는 놀랄 만한 사건이 아닙니다. 기업에 전략본부가 있듯 정부에 전략혁신본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행자부입니다. 행자부가 먼저 바뀌어야 나라가 바뀌는 것입니다. 행자부는 혁신의 ‘모델하우스’입니다. 지방자치단체 등 다른 부처를 끌고 가려면 행자부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오영교식 혁신’을 한마디로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요.우선 ‘고객과 성과중심의 행정’, 더 압축하면 ‘고객중심의 행정’으로 최종평가는 고객이 하는 행정을 만드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시스템에 의한 혁신이죠. 사람중심의 혁신은 구성원이 바뀌고 나면 결국 오래가지 못합니다. 수작업에 의한 혁신은 손을 멈추는 순간 정지되는 것이죠. 하지만 시스템은 계속 돌아가는 것 아닙니까.전자정부 구현에서 행자부의 역할은 무엇입니까.기본적으로 전자정부는 그동안의 업무를 오프라인 방식에서 온라인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자정부와 행자부의 업무, 그리고 혁신작업은 떨어져 있는 개념이 아닙니다. 이 세 가지는 융합돼야 하는 개념입니다. 전자정부를 위해 목표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혁신을 위한 기본이 전자정부인 셈입니다. 그동안 전자정부에 대해 부분적으로 접근을 많이 해 왔는데 사실 전자정부는 전체 업무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합니다. ‘온라인적’ 사고가 정착돼야 한다는 뜻입니다. 일은 오프라인에서 하고 온라인 작업은 따로 하는 이런 작업은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그렇지만 인터넷 민원발급서비스의 위ㆍ변조 등 기술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습니다.위ㆍ변조 문제는 지나치게 매스컴에 부각되면서 일반 국민에게 오히려 불편을 주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물론 전자정부는 완벽한 시스템을 갖춰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또 완벽한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고요. 하지만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완벽한 방패라는 게 있겠습니까. 사실 일반 국민이 민원서류를 위ㆍ변조할 일이 있을까요. 이런 걱정은 전문 솔루션업체 관계자들끼리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그들과 같은 전문가 수준에서 위ㆍ변조가 가능하다는 점을 부각시킨 것 아닙니까. 전자민원은 두 가지의 검증수단이 있습니다. 각각 고유의 시리얼 번호가 있고 바코드도 있습니다. 이렇게 확인이 가능한데 어떻게 위ㆍ변조를 할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이런 과정 없이 오프라인으로 제출하는 서류야말로 위ㆍ변조가 가능한 것 아닙니까. 물론 그런 가능성을 막는 게 행자부의 일이겠죠. 그래서 모든 민원서류의 정보공개를 계획 중입니다. 서류를 다운받아서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하고 프린트하는 과정에서 위ㆍ변조 가능성이 생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보를 공개하고 민원서류를 받는 과정도 모두 없앨 것입니다. 현 수준에서 완벽을 지향하는 기술적 보완을 할 것입니다. 다만 민원서류를 받는 각 기관에서도 확인작업을 철저히 해달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결국 ‘공무원 철밥통’은 옛말이 되는 셈인데요. 안정적이라는 공무원 직업의 메리트가 사라져 인재가 떠날 우려는 없습니까.훌륭한 인재가 행자부에 지원하는 비율이 낮아지리라는 걱정에 대해서는 그 반대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KOTRA만 하더라도 혁신작업을 마치고 나니까 취업 선호도 조사에서 1위에 오르더군요. 대학가에 소위 ‘KOTRA고시’가 생겼다는 이야기까지 들었습니다. 동아리나 준비반도 생겨났고요. 사람은 일하는 보람이 있어야 합니다. 대접받고 싶고 사회적 평가를 받고 싶어 합니다. 돈만 갖고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행자부가 변하면 행자부의 역할이 강조될 겁니다. 또 대국민 서비스가 강화되면 원하는 인재상도 달라질 것 같은데요.제가 원하는 인재는 지식보다 마음이 준비된 사람입니다. 잠시 공부한 실력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으로 얼마나 준비돼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일하는 데서는 전문지식 하나가 큰 보탬이 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생각이 중요합니다.행자부의 변화는 국민들에게 어떤 혜택으로 돌아가게 될까요.‘고객과 성과중심의 세계 일류의 행정기관’을 행자부의 비전으로 정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모든 정책은 국민의 수요에 따른 것인지 또는 국민의 기대수준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하면서 세우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보면 정책에 대한 신뢰, 정부에 대한 신뢰가 이어지겠죠. 또 달라진 행자부에서는 정책이든 일이든 서비스든 생산할 수 있는 틀이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정책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만 빛을 볼 수 있습니다. 경쟁을 통해 발전시켜 가는 선의의 행정시스템을 만들면 이것이 모두 국민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정리=김소연 기자/사진=서범세 기자 약력: 1948년생. 66년 보문고 졸업. 73년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72년 제12회 행정고시 합격. 73년 국세청 사무관. 85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졸업. 90년 주일상무관. 92년 상공부 공보관. 99년 산업자원부 차관. 2001년 KOTRA 사장. 2005년 행정자치부 장관(현) △수상: 2002년 은탑산업훈장.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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