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마인드 무장…고객감동 ‘특명’

CRM, 균형성과표 등으로 성과관리 … 공무원 재교육 가속페달

‘혁신’을 외친 기업은 수없이 많았다.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변화 없는 기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이제 혁신은 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정부도 혁신의 진원지로 떠올랐다.정부는 혁신이 국가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봤다. 동북아경제 중심과 국민소득 2만달러라는 목표를 위해 세운 핵심전략이 바로 ‘정부혁신’이다. 이 같은 국가의 혁신을 이끌어가는 곳은 바로 행정자치부다. 모든 정부부처에 혁신담당부서를 신설했고, 특히 행자부에 정부혁신을 총괄하는 정부혁신본부를 설치했다.행자부는 정부혁신모델을 개발해 먼저 실천한 뒤 타 부처에 보급하고 있다. 행자부의 정부혁신본부는 다른 부처에 혁신시스템을 전파하는 일종의 ‘선도 컨설팅기관’인 셈이다. 이를 위해 정부업무관리시스템, 고객관리시스템(CRM), 균형성과표(BSCㆍBalanced Score Card)에 기초한 성과관리시스템도 만들었다. CRM과 BSC는 모두 기업의 마케팅, 경영전략에 활발히 사용돼 온 틀이다.최양식 행자부 정부혁신본부장은 “정부는 기업이 아니지만 기업식 혁신방법의 일부는 정부에 창조적으로 도입됐다”고 말했다. 최본부장은 이어 “국민은 공공재 소비를 위해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엄밀히 고객이 아니다”며 “하지만 정부가 고객개념을 정부에 도입한 이유는 국민만족 극대화를 위해서다”고 덧붙였다.행자부는 혁신 프로젝트에 뛰어든 뒤 가시적인 성과를 적잖게 거뒀다. 먼저 정부의 효율성이 높아졌다. 성과중심의 행정시스템이 만들어져 공무원의 능력을 체계적으로 평가하게 됐다. 직무성과계약제와 다면평가제, 고위직 성과연봉제, 성과관리시스템, 통합국정평가제도 등 기존 정부조직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제도가 도입됐다.고위공직의 개방 또한 확대했다. 부처간 국ㆍ과장급을 교류하고 중앙ㆍ지방간, 민간ㆍ정부간 인사교류 또한 늘려나갔다.행자부 혁신의 핵심에는 ‘국민ㆍ고객위주의 서비스 제공’이 놓여 있다. 행정서비스 체제를 고객중심으로 바꾼 정부는 고객이 어디서나 민원을 처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른바 ‘유비쿼터스 민원서비스’를 선보인 것. 민원인은 가까운 행정기관에서 민원을 신청하고 원하는 기관에서 민원서류를 찾을 수 있게 됐다. 유비쿼터스 민원서비스는 지난 7월부터 시작했다. 또 ‘홈택스 서비스’도 넓혀 나갔다. 인터넷 납세신고로 각종 증명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원서비스 처리시간 자체를 단축했다. 특허심사처리기간을 대폭 줄였다. 특허출원은 연평균 15.2% 늘었지만 심사처리기간은 오히려 19.5% 줄었다.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행정서비스의 민간위탁’도 확대했다. 민간의 효율성이 발휘되는 업무는 민간에 맡겼다. 관세청의 보세사 등록ㆍ교육업무,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기술 통계업무, 재경부의 자금세탁방지에 대한 검사업무를 민간에 아웃소싱했다.행자부는 정부의 성공적인 서비스 사례를 모아 ‘혁신사례집’을 만든다. 마치 기업에서 참고하는 ‘케이스스터디’처럼 이 혁신사례집을 다른 부처가 벤치마킹할 수 있도록 했다. 2005년 9월 말까지 내놓은 혁신사례집은 정부기관별로 총 120여권에 이른다.혁신사례를 살펴보면 먼저 관세청의 ‘통관현장에서 바로 보내는 택배’가 있다. 여행자는 입국할 때 들고 오는 짐을 입국검사장에서 세관통관 절차를 마친 후 직접 집에 들고 갈 필요가 없다. 여행자가 원할 경우 현장에서 바로 여행자의 집까지 택배를 보낼 수 있는 ‘여행자 휴대품 택배서비스’를 실행해서다. 고객만족도는 자연스럽게 극대화됐다.경찰청의 ‘학교안전 지키는 스쿨폴리스’도 혁신사례 가운데 하나다. 퇴직교원과 퇴직경찰로 구성된 스쿨폴리스를 부산지역 초중고교에 시범운영했다. 학교폭력 예방과 안전한 학교를 원했던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요구를 충족했다는 평가다.소방방재청의 ‘CBS 휴대전화 긴급재난문자방송 서비스’도 대표적인 혁신사례다. CBS(Cell Broadcasting Service)라는 이동통신기술을 이용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재난상황과 상황별 대처요령을 실시간으로 전달했다.행자부는 정부혁신 프로젝트 가운데 ‘깨끗하고 투명한 정부 만들기’에도 주안점을 둔다. 공직부패를 척결, 신뢰받는 정부를 만들기 위해 국가청렴위원회를 설립했다. 지난 2003년 5월에는 공직윤리의식을 높이기 위해 공무원 청렴윤리를 위한 행동강령을 제정한 바 있다. 이밖에도 재산심사 자동검사시스템, 주식백지신탁제도 등을 만들어 공직자 재산의 투명성을 꾀했다. 그 결과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TIㆍTransparency Index)가 상승했다. 2003년 133개국 중 50위에서 2004년 146개국 중 47위로 올라선 것.혁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국민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노력도 기울인다. 정책의 수립부터 평가까지 국민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 몇가지 제도를 마련했다.먼저 정책고객관리(PCRM)를 시작했다. 고객들에게 맞춤형 정책정보를 제공하고 의견을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는 원리다. 또 인터넷을 통한 쌍방향 의사소통 시스템을 만들었다. 정책 추진결과에 대한 평가를 모아 정책의 개발ㆍ운영에 반영하고 있다.국민제안ㆍ정책토론제도도 활성화시켰다. 참여마당 신문고를 마련해 온라인 국민참여 포털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국민제안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01년 316건, 2002년 571건에 그쳤던 국민제안 건수는 2003년 5만3,131건, 2004년 2만7,373건으로 늘었다.고충민원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 위해 ‘국민고충처리위원회’를 만들기도 했다. 조사관 중심에서 위원회 중심의 민원처리로 전환, 심의율을 높였다. 2004년 1,122건이었던 고충민원 심의건수는 2005년 5,434건으로 늘어 384%의 증가율을 보였다. 민원처리기간도 단축했다. 결재 경로를 간소화해 2004년 48.2일이던 민원처리기간을 2005년 36.3일로 25% 줄였다.행자부는 그동안 정책품질관리제도와 성과관리, 지식관리시스템 등을 도입해 정부의 정책역량과 성과를 극대화했다. 이 같은 혁신 프로젝트는 공무원들의 사고와 조직의 문화, 업무 프로세스를 바꿨다.IMD(국제경영개발원)와 WEF(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도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IMD 국가경쟁력 순위는 2004년 35위에서 2005년 29위로 올라섰다. WEF 국가경쟁력 순위 또한 2004년 29위에서 2005년 17위로 껑충 뛰었다.최양식 행자부 정부혁신본부장은 “이제 혁신을 세계와 함께해야 할 시점”이라며 “정부혁신은 이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 5월에는 제6차 정부혁신 세계포럼을 한국에서 개최했고 7월에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정부혁신 아시아센터를 서울에 설립했다”며 “2006년에는 UN(국제연합) 거버넌스센터를 한국에 만들 예정”이라고 덧붙였다.돋보기 행자부의 고객만족고객 위해 ‘변신 또 변신’지난해까지만 해도 행자부 공무원들은 타 중앙행정기관으로부터 ‘공무원 중에 가장 경직되고 권위주의적이다’는 말을 들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행자부에 전화나 방문을 할 때는 각오를 단단히 했을 정도.이 같은 행자부가 다시 태어났다. 지난 1월 오영교 장관이 취임하면서다. 이제는 일반 국민이나 타 기관 공무원들이 행자부에 전화를 하면 대부분 전화벨이 3회 이내 울리기 전에 받는다. 전화를 받으면 “감사합니다. ○○○팀 ○○○입니다”고 자신을 알려주도록 교육했다. 행자부는 전화 친절도를 혁신하기 위하여 매월 80개 팀의 전화 친절도를 측정, 순위를 공개하고 있다.행자부의 ‘하모니’(Hamoni)라는 통합행정혁신시스템에는 고객관리시스템(CRM)이 구축돼 운영 중이다. 행자부의 주요 고객인 민원고객이나 타 부처 공무원들은 단순한 질의나 업무상 승인 등을 청구한 후에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업무 결재과정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다. 또 업무처리 결과를 통보받은 후 고객은 처리 과정이나 결과 등에 대한 만족도를 물어보는 항목에 점수를 매기게 된다. CRM 평가점수는 행자부 각 팀들의 성과평가에 반영된다.고객에게 업무 처리결과를 통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행자부는 업무 처리 후까지 관리하고 있다. 해피콜을 전담하는 직원이 전체 일반민원의 25%에 해당되는 민원고객들에게 만족도와 불만을 묻는 전화를 한다. 그 결과는 바로 해당 팀에 전달된다.행자부는 특히 고객들과의 접점에서 일하는 직원관리를 중시한다. 친절한 기관을 만들기 위해 전화를 걸고 받는 예절을 지난 10월13~20일 교육했다. 방문시 또는 방문을 받을 때 필요한 전문적인 예절도 익히게 했다. 고객과 만날 때 호감을 줄 수 있도록 따뜻한 표정을 짓기와 대화기법 등 이미지 교육도 병행했다.행자부는 불과 9개월여 동안 고객지향적으로 변화했다. 낯설기만 하던 ‘고객’이라는 용어는 이제 고위공직자와 직원에게 익숙해졌다. 행자부 내에 만들어진 ‘고객만족팀’ 또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오영교 행자부 장관의 “모든 업무를 고객중심적으로 재검토하라”는 당부처럼 이제는 상관과 조직의 이익보다는 고객이익이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영훈 행자부 고객만족팀장은 “행자부의 변신이 법원, 검찰, 기획예산처 등 중앙행정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여과 없이 전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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