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찍고 ‘중동으로! 유럽으로!’

▷사례1 = 11월17일 오전 서울 삼성동 코엑스. 텔레비전 영상물 세계 메이저 배급사 중 하나인 디즈니 브에나비스타 인터내셔널 텔레비전을 비롯해 스타TV, 디스커버리TB, 니폰TV, 후지TV 등 해외 주요 방송사 관계자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바로 19일까지 열린 ‘제5회 국제방송영상견본시’(BCWW 2005)에서 국내 방송콘텐츠 구매 타진을 위해 VIP 바이어 200여명이 방한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120여명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4회까지 참가를 하지 않았던 이집트ㆍ헝가리ㆍ러시아ㆍ덴마크 등 아프리카, 유럽의 새로운 국가들이 참가해 우리 방송콘텐츠에 열띤 관심을 보였다. 이것은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계기가 됐다.BCWW는 올해 30개국 1,000여개 업체가 참여해 규모 면에서도 수준급이지만 한국 방송콘텐츠의 인기도 매우 높았다. 이번 BCWW에선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는 물론 계열사까지 총출동한 것을 비롯해 지역민방과 독립제작사 등 총 98개 업체가 184개 부스를 마련하고 전세계 바이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BCWW의 이날 풍경은 우리 방송콘텐츠의 현황과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자리였다.▷사례2 = 중국 난징(南京)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의 중국위성방송에서 방송되고 있는 관련 최신 보도 하나. 한 신혼부부가 시청문제로 부인이 자살을 시도했다는 보도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남편 장모씨가 “을 봐야 한다”는 부인 류모씨의 요구를 거부하고 유럽 에 채널을 고정하자 부인 류씨는 리모컨을 놓고 옥신각신했으나 남편이 끝내 양보하지 않자 최후통첩을 했다. 류씨는 “을 보게 하지 않으면 강물에 뛰어들겠다”고 경고했지만, 남편 장씨는 “뛰어들려면 뛰어들어”라며 채널을 바꿔주지 않았다. 부인은 이내 집을 뛰쳐나갔고 남편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TV 앞에서 축구를 봤다. 얼마 후 옆집 사람이 “부인이 강물에 빠졌다”며 대문을 두드렸고 장씨는 서둘러 중화먼(中華門) 창간차오(長幹橋)로 뛰었다. 장씨는 친화이(秦淮)강에서 몸부림치는 부인의 모습을 확인하고 강에 뛰어들어 류씨를 무사히 물 밖으로 구출하는 데 성공했다. 는 “이 신혼부부가 평소 금실이 좋다는 소문이 자자했으나 방영 후 오후 10시만 되면 심하게 다툰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이 두 가지의 풍경은 우리 방송콘텐츠의 산업적 성공과 전망, 인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우리 방송콘텐츠의 시장과 규모는 확대일로에 놓여 있으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각광받고 있다. 방송콘텐츠는 우리 영상시장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최근 들어 국내외 방송영상환경의 급변은 새로운 국내 방송콘텐츠의 새로운 도전과 발전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 디지털화의 가속, 방송기술 및 운영시스템, 규제제도 및 서비스 등의 급격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과 통신의 합종연횡으로 탄생한 글로벌 미디어 복합기업이 국경을 넘어 미디어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방송산업도 지상파 및 케이블의 디지털화 및 DMB(이동멀티미디어방송) 등 새로운 매체의 출현, IP-TV, 웹캐스팅 등 방송통신융합 서비스의 상용화 시대 도래, 한류의 지속에 따른 방송콘텐츠의 수출 붐 등으로 방송콘텐츠 제작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국내 방송영상산업시장 규모는 7조1,365억원(2003년 기준)으로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42개 사업자의 매출액은 3조5,482억원, 종합유선방송 1조750억원, 159개 방송채널 사업자는 2조3,023억원, 위성방송 사업자의 매출액은 1,496억원이었다. 이는 같은 해 영상콘텐츠의 또 다른 축인 영화산업시장 규모가 2조3,444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방송시장이 크고 중요한지를 짐작케 한다.우리 방송콘텐츠의 해외수출도 급증하고 있다. 한류는 이제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를 넘어 남미, 중동, 유럽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발표한 ‘2004년도 방송프로그램 수출입 현황’에 따르면 2004년 한해 해외로 수출된 우리 방송 프로그램의 수출액은 2003년에 비해 무려 69.6%가 증가한 7,146만달러(약 714억원)였고 해외 프로그램의 수입은 2003년에 비해 10.8% 증가한 3,109만달러로 나타나 수출이 수입의 두 배에 달했다.이 같은 수치는 방송콘텐츠 시장의 잠재력이 엄청나고 방송콘텐츠의 성공 여부에 따라 국내 영상산업 발전이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외형 속에 숨겨진 속내를 보면 방송콘텐츠 환경은 낙관만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상파 방송은 낮방송 연장을 결정했지만 시청자를 잡을 수 있는 킬러 콘텐츠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인데다 상당시간의 방송을 재방송으로 메우고 있는 실정이며 프로그램의 질적 편차가 매우 크다.또한 케이블방송과 위성방송의 방송콘텐츠를 제공하는 프로그램공급자(PP)는 190여개에 이르지만 80여개는 사실상 이름뿐인 업체다. 이외에는 영화(29개), 스포츠(8개), 드라마(8개) 등이며, 독자적인 방송콘텐츠 제작은 고사하고 나머지 PP사들도 지상파 프로그램을 재방하거나 외국에서 값싸게 들여온 수입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다. 그야말로 상당수 케이블방송과 위성방송이 지상파 방송과 외국 프로그램의 방송 또는 재방송 기지로 전락한 것은 방송콘텐츠의 빈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방송학자들과 방송 현업 종사자들은 “지상파 디지털TV가 상용화될 경우 전체 방송매체의 채널수는 500여개를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개선되지 않으면 500여개의 채널 중 수십개 채널이 같은 시간대에 똑같은 방송콘텐츠를 전송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로 방송콘텐츠 제작환경은 열악하기만 하다.지상파TV와 케이블, 위성방송, DMB채널에 콘텐츠를 제작해 공급하는 외주제작사의 상황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416개에 달하는 외주제작사는 1개사 평균 인원 15명, 연간 제작능력이 305시간 미만인 소규모인데다 큰 이익만을 꿈꾸며 제작 인프라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소자본으로 마구 진출해 과잉경쟁을 낳았으며 그 결과 자본잠식은 물론 콘텐츠 제작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드라마 한 편을 제작하고 도산하는 제작사들이 허다하다.콘텐츠 제작의 핵심주체인 지상파, PP, 외주제작사들이 안고 있는 문제가 방송콘텐츠의 도약적인 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들은 눈앞의 시청률과 수익에만 매달려 방송콘텐츠 제작을 위한 선진적이고 실험적인 노력을 게을리 해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 또한 독립제작사와 PP들은 자본과 인력의 부족 때문에 양질의 콘텐츠의 지속적인 제작이 어려우며 적정이윤을 창출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수익을 내더라도 제작 인프라 구축 등에 재투자를 하지 않아 함량 미달의 프로그램을 양산하고 있다.하지만 방송콘텐츠의 미래는 비관보다 낙관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일단 국내외의 방송콘텐츠의 수요 폭발이다. 텔레비전 방송채널의 급증과 함께 DMB, IP-TV 등 새로운 매체의 부상, 그리고 방송통신의 융합으로 인한 콘텐츠 상호성 증가, 한류로 인한 해외에서의 수요 급증은 콘텐츠의 발전에 기폭제 역할을 한다.또한 자산운용관리법 개정 등으로 문화펀드 가 등장하고 이로 인해 방송콘텐츠의 자본유치가 용이해지는 것은 방송콘텐츠의 제작에 매우 유리한 이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캐릭터시장의 활성화 등 콘텐츠로 인한 수입창구의 다변화 역시 방송콘텐츠 미래를 밝게 해주는 요인이다.방송전문가들은 “국내 방송콘텐츠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방송콘텐츠 사업자들이 우수한 제작인력을 양성하는 등 양질의 콘텐츠 제작 기반을 탄탄히 해 다채널에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역설한다.이를 위해 방송사를 중심으로 보다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데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하며 방송콘텐츠의 질을 향상시키고 제작인력을 양성하는 데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고 독립제작사와 PP도 합병과 자본유치를 위해 경험을 통한 안정적인 인력양성과 인프라 구축에 재투자할 수 있는 탄탄한 재정구조의 필요성을 충족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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