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는 ‘초일류’, 국내서는 ‘푸대접?’

삼성은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회사다. 임직원들의 자부심도 넘쳐나는 곳이다. 삼성은 매출 135조원(2004년 기준), 세전이익 19조원의 초일류기업이다.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력도 지대하다. 한국 전체 수출과 상장주식 시가총액의 20% 이상을 차지한다.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은 것일까. 한편에서는 삼성이 ‘한국경제를 먹여 살린다’는 찬사가 쏟아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정관계는 물론 언론과 검찰, 사법부까지 움직이는 삼성공화국’이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지난 5월 이건희 삼성 회장의 고려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장에서 학생들이 반대시위를 벌인 것을 시작으로 X파일사건, ‘금융산업의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의 ‘삼성 봐주기’ 의혹 등이 잇달아 불거지면서 ‘삼성공화국’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게다가 국회의 올 정기국정감사가 ‘삼성국감’으로 불릴 정도로 일부 정치권 인사들이 삼성을 세차게 몰아붙이고 있고, 법원이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과 관련해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삼성 지배구조 및 후계구도에 관한 도덕성 논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세계 곳곳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초일류기업들과의 승부를 걱정하고 준비해야 할 삼성이 국내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공세를 방어하는 데 경영역량을 집중해야 할 판이다.불법상속인가, 아니면 순수한 자금조달 목적인가. 삼성 오너일가의 지배구조 문제는 메카톤급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등 총수일가가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에버랜드 CB를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에게 넘겼다’고 인정한 법원판결은 삼성에는 적잖은 타격이다.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96년 10월 자본금을 늘리기 위해 CB 99억5,000만원치를 주당 7,700원에 전환할 수 있는 조건으로 발행했다. 그러나 제일제당을 제외한 에버랜드의 기존 주주였던 계열사들이 CB 인수를 포기해 CB의 97%가 실권됐다. 그해 12월 에버랜드 이사회 의결을 거쳐 이회장의 네 자녀가 이를 인수했다. 이상무는 이듬해 이 CB를 주식으로 전환해 지분 25.1%를 가진 대주주가 됐다.에버랜드는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 등으로 이어지는 삼성 지배구조의 정점이다. 이상무가 에버랜드의 대주주가 되면서 삼성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무난하게 이뤄진 것으로 보였다.하지만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삼성 계열사들이 사전에 짜고 CB 인수를 포기함으로써 이상무를 에버랜드의 대주주로 만들었다는 것. 이 과정에서 에버랜드 경영진이 장외에서 고가(검찰주장 8만5,000원)로 거래되던 CB를 헐값에 넘김으로써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고 지적했다. 2000년 6월 참여연대와 곽노현 방송대 교수 등 43명은 이회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고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1심 재판부가 판정을 내린 것이다.삼성은 이번 판결에 대해 승복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항소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양측간 쟁점은 크게 3가지다. CB 발행의 목적과 적정가격, 배임죄 성립 여부 등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당시 CB 발행이 에버랜드의 자본금 확충 및 부채비율 인하를 위한 조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정인에게 지분을 넘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해명이다.CB 가격도 시민단체의 주장처럼 터무니없이 저가로 책정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객관적인 외부 평가기관에 의뢰해 주당 자산가치를 따진 뒤 이보다 10% 비싼 액수로 결정했다는 설명이다.재계는 이번 판결로 인해 삼성의 지배구조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96년 발행한 CB를 무효화하지 않는 한 이상무 등의 지분은 법적으로 유효하기 때문이다.다만 삼성이 우려하는 것은 이번 재판의 쟁점 사안이었던 ‘CB 적정가격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이다. 검찰이 이회장과 이상무 등을 소환조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개정안도 삼성의 발목을 잡고 있다. 금산법 제24조는 재벌의 금융 계열사가 비금융 계열사의 의결권 주식을 단독으로 20% 이상 또는 다른 계열사와 합쳐 5% 이상 보유할 경우 금융감독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문제는 이번 개정안 부칙 4조 2항이 ‘삼성 봐주기’의 일환이라는 일부 의원들의 집요한 공세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금산법 개정안 부칙 4조 2항은 ‘1997년 3월 금산법 발효 당시 금산법 또는 설립근거법에 의해 승인 없이 취득한 지분은 예외로 한다’는 단서가 붙어 있는데 이 조항이 삼성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삼성카드와 삼성생명은 금감위의 사전승인 없이 각각 에버랜드 지분 25.64%와 삼성전자 지분 7.23%를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97년에 갖고 있던 삼성전자 지분 7.23%까지는 금산법상의 별도 승인절차 없이 계속 보유할 수 있게 된 셈이다.하지만 일부 정치권 인사와 참여연대는 법률을 소급 적용해 한도 초과분을 처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논란이 거세지자 청와대가 중재에 나섰다. 삼성생명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7.23%는 인정하되 삼성카드가 금산법 이후 취득한 에버랜드 지분 25.64% 중 5% 초과분은 처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자는 절충안을 낸 것이다.하지만 삼성측의 입장은 다르다.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 초과분인 20.64%를 처분해도 경영권 유지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매입할 곳도 마땅치 않고 지분가치 평가에 따른 특혜논란 등에 휘말릴 소지가 있다고 반박했다.또 일부 정치권에서 주장하는 대로 삼성생명이 5%를 초과해 보유 중인 삼성전자 지분 2.23%를 매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2.23%를 비금융 계열사에 분산해 매각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지만 출자총액제안에 걸려 불가능하다. 게다가 M&A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도 높다.삼성이 지난 6월 말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대한 위헌소송을 내면서 그 근거로 삼성전자가 적대적 M&A에 취약한 지분구조라는 점을 들었다. 이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인 지분은 17.72%에 불과한데 외국인 지분은 54.13%로 언제든지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금산법 자체가 이미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을 분리하고 있는 공정거래법과 중복된 과잉규제이고, 5% 초과 지분을 의결권 제한에 그치지 않고 강제로 처분하도록 하는 것은 기업의 재산권 침해라는 견해도 만만찮다. 더군다나 삼성생명은 금산법 제정 이전에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카드는 제재규정 신설 이전에 에버랜드 지분을 확보한 상태다. 이를 나중에 팔라고 하는 것은 소급입법에 다름없다는 것이다.삼성이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삼성공화국론’이 제기된 배경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삼성공화국론’은 삼성이 단순한 한국의 간판기업이 아니라 막강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입법과 행정 등 모든 분야에 영향력을 미치는 ‘권력 중의 권력’이라는 것이다.‘삼성공화국론’이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은 지난 5월 이회장의 고려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장에서의 학생들의 반대시위 이후다. 이후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과 금산법 관련 삼성 봐주기 의혹 등이 터지면서 ‘삼성의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게 일었다.삼성은 지난 6월 초 최고경영진 회의를 열어 ‘삼성공화국’ 논란의 원인과 현상을 분석한 결과 ‘단 1%의 반대세력도 포용하자’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삼성 때리기’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참여연대는 ‘삼성보고서’ 시리즈를 발간하며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참여연대는 “삼성은 공직자와 법조, 언론 등에서 278명의 주요 인사를 영입했다”며 “삼성이 우리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차원을 넘어서 그것을 아예 장악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이밖에 총수일가가 순환출자 방식을 통해 4.4% 가량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나 이른바 ‘무노조 경영’ 등도 삼성 비판의 주된 내용이다.삼성은 최근 ‘인재 싹쓸이’라는 여론을 의식해 국내에서는 더 이상 인재 스카우트를 하지 않기로 했는가 하면 지난 추석 때는 괜한 오해를 사지 않겠다며 정ㆍ관계, 언론계 인사들에게 관례적으로 해오던 추석선물도 하지 않았다. ‘바짝 엎드리고 있다’는 삼성 관계자의 귀띔처럼 최대한 몸 낮추기에 나서고 있지만 삼성그룹을 둘러싼 정치권과 시민단체 등의 공방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돋보기 / 삼성그룹 경쟁력 현주소매출 135조… 한국경제 기여 ‘절대적’삼성그룹이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지대하다. 63개에 이르는 계열사들에서 발생하는 매출액, 수출량, 순이익은 한국경제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 외환위기 전만 해도 5대 재벌 가운데 하나에 그쳤던 삼성그룹은 현재 경쟁상대가 없는 막강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우선 매출액을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으로 135조5,000억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해 한국의 GDP인 7,220억달러의 20%에 육박하는 규모다. 수출의 경우는 더욱 강력하다. 지난해 527억달러를 수출해 전체 수출의 20.7%를 차지했다. 벌어들이는 돈이 엄청난 만큼 납세액도 어마어마하다. 2003년 기준으로 삼성그룹은 모두 6조5,000억원의 세금을 냈는데 이는 정부 조세예산의 6.3%에 해당한다. 증권시장에서 삼성그룹의 위세는 ‘무적’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14개 상장 계열사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기준으로 90조8,000억원으로 전체 상장사의 시가총액의 22.4%에 달한다.삼성그룹의 대표기업인 삼성전자 하나만 놓고 봐도 삼성의 위력을 실감하기에 충분하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100대 기업 전체 매출액의 11%에 해당하는 57조6,32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해 우리나라 GDP의 7.4%에 해당한다.당기순이익은 10조7,867억원으로 전체의 21.7%를, 시가총액은 66조3,584억원으로 전체의 20%를 차지했다. 특히 당기순이익 10조원을 돌파한 기업은 세계적으로 열손가락에 꼽을 정도여서 삼성전자의 세계적인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으로 평가된다.삼성그룹의 막강한 외형적 성장을 견인한 것은 두말할 나위 없이 제품의 경쟁력이다. 삼성그룹에 따르면 2005년 2월 현재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제품인 ‘월드 베스트 제품’은 모두 18개에 달한다. D램과 S램 등 반도체 제품과 모니터, CDMA 휴대전화, 컬러 브라운관 등이 대표적인 제품들이다.제품의 경쟁력은 기술력에서 나온다. 삼성전자는 기술력을 측정할 수 있는 특허 부문에서도 두드러진 활약을 보이고 있다. 미국 특허청이 발표하는 특허등록 최다 기업 순위에서 2002년 11위에서 2003년 소니를 제치고 9위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인텔, 도시바, 히타치를 끌어내리고 6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쟁쟁한 글로벌 기업들을 연이어 끌어내리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삼성그룹의 브랜드 파워가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99년 31억달러에서 2001년 64억달러를 거쳐 지난해에는 125억달러를 기록했다. 2~3년마다 두배씩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세계 21위다.삼성그룹의 계열사들은 제조업은 물론 금융업종에서도 상당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에 따르면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등 삼성의 금융 계열사는 9개사로 대부분 해당 업종의 선두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상태다.삼성의 힘은 광고시장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지난해 삼성그룹이 집행한 광고비는 TV광고 1,665억원, 신문 1,225억원 등 모두 3,091억원에 이른다. TV의 경우 전체 광고수익의 9.07%, 신문의 경우 13개 일간지 매출액의 6.48%가 삼성의 광고로 발생했다. 이 한국광고데이타(KADD)의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 수치는 이보다 높다. 주요 방송사와 일간지 광고 매출의 8.0%가 삼성의 광고에 의존하고 있었다. 일부 일간지의 경우 삼성 의존도가 15%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사회공헌 규모도 적수가 없다. 삼성그룹은 올해 5,000억원을 사회공헌에 지출할 계획이다. 이는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이라고 알려진 다른 기업보다 대략 10배 이상 많은 규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사회공헌 사업인 삼성어린이집에만 올해 500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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