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물러설 곳 없다’… 배수진 쳐

“한국시장을 놓치면 미래가 없다.”일본 가전업체의 한국시장 공략이 전에 없이 적극적이다. 한국시장만 장악할 수 있다면 모든 걸 ‘올인’하겠다는 태세다. 마케팅 현장은 전쟁터나 다름없다. 시장점유율을 올리기 위한 신규 프로젝트ㆍ이벤트가 연일 쏟아진다. 수치화된 목표는 없다. ‘가능한 최대 수준까지 늘릴 것’을 명받았다. 경쟁은 한층 치열해졌다. 자존심은 버린 지 오래다. 필요하다면 ‘바겐세일’까지 불사한다. “고객의 눈길ㆍ손길ㆍ발길을 잡을 수만 있다면 뭐든 할 것(S사 관계자)”이라는 게 영업현장의 분위기다.그간 일본 가전업체의 한국시장 공략은 가시밭길 그 자체였다. 진출 당시 첫출발은 화려했지만 상당수 일본기업이 곧 임계점에 도달했다. 한국시장은 뚫을 수 없는 ‘묵묵부답’의 철옹성에 가까웠다. “한국에선 팔아먹을 게 없다”는 자포자기까지 떠돌았다. 일본 임직원들의 한국근무도 적잖이 꺼려졌다. 세계시장에서 쌓은 명성을 확대ㆍ유지하기는커녕 자칫 떨어뜨리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잘해야 본전이란 느낌이 팽배했다. 그래서 찾은 게 기업거래(BtoB)였다. 개인시장의 열세를 기업고객에서 만회해 보자는 일종의 틈새전략이었다. 다만 기업거래조차 최근에는 ‘레드오션’화되는 추세다.한국시장 공략에 고전을 면치 못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작용한다. 우선 한국 토종기업의 경쟁력이 급성장한 게 일본기업으로서는 부담스럽다. 삼성ㆍLG전자의 부상이 대표적이다. 휴대전화ㆍ컴퓨터부터 백색가전에 이르기까지 한국 메이커들의 질주가 계속되고 있다. 고가의 일본제품과 비교해 손색이 없을 만큼 완성도가 높아졌다. 가격경쟁력도 일본기업의 한계다. 이제 한국 소비자들은 굳이 비싼 일본제품을 사기보다 저가ㆍ양질의 한국산 구매에 더 익숙하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고질적인 반일감정도 그때그때 발길질을 해댄다. 마케팅만 해도 수세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그랬던 게 최근에는 대대적인 공세로 전환됐다. 불과 2~3개월 전이 터닝포인트다. 실제로 7월 이후 일본 가전업체들의 행보가 부쩍 빨라졌다. 소비자를 유혹하는 이벤트도 증가세다. 이는 하반기를 노린 적극적인 마케팅 노림수다. 파나소닉코리아 관계자는 “올해를 제2의 도약기로 삼고 보다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한국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자신감도 엿보인다. 여기엔 일본 본국의 경기부활이 힘을 실어줬다. 증권가에선 일본 본사의 글로벌시장 장악 전략에 주목한다. 대부분의 일본기업이 본격적인 경기회복 수혜를 최대화하기 위해 국내외의 매출확대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이다.일본 가전업체가 선택한 한국시장 반격 스토리의 뼈대는 크게 3가지다. 일단 가격경쟁력의 확보다. 한국제품과 경쟁하기 위해선 가격할인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대부분의 일본 메이커들은 일종의 고정관념이었던 ‘Made in Japan = 고가 프리미엄’ 이미지조차 과감히 깬 저가전술을 펼치는 중이다. 가령 샤프전자는 37인치 LCD-TV 가격을 50만원(498만원→448만원)이나 떨어뜨려 삼성ㆍLG전자를 위협하고 있다. 일부 상품은 한국산보다 더 저렴하다. 소니코리아도 지난 7월 PDPㆍ프로젝션TV를 모델별로 약 100만원 넘게 대폭 깎아주는 행사를 가졌다. 매출이 2배나 늘어나는 폭발적인 반응 속에 회사측은 할인행사를 연장 실시 중이다. ‘덤’ 마케팅과 경품행사도 한창이다. TV를 사면 공기청정기를 주거나 고액의 경품을 내거는 식이다.공격적인 행보의 또 다른 한 축은 신제품의 대거 출시다. ‘테스트베드’(신제품 시험무대)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는 한국시장에 첨단기술이 적용된 신제품을 내놓음으로써 기선제압에 나서겠다는 의도다. 일례로 최근 소니코리아는 17ㆍ19인치 LCD-TV 신제품을 선뵌 데 이어 가능한 빨리 중대형 제품까지 출시할 예정이다.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 노트북 등의 라인업 강화는 기본전제다. 샤프전자와 JVC코리아 등도 다양한 디지털 신제품의 연내 출시를 선언했다. 파나소닉코리아는 메인 아이템인 음향ㆍ영상부문 이외에 면도기ㆍ카오디오ㆍ안마의자까지 취급한다.신규시장 진출도 잦아졌다. 최근 도시바코리아는 주력인 노트북에 이어 소형가전까지 팔겠다고 공식발표했다. 공기청정기ㆍ전기밥솥 등을 필두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또 소니와 올림푸스는 MP3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다. 서경원 소니코리아 마케팅&커뮤니케이션즈팀장은 “올 하반기에 이전보다 더 다양한 제품을 출시해 제품라인업을 전면 확대할 예정”이라며 “세분화되고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통해 기존고객 유지와 잠재고객 확대를 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그간 한계로 거론된 사후서비스(AS)망도 강화하고 있다.차별화 전략도 전면에 내세워진 공격 포인트다. 일본 특유의 첨단기술을 최대한 반영해 제품의 차별성을 부각시킨다는 계획이다. 축적된 기술력과 디자인 파워를 내세운다면 한국제품과 맞붙어도 승산이 있다고 봐서다. 그도 그럴 게 차별적인 제품 출시는 출혈경쟁을 비켜가는 지름길이다. 가령 소니는 소니만의 스타일을 강조한 ‘소니다움’(Sonyness)이란 단어까지 만들어냈다. 소니다움이 느껴지는 독특한 제품들로 비교우위에 서기 위함이다.파나소닉코리아도 첨단 신기술을 활용, 타사 제품과의 차별화에 승부수를 던졌다. 디지털카메라 전 제품에 ‘손떨림 방지기능’을 장착한 게 대표적이다. 올림푸스한국은 마케팅 차별화에 성공했다. 브랜드 구축 차원에서 프로모션ㆍ마케팅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결과 돋보이는 실적 향상을 이뤄냈다. 신용노 올림푸스한국 마케팅전략팀 대리는 “설립 때부터 독립법인을 고수해 토착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며 “한국시장 상황에 맞는 독창적인 마케팅과 독립적인 제품개발이 최대 강점이다”고 말했다.한편 일본 가전업체의 한국진출 역사는 짧다. 90년에 설립된 소니코리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메이커들은 99년 한국 정부의 수입선다변화 품목해제 이후 한국땅을 밟았다. JVCㆍ파나소닉ㆍ도시바ㆍ샤프 등은 2000년 이후 주로 현지법인 형태로 설립됐다. 당시 일본 쪽에선 한국시장을 아시아 최대 규모로 규정할 만큼 각별한 애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진출 초기에는 소수의 전문ㆍ특화상품 판매에 집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품목다변화에 공을 들였다.INTERVIEW 박상태 소니코리아 AV마케팅팀 프로덕트매니저‘한국은 전략시장, 공들이는 건 당연’최근 한국시장에 대한 마케팅 속도를 가속화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가.최근 한국시장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죠. 다양한 제품군 전반에 걸쳐 신규 브랜드를 속속 내놓고 있어요. 하반기에는 보다 다양한 제품들을 통해 한국시장 공략에 나설 겁니다. 특히 한국시장의 경우 다양한 IT 최첨단 기술의 ‘테스트베드’(신제품 시험무대)’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특수성을 고려해 신기술 및 첨단기술을 탑재한 신제품에 승부를 걸 거예요. 소니는 한국시장의 성장잠재력 및 중요성을 매우 크게 점치고 있습니다.한국시장 공략을 위한 마케팅 전략은.LCD-TV 시장과 관련해 지난 6월 각각 17ㆍ19인치의 MFM-HT75W와 HT95 제품을 LCD-TV 첫 제품으로 내놓았습니다. 이어 하반기에 가능한 한 빨리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32ㆍ40인치대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에요. LCD-TV 외에도 프로젝션TV 등 다양한 제품군에서 신제품을 내놓으며 보다 공격적인 마케팅 정책을 펼쳐 한국 소비자에게 더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마케팅 전략 측면에서도 수십년에 걸쳐 축적된 소니의 기술력과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작정입니다. 기술혁신을 통해 한국시장을 넓혀나갈 계획입니다.한국 가전시장의 특징은 뭐라고 보나.한국시장은 유난히 신기술, 신제품에 대한 선호가 강합니다. 가령 42인치 이하 시장에서는 LCD-TV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역력하죠. 50인치 이상 시장에선 합리적인 소비자의 경우 LCD 프로젝션TV를, 인테리어나 화질을 생각하는 고객은 PDP를 좋아합니다. 소니가 한국시장 특유의 특성과 고객선호도에 맞춰 신제품을 최대한 빨리 소개하는 것도 이 때문이죠.소니에 있어 한국시장이 갖는 의미는.한국시장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에 비해 시장규모는 작지만 신기술에 대한 빠른 적응력과 세계 최고의 IT 보급률이 특징적이에요. 또 삼성ㆍLG전자와 직접 경쟁하는 시장이기도 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소니 역시 한국시장을 주요 전략시장 중 하나로 생각합니다. 전략시장인 한국을 타깃으로 현재 성장잠재력이 가장 큰 LCD-TV를 소개하는 건 당연한 결과죠.향후 한국시장 공략목표와 시장전망을 한다면.신제품 출시 등을 통해 한국시장에서의 판매비중과 점유율을 한층 높여나갈 계획입니다. 가령 올 하반기에 소니의 신기술이 적용된 32ㆍ40인치 LCD-TV 등을 한국 소비자들에게 선뵐 예정입니다. 이뿐만 아닙니다. 여러 제품군에서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해 소니의 자존심을 회복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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