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가 원인 된 전쟁·정변 ‘수두룩’

국가간 자원확보 싸움 일상화 … 외교전도 갈수록 치열

2004년 1월31일 서부텍사스중질유(WTI) 가격은 배럴당 33.05달러였다. 1년 8개월 만에 정확히 이 가격은 배로 뛰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로 비관적 전망이 지배했을 때는 배럴당 70달러를 넘기도 했다. 당연히 ‘에너지 대란’이 몰려올 수 있다는 보도가 외신을 뒤덮었다. 자칫 안정적 석유공급선을 확보하지 못한 나라는 국가적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비관론도 나왔다.돌이켜보면 1973년 1차 오일쇼크 때는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가격을 4배 가까이 인상했다. 지금보다 훨씬 절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석유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한 나라의 안보와 미래까지 좌우하는 변수라는 인식이 요즘처럼 보편화된 적은 없었다.세계는 이제 정치이념으로 대립하던 이데올로기시대를 벗어나 자원확보를 둘러싼 전쟁터로 바뀌고 있다. 이른바 ‘자원전쟁’(Resource War)이 일상화된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자원의 소유와 이권, 개발권, 수송로 확보를 둘러싼 갈등이 국가간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원전쟁은 흔히 말하는 경제전쟁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석유가 갖는 중대 의미를 처음 인식한 것은 2차대전 때였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의 승패가 석유확보에 달렸다고 판단한 독일은 1939년 개전과 동시에 코카사스 유전지대를 점령했다. 이에 미국, 영국 등 연합국이 독일, 일본 등 추축국에 대해 1940년 석유금수 조치를 취하며 반격했다. 하지만 독일은 1942~1943년 북아프리카 유전지대를 확보하며 장기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미국, 동인도제도 등에서 석유를 공급받던 일본도 어떻게든 석유 공급선과 수송라인을 확보해야 했다. 결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유전지대로부터 일본 열도에 이르는 석유수송선을 지키려고 진주만을 침공, 태평양전쟁이 일어난 것이다.미국-이라크전쟁에 이르기까지 끊이지 않고 일어난 중동분쟁도 석유를 둘러싼 이권다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중동 페르시아만 일대에는 전세계 석유 매장량의 65%(6,730억배럴)가 몰려 있다. 이 지역 석유를 값싸고 원활하게 공급받을 수 있도록 강대국들의 정치공작과 군사조치들이 취해져 온 것이다. 1950년대 초 이란의 모사데그 총리가 유전을 국유화했을 때 미국과 영국이 연합해 모사데그 정권을 전복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73년 이스라엘과 아랍국간의 제4차 중동전이 벌어졌을 당시에는 미국이 이스라엘 편을 들었고 아랍국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통해 대미 석유수출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스라엘에 우호적인 나라들에 대해서도 석유수출을 금지하거나 제한, 석유자원을 처음으로 무기화했다. 이른바 1차 오일쇼크였다.70년대 초까지는 엑슨모빌, BP 등 석유메이저들이 사실상 유가를 결정해 왔다. 중동 산유국의 의사는 무시된 채 수급과는 관계없이 저렴한 가격대를 유지했다. 중동 산유국들이 이런 ‘횡포’에 처음으로 단합해 반기를 든 것이 1차 오일쇼크를 촉발시킨 것이다. 73년 10월 배럴당 5.4달러였던 두바이유 가격은 두 달 만에 17달러로 폭등, 세계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왔다.2차 오일쇼크는 78년 이란의 친미정권이던 팔레비 왕정이 민중혁명에 의해 붕괴되면서 일어났다. OPEC 회원국 중 석유수출 2위였던 이란이 원유생산을 중단했고 OPEC도 기습적으로 유가를 인상했다. 석유시장에서 잇따라 매집 경쟁이 벌어졌다. 오일쇼크 직전인 78년 11월 배럴당 13.66달러이던 유가는 80년 11월 42.25달러로 3배 가량 뛰었다.미국은 아랍민족주의의 힘에 크게 당황했고 안정적인 중동 석유공급이 위협받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80~88년까지 계속된 이란-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은 이라크를 지원, 이란을 견제하게 된다. 또 80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자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페르시아만을 침공하려는 외부세력의 어떤 시도도 미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겠다는 ‘카터 독트린’을 발표했다. 페르시아만 석유에 손대지 말라는 경고였다.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도 쿠웨이트가 이라크 영토와 가까운 루마일라 유전에서 석유를 과도하게 채굴했다는 것이 빌미가 됐다. 페르시아만과 인접한 카스피해와 남중국해 일대도 석유자원을 둘러싼 각종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페르시아만 북부, 이란 서쪽에 위치한 카스피해는 페르시아만 다음으로 많은 2,700억배럴의 석유가 묻혀 있다. 천연가스 매장량도 막대한 규모로 추산된다.미국과 러시아의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이 지역 국가간의 석유다툼도 잦아지고 있다. 99년 이슬람 반란군이 러시아 남부 다게스탄공화국을 공격했고 러시아는 반란군이 도피한 체첸에 총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우즈베키스탄 군대가 카자흐스탄 영토를 자기네 땅이라며 점령하기도 했다. 겉으로는 종교와 민족간 갈등으로 비쳐지지만 이 역시 석유자원 전쟁으로 볼 수 있다.이 와중에도 석유메이저들은 카스피해 유전 개발권을 따냈고 아제르바이잔과 카자흐스탄 근해에서 시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흑해 연안으로 석유와 가스를 운송할 파이프라인도 건설하고 있다.중국과 일본이 치열한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는 대만과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으로 둘러싸인 태평양의 한 부분. 이곳은 중요한 해상무역로일 뿐만 아니라 해저에 상당량의 원유와 천연가스가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때문에 중국은 스프래틀리군도에 해군기지를 세웠고 일본과 필리핀은 중국 군대를 몰아내기 위해 미국과 협력하기도 했다.자원전쟁은 외교전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자원외교’란 말이 생긴 것도 그래서이다. 미국은 조지 W 부시 대통령 집권 1기 초반에 ‘국가 에너지정책 개발그룹’을 구성, ‘국가 에너지정책’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는 에너지 안전 보장을 외교통상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상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카자흐스탄, 러시아 등과 석유, 천연가스 개발에 관한 우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일본 역시 종합상사 등 민간기업을 총동원해 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에 대규모 경제지원을 해주는 대신 천연자원 독점개발권을 해당국 정부로부터 사들이고 있다. 전통적 앙숙인 중국과 인도는 해외자원 개발을 위해 협력한다는 양해각서를 최근 교환하는 등 자원외교에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전세계 석유의 고갈에 대비한 대체연료 개발 경쟁도 뜨거워지고 있다. 고유가로 인해 대체연료의 채산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천연가스를 이용해 만든 액체연료인 GTL(Gas to Liquid)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GTL은 수요지까지 운송이 손쉽고 연소 효율이 뛰어나 경유를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연료다. 로열더치셸 등 석유메이저들이 천연가스 생산국과 공동으로 제조기술을 개발, 상업생산을 주도하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과 신일본석유 등 기업연합도 2011년 상업화를 목표로 GTL 관련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원유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모래덩어리인 오일샌드(Oil Sand)도 대안 중 하나다. 관련 기술의 발달로 생산 원가가 2년 전의 절반 이하인 배럴당 20~25달러로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보통 오일샌드 2t당 1배럴 정도의 원유를 짜낼 수 있다. 오일샌드가 가장 많이 채굴되는 캐나타 앨버타주의 경우 오일샌드를 포함한 원유 매장량은 세계 2번째 수준이다. 석유를 대체할 수 있을 정도로 물량 규모가 작지 않다는 얘기다. 캐나다 정부는 오일샌드에서 뽑아내는 원유를 하루 100만배럴에서 10년 내 3배 이상으로 늘린다는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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